<27> 허난설헌(許蘭雪軒) <제14話>
편집부 news@yakup.co.kr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수정 최종수정 2016-12-01 18:00
중국에서 난설헌의 문명은 가히 폭풍적인 인기다. “천재 여류 시인이다.”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을 아끼지 않았으며 짝퉁 난설헌이 나타나기까지 하였다. 16세기 중기 때 동아시아 문학세계의 흐름이다. 한자 문화권의 패러다임의 독특한 문예 향기다.


그 주역은 여인들이었다. 그중에서도 황진이(黃眞伊)·이옥봉(李玉峰)·이매창(李梅窓)·허난설헌 등이 주역이다. 가깝고도 먼 일본에선 《겐지이야기》(源氏物語)의 저자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978~1016)와 ≪이즈미 시키부 일기≫(和泉式部日記) 작가 이즈미 시키부(978~?) 그리고 와카(和歌)의 달인 오노노 고마치(小野小町·814~880)등도 빼 놓을 수 없는 여류 작가다.

무능거사 이능화(李能和·1869~1943)와 천태산 김태준(金台俊·1905~1850)은 난설헌의 성품을 신선과 같다고 말했으며 무능거사는 조선양반 가문 여류시인 36명을 언급하면서 그녀의 시 26수를 실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하였다. 난설헌의 유선사(遊仙詞)에 나타난 세계관은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이 세계관이 중국 팬들을 열광시켰으리라...

중국과 조선이 당시엔 선진 문화권의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난설헌은 유일하게 유선시 작가다. 그 중에서도 여류 유선시 작가로 주목 받고 있는 것이다. ‘천년 고인 요지에서 목왕과 헤어져/ 파랑새로 하여금 유랑을 찾게 하였네/ 밝아오는 하늘에서 피리소리 들려오니/ 시녀들은 모두들 흰 봉화을 탔구나!/ 골짜기와 연못에 아홉용이 잠겨있고/서늘한 오색구름이 부용봉을 물들이네/ 난해 탄 동자를 따라 서쪽으로 오는 길에/ 꽃 앞에서 선 적송자에게 예를 올렸네’ ≪유선사≫(遊仙詞) ➀·➁다.

유선사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신선세계를 그린 그림과 같은 시인데 난설헌은 여성으로 유선시 창작한 유일한 작가다. 일찍이 조선은 물론 시의 나라(唐)에도 유선시를 쓴 여성이 없었는데 난설헌의 신선 재주를 타고 났다는 명성은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 팬들까지 열광하게 만들었다.

난설헌의 시 세계는 선(仙)과 한(恨)으로 귀결시키고 있는데 그런 평가는 정신적 세계관과 일상적 삶을 요약한 것이며 유선사가 그것을 적나라하게 방증하고 있다. 허균(許筠)의 《학산초담》(鶴山樵談)에는 “누님의 시와 문장은 하늘이 내어서 이룬 것이다. 유선시를 좋아하였는데 시어가 맑고 깨끗해 사람의 솜씨가 아니라고... 문장이 기이하고 우뚝한데 그 가운데 사륙문(四六文·네 글자와 여섯 글자로 이룬 對句法)이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다. 백옥루 상량문이 그 대표적으로 이 세상에 전하고 있다. 나의 형님(허봉)이 말하길 경번(난설헌字) 글 재주는 배워서는 필수가 없다. 이태백(李太白·701~762)과 이장길(李長吉·790~816 본명 李賀)이 남겨둔 글이라 할만하다”고 극찬하였다.

또한 명(明)나라 조세걸(趙世杰)의 ≪고금여사시집≫(古今女史詩集)에서 유선시와 ≪백옥루상량문≫은 천부(天府)의 기이한 경관을 아로새겼으며 구름과 노을이 아름다운과 화려함을 다투는 듯 하여 정말로 신선이 백옥루를 거니느듯 하다고 극찬했으며 또한 선기(仙奇)는 이태백을 뒤로 물러나서 보게하고 문장은 아름답고 화려함은 강엄(江淹·444~505)역시도 자리를 피하게 만든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과 명나라 대시인들도 조선의 천재여류시인 난설헌의 뛰어난 글재주에 숨 막혀 했다. 유선사 87수를 보고 강엄과 이태백도 뒤로 물러서야 할 처지라 했다. 소위 듣기 좋으라고 한 립서비스로만 보기엔 지나친 비유가 아닌가 싶다. 이태백과 강엄이 누구인가? 당대엔 누구와도 견줄 상대가 없는 대시인들이 아닌가? 더욱이 자국의 대시인들을 이웃나라 조선의 여류시인에게 그들을 비교했으니...

당시 조선의 천재 여류시인 난설헌의 시재(詩材) 얼마나 신기(神技) 같았는지 짐작이 가능하다고 하겠다. ‘동비(東妃)에게  새로 분부하사 술랑(도를 깬 신선)에게 시집 가라시니/ 붉은 난새와 해를 가린 수레가 부상으로 향하네/ 벽도화 앞에서 한번 헤어진지 삼천년이나 되니/ 신선세상의 해와 달이 긴 것이 도리어 한스러워라!/ 푸른 사슴을 타고 봉래산으로 들어가니/ 꽃 아래서 신선들이 얼굴을 펴고 웃네/ 다투어 말하길 그대는 우리 가운데 가려내기 쉽다네/ 북두칠성 표지가 이마에 있다네’ 《유선사》 (시 옮김 허경진) ⑬과 64 다.

《유선사》 87수 중에 네수만 엄선하였다. 오프라인(종이신문)의 한계다. ⓵과⓶의 수, 그리고 ⑬·64 만으론 난설헌의 유선사 세계를 말 할 수 없다. 하지만 수많은 선인과 광활한 세계와 기이한 선경(仙境), 그리고 상서로운 여러 동물들, 희귀한 보물, 음악과 춤 등 한폭의 화려하고 장엄한 신선세계의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시다.

또한 난설헌의 시는 주어진 여성 운명에 반기를 든 자기 삶의 생동한 기록이 된 시적 세계를 창출해 냈으며 사회의식과 국가의식에 자유로운 애정표현과 재혼 및 예교의 속박에서 탈출하려는 적극적 표현이었다. 명나라 반지긍은 ≪취사원창≪(聚沙元倡)에서 ‘백옥루상량문’을 보고는 유선사의 귀재(鬼才) 또는 귀선(鬼仙)이라며 천재시인 이하(李賀)가 환생한 것 같다 하였다.

하지만 중극의 전겸익(錢謙益·1582~1664)는 《열조시집》에서 자신의 나라 시를 표절했다고 폄훼하자 조선의 문인들도 침묵하고 있다 일제히 혹평을 쏟아냈다.

난설헌이 이백(李白·701~762·이태백)의 선시(仙詩)와 선기(仙氣)에 심취하게 된 것은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욕구와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는 시적 재능을 선계에서 이태백 같이 펼쳐 대리만족을 구했으리라... 유선사는 작품으로서 가치뿐만이 아니라 난설헌의 작가의식의 집약으로 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조·중 최고의 여류시인과 최초의 유선사 시인으로 자리매김 하게 된 작품이라고 하겠다.

전체댓글 0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