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허난설헌(許蘭雪軒) <제8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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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수정 최종수정 2016-12-01 17:43
결혼을 했어도 남편 김성립 보기가 하늘의 별을 따기만큼 어려웠다. 시어머니 송씨 벽이 두꺼워서다. 해가 가고 달이 가도 시어머니의 고집스런 성깔은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초희는 자신이 변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비몽사몽에서 본 초나라 장왕과 번희의 관계에서 번희가 되려는 것이다.


하지만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싶은데 높은 벽이 하나둘이 아니다. 시어머니 송씨의 고집스런 성깔을 꺾을 사람은 아들 김성립 뿐인데 어머니 말이라면 껌뻑하고 죽는다.

그런 모자지간 사이에 초희가 끼어들 틈새는 사실상 없었다. 아들과 딸을 마음껏 낳아 집안이 왁자지껄하게 하고 싶으나 남편의 운우지정은 가뭄에 콩 나듯 들르는 것으론 초희의 계획에 턱없이 부족하고 시기(배란기)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영물시(詠物詩) ≪가위≫를 다시 소개한다. ‘뜻이 맞아 두 허리를 합하고/ 다정스레 두 다리를 쳐들었소/ 흔드는 것은 내가 할테니/ 깊고 얕은 건 당신 맘대로...’ 얼마나 뜨겁고 적나라한 운우지정인가? 초희도 여자인지라 신선세계에 가면 송덕봉(1521~1578)와 유희춘(1513~1577) 부부의 금실을 부러워했으리라...

사실 결혼은 서로 어울리는 관계에서 맺어져야 행복하다. 조선 사대부 사화에서 결혼은 가문대 가문이 결합하는 가문의 역사(歷史)다. 양천(陽川) 허씨 허엽과 안동(安東) 김씨 김첨(金瞻)과 사돈관계도 그 범주일 게다. 허엽의 집은 당시 욱일승천하는 기세다. 오허(五許)가문으로 한양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 동인(東仁)에서 허엽의 위치는 절대적이었다. 아들 허성·허봉·허균, 그리고 천재 허초희는 성리학 사대부 사회에서 선망의 대상들이다.

반면에 허엽의 사돈관계인 김첨의 사회적 위치는 허엽에 미치지 못하였다. 안동김씨 전체의 위세를 허엽은 고려했으리라... 안동김씨 집안은 5대가 계속 문과에 급제한 기문이며 김첨과 허봉은 호당(湖堂)의 동창이다. 이들 사이ㅏ에서 혼담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회분위기에 난설헌이 희생된 결혼이라고 말 할 수도 있는 가문의 결합이었다.

결혼을 하면 신혼의 뜨거운 금실이 식기 전에 아들딸 쑥쑥 낳다보면 세상 시름은 잊게 되었다. 하지만 초희에겐 그런 달콤한 화촉동방(華燭洞房)은 없었다. 천재여류 시인은 광상산 세계로 나들이를 떠났다. 혹 남편과 운우지정을 한 후 찰나적으로 잠이 들면 초희는 예외 없이 광상산 세계로 갔다.

그곳은 꿈이 펼쳐지는 세상이었다. 가는 곳마다 보석이요 정원마다 만화방초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초희는 그곳에서 시를 쓰고 수창(酬唱·시가를 불러 서로 주고받음)을 하면서 재기(才氣)를 마음껏 펼치고 싶다. 하지만 초희는 이승사람이 아니었던가? 초희는 산의 문제만 가지고 골몰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찰나적으로 잠이 들면 광상산의 지하선이 나타났다. 그리고 자기편이 되어 달라고 애걸복걸이다. 지하선은 광산산 세계에서 옥황상제 다음 가문의 고명딸이다. 지하선은 초희에게 은근히 고압 자세다. 초희가 이승을 떠나 광상산으로 오면 깍듯이 언니로 모시고 명문대가 자제로 배필(配匹)도 주선하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해댔다.

지하선은 허봉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고 고백이다. 날이 갈수록 지하선의 고백은 심해졌고 협박으로까지 느껴질때도 있었다. 초희는 잠을 청하기가 두려워졌다. 밤을 새 시를 쓸때는 비몽사몽에 지하선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지하선이 나타날 때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난새(상상의 봉활 같은 새)를 타고 백마 한 마리를 끌고 왔다. 허봉을 백마에 태워 가겠다는 시위다. 허봉은 그때 유배지에서 풀려나 금강산을 허기진 몸을 이끌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누비고 있었다.

유배지에서 풀려났으나 서울(한양)에 들어오지 못하는 단서가 붙어 금강산을 유람하고 있었다. ‘낡은 집이라 낮에도 사람이 없고/ 부엉이만 혼자 뽕나무 위에서 우네/ 섬돌에는 차가운 이끼가 끼고/ 빈 다락에는 새들만 깃들었구나/ 전에는 말과 수레들이 몰려들던 곳/ 이제는 여우 토끼 굴이 되었네/ 달관한 분의 말씀을 이제야 알겠으니/ 부귀는 내 구할 바가 아닐세’ ≪부귀를 구하지 않으리라≫다. (시옮김 허경진)

사실 초희는 결혼하기 전엔 사대부집 여인들이 부러워 할 호강을 충분히 누렸으리라... 호강에 충분이란 없을 터이나 초희가 15살에 결혼을 했으니 독신일 때와 한 남자의 여인이 되었을 때 소위 행복이 같을 리가 없다. 그런 생각이 난마처럼 얽혀 있을 때마다 홀연히 지하선이

나타나 초희의 신경을 건드려 놨다.

초희는 묘수로 자지 않고 계속 시를 쓰기로 결심하였다. 잠을 쫓으려는 고육지책이다. 잠시라도 잠이들면 귀신같이 알고 예외 없이 지하선이 나타나 애원이 아닌 이젠 겁을 주는 표정까지 지어보였다. 그래서 초희는 자는 척 하면서도 동시에 시를 쓰는 척도 하였다.

몸이 쇠약한 초희는 잠이 보약인데 며칠 버티지 못했다. 창문으로 쌀쌀한 가을바람이 들어와 가슴을 파고들었다. 창밖의 오동나무잎 떨어지는 소리에 초희 가슴은 더욱 스산하고 외로웠다. 그때다. 천둥번개와 함께 용이 승천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비몽사몽(非夢似夢)이다. 초희는 퍼뜩 깨어나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꿈은 꿈이려니 생각하면서도 초희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유배에서 풀려났으나 한양에 들어오지 못하고 금강산에서 유람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방황하고 있는 오빠가 번개처럼 떠올랐다.

허봉은 그때 승려 지식인 사명당(四溟堂·1544~1610)과도 친숙한 사이가 되었다. ‘영마루 나무는 변방 요새를 겹겹이 두르고/ 강물은 동쪽 저 아득한 바다를 향해 흘러간다/ 집 떠나 만리라니 쓸쓸한 노릇/ 수심 깊은 모래톱에서 바라보니 병든 할미새’ 허봉이 갑산에서 초희에게 보낸 ≪누이에게≫다.

초희는 시를 쓰던 붓을 놓고 ‘바다를 향해 흘러간다’는 대목에서 숨을 멈추었다. 천둥번개 치며 승천하는 용의 장면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행여 오빠가 돌아가시지나 않았을까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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