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던가? 허오문장(許五文章)도 허엽(許曄·1517~1580)의 객사로 서서히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대들보가 부러졌기 때문이다. 사랑채에 구름처럼 몰려왔던 사대부들이 하나둘 발길이 끊겼다. 사람이 저승으로 간 것도 서러운데 측근들마저 발그림자가 사라지자 건천동 초희의 친정집은 더욱 어둡다. 적막강산이다.
초희는 친정에 가고 싶으나 시어머니 송씨 벽에 번번이 걸렸다. 그럴때마다 초희는 광상산(廣桑山) 선계(仙界)로 갔다. 그곳엔 초희를 반갑게 맞는 천귀남(千貴南·가명)과 천상일(千相逸·가명), 그리고 지하천(池賀仙·가명)이 있다. 천귀남과 천상일은 각각 두 살씩 위라 자연스럽게 오빠가 되었으며 지하선은 세 살이나 어려 동생을 자처 하였다.
그들은 오누이와 자매가 되어 한번 만나면 해가 지는 줄 모른다. 초희가 선계로 자주 외출을 하는 것은 천귀남과 천상일 오빠, 그리고 지하선을 만나기 위함도 있으나 송덕봉(宋德峰·1521~1578) 부부를 만나기 위함이 더 큰 목적이다. 송덕봉의 남편 유희춘(柳希春·1513~1577 호 眉巖)은 책벌레지만 부부금실이 당대에 최고였었다. 그는 호남의 오현(五賢)중의 일원이기도 하다.
초희는 그들 금실이 부러웠다. 이곳 선계에 와서도 그들 부부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원앙부부다. 남편이 아내보다 일년 일찍 이곳 선계에 와서 냇가 버드나무 옆에 아담한 집을 마련하고 아내 송덕봉을 기다렸다. 초희는 미암같이 다정다감한 사내와 하루만 살아도 한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미암의 천계(선계)집은 류촌(柳村)이라고 불렀다. 버드나무 집 앞엔 사시사철 수정 같은 물이 그림처럼 흐르고 버들치 등 물고기들이 노닐며 버드나무 위에선 새들의 노랫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겨울인데도 춥지 않고 여름인데도 덥지 않다. 버드나무집엔 만화방초가 사시사철 만개하여 벌나비가 춤을 추었다.
이승과는 딴판의 계절이다. 초희는 이곳에 매료되었다. 이따금씩 천계(天界)에 다녀오면 이승생활이 더 어려워졌다. 남편 김성립을 애타게 기다려지는 것이 아닌 원망의 대상이 되어졌다.
송덕봉의 남편 유희춘과 비교 되어서다. 미암은 과거에 급제하여 출사도 하고 송덕봉을 극진히 사랑하는 사대부들이 부러워하는 원앙부부다. 미암은 학문도 뛰어났다. 그런데 김성립은 학문도 아내사랑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어머니 송씨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것 외엔 잘하는 것이 없다.
아버지 허엽의 49재가 어제로 끝났다. 초희는 옥인동에서 건천동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으나 참석하지 않았다. 외출을 하려면 남편의 허락이 아닌 시어머니의 재가를 얻는 것이 싫어서다. 친정엘 어쩌다 다녀오겠다고 하면 마땅찮은 표정으로 “갔다오렴...”의 말투를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아서다. 목에 가래가 낀 듯 한 쇳소리의 음성에 초희는 온몸이 떨렸다.
아침부터 비가 온다. 봄비 치고는 제법 큰 빗줄기다. ‘아홉 폭 무지개 치마에 가벼운 저고리로/ 학을 타고 찬바람 내며 하늘로 돌아오네/ 요지엔 달빛이 밝고 은하수도 스러졌는데/ 옥퉁소 소리에 삼색구름이 날아오르네’ ≪하늘을 거니는 노래≫다. 아버지의 49재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심정을 선계에서 마음을 푼다. 광상산에 가면 안되는 일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귀하신 몸으로 대접받았다.
남편 김성립 주위엔 훌륭한 인물이 많았다. 허봉을 비롯한 대문장가로 이름을 날리는 신흠(申欽·1566~1628)등이 그들이다. 신흠은 한방에서 공부를 같이한 동무이기도 하다. 신랑에 비해 신부인 초희의 학문이 월등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김성립을 놀려먹는 짓궂은 동무들도 있었다.
어느 나른한 봄날이다. 김성립이 지금 공부는 하지 않고 기방에서 기녀와 놀고 있다는 말을 하였다. 김성립을 놀려주려는 친구의 거짓말이다. 그때 마침 난설헌의 몸종이 있는 자리였다. 몸종은 쪼르르 달려가 난설헌에게 일러바쳤다. 김성립 친구는 난설헌이 대낮에 공부할 시간에 기방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노발대발 할 줄 알았는데 반응이 너무나 의외였다.
푸짐하게 차려진 술상이 왔다. 간고등어와 묵은김치 안주에 손도 안댄 소국주(素麯酒)로 정성이 가득 담긴 술상이 나왔다. 술병에는 시 한수가 적혀있었다. ‘낭군께선 본래부터 무신하신 분/ 동접(同接·같은 곳에서 공부하는 동무)들은 어떤 분들이기에 이간질이신가?’ 뒤통수를 치는 재치 발랄한 난설헌만이 할 수 있는 기막힌 응수다. 이 상황을 본 신흠은 여인답지 않은 호방한 난설헌의 기상을 속 깊이 알게 되었다고 토로하였다.
사실 초희에겐 3색(三色)의 세계가 존재한다. 피와 살을 통해 느껴지는 오감(시視·청聽·후嗅·마味·촉觸)의 희로애락의 세계, 시를 통한 사대부 사회에서 얻어지는 성취감의 세계, 그리고 오감을 통해 여과 없이 느껴지는 희로애락의 신선세계가 그것이다.
남편과 시어머니에게서 겪는 세상살이의 고초만 없으면 난설헌의 삶은 지상 최고의 삶이다. 아니 조선 사대부 사회에서 작지만 별당에서 분명한 자기 삶을 영위하는 여류 문인이다. ‘사는집 장간리 마을에 있어/ 장간리 길을 오가곤 했어요/ 꽃가지 꺽어들고 님께 묻기도 했죠/ 내가 더 예쁜가 이 꽃이 예쁜가// 간밤에 남풍이 일어/ 배 깃발 펄럭이며 파수를 향했지요/ 북에서 온 사람을 만나 물으니/ 님께서는 양자강에 계신다 하더군요’ ≪장간리 노래≫다. (시옮김 허경진)
남녀 간의 애틋한 노래다. 난설헌의 문학세계는 이승을 뛰어넘는 신선의 세상이 있는가 하면 지금 읽어도 입이 딱 벌어지는 에로틱한 영물시(詠物詩)도 있다. 남존여비 사대부 사회에서 페미니즘의 소리없는 외침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