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지금 초희의 모습은 태양에 가린 초승달 모습이다. 매곡의 옥골선풍에 초희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다. 하지만 초희의 태도는 초라하지 않고 더욱 빛났다. 사람다운 삶, 빛나는 문장, 그리움 그 모든 것들을 가슴속에 보듬고 살았다.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눈 흘김 당해도 시어머니 송씨의 모멸적인 폭언에도 초희는 한낱 덧없는 흐름으로 스쳐 보냈다. 눈만 감으면 현실은 속절없이 무화(無化)되고 선연하게 다가오는 선경과 마주해서다.
십 수년 만에 극적인 해우였으나 초희는 나직이 고개를 숙여 보이는 것으로 반가움을 표시하였다. 가슴이 바지직 거리며 타들어 갔다. 하지만 초희는 그런 분위기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이승에선 이룰 수 없는 사랑이란 것을 초희는 일찌감치 알았다.
어쩌면 초희는 이승의 삶을 빨리 청산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여 눈만 감으면 다가오는 선경에서 마음껏 꿈과 이상을 펼치려 했을 것이다. ‘소상강 굽이 파초 꽃은 이슬에 젖고/ 아홉 봉우리에 가을빛 짙어 하늘이 푸르네/ 수궁 찬 물결에 용은 밤마다 울고/ 남방 아가씨 영롱한 구슬 구르듯 노래하네/ 짝 잃은 난새와 봉황새는 창오산이 가로 막히고/ 빗 기운이 강에 스며 새벽달 희미하네/ 한가롭게 벼랑위에서 거문고를 뜯으니/ 꽃 같고 달 같은 큰머리의 강아가씨가 우네/ 하늘 은하수는 멀고도 높은데/ 일산과 깃대가 오색 구름 속에 가물거리네/ 문밖에서 어부들이 ’죽지사‘를 부르네/ 은빛 호수에 조각달이 반쯤 걸려 있네’≪소상강 거문고 노래≫다.
짝 잃은 난새와 봉황새는 창오산이 가로막혀 서로 그리워하고 있으면서 마음껏 만나지도 뜨거운 마음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도 못함을 표현한 듯하다. 이미 남의 아내와 낭군이 되어 있을 뿐만이 아니라 당시 조선의 사회에선 가문대 가문이 합하는 결혼문화가 상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극소수이긴 하지만 남녀간의사랑을 자유롭게 했던 부류도 있다. 그런 사랑놀이를 사대부들은 남몰래 질탕하게 즐기면서 겉으론 고고함을 드러내는 눈감고 아웅식의 속빈 겉치례 문화였었다.
초희가 대표적 희생양이다. 하늘이 준 본능을 인위적으로 억제해야 하는 사회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관습적 법을 만들어 놓은 사대부들은 밤이면 거문고 소리에 맞추어 분 냄새 풍기는 기녀들의 치마폭에 싸여 밤새는 줄 모르고 가면극을 하듯 세월을 낚았다.
서러운 것은 서민들과 여인들이었다. 어릴 때 어버이고 커선 낭군에게, 늙어선 자식에 의지하라는 소위 삼종지덕(三從之德)이란 여인에게 천형 같은 멍에다. 조선사회는 여인들을 개성이나 감정이 없는 사실상 지능로봇 정도로 보려했지 않았나 의구심이 들 정도다.
초희는 십 수년 만에 매곡과 극적으로 해후 했으나 애써 덤덤한 척 하였다. 자칫 지금까지 냉정하게 자신을 지켜왔던 자존심과 평생 쌓아온 서릿발 같은 지적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질까 두려웠으리라... ‘봄바람이 화창해 온갖 꽃들이 피어나고/ 철따라 만물이 잘되니 감회가 새롭네/ 깊은 규방에 묻혀서 그리움을 끊으려 해도/ 그대가 생각나니 심장이 터질 듯 하네/ 한밤이 이슥토록 잠 못 이루더니/ 새벽 닭 울음소리가 꼬끼오 들리네/ 비단 휘장이 빈방에 쳐지고/ 옥계단에는 이끼가 돋았는데/ 깜빡이던 등불도 꺼져 벽을 기대고 앉았노라니/ 비단 이불이 어설퍼 추위가 밑으로 파고드네/ 베틀 소리를 내며 희문금을 짜 보지만/ 무늬는 이뤄지지않고 마음만 어지럽구나/ 인생 운명을 타고난 것이 너무나 차이가 있어/ 남들은 마음껏 즐기지만 이내 몸은 적막이구나’ ≪한스러운 마음을 읊다≫다. (시 옮김 허경진)
세기적 천재 여류시인의 속내다. 초희는 마음이 울적할 때에는 별당을 훌쩍 뛰어 넘어 이승과 저승의 문턱인 꿈나라로 간다. 꿈나라는 선계인 광상산으로 이어지면 이승의 세계를 훨훨 날아 건너간다.
거칠 것이 없는 세상이다. 그곳엔 스승 손곡에게 동생 균과 공부할 때처럼 사랑이 가득한 꿈나라다. 초희는 가슴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앉아 고개도 못 들고 있었던 밀어들을 마음껏 토해냈다.
그곳엔 아버지 허엽과 일 년 전에 금강산에서 큰 야망을 도전하여 보지도 못하고 절명한 오빠 허봉도 있었다. 오매불망 했었던 세상이다. 선녀들이 마중 나오고 시성(詩聖) 두보(杜甫)와 시선(詩仙) 이백(李白), 그리고 시불(詩佛) 왕유(王維)까지 있는 꿈에 와 놀았던 유토피아다.
초희는 사실 평소에는 중국의 이청조(李淸照·1081~1141)와 탁문군(卓文君·BC175~BC121), 그리고 황아(黃峨·1498~1569)를 부러워하였다. 그녀들은 시문(時文)등에 뛰어났을 뿐만이 아니라 역경을 딛고 사회생활도 당당히 해냈기 때문이다.
이청조는 송사(宋詞)에 능통했으며 탁문군은 음률(音律)에 정통하였다. 탁문군은 남편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새장가를 가려하자 백두음(白頭吟)이란 시를 써 보여 포기시킨 일화를 남겼으며 황아는 경사(經史)에 능통했으며 산곡(散曲)·서찰(書札)에도 유명한 여류 시인으로 ≪양부인악부≫ 4권이 전해진다. 이 같은 조선에 비해 여성들의 사회활동에 비교적 관대했던 중국을 초희는 동경 한 듯해 보인다.
초희는 친정집에서 오랜만에 웃음과 즐거움을 되찾았다. 아들 희윤이와 딸 소현이까지 활짝 핀 백일홍을 두손에 들고 “엄마 빨리와 줘서 고마워...” 하고 달려와 가슴에 안겼다. 남매의 웃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비몽사몽 꿈의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