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창이 훌쩍 이승을 떠난 지 400여년이 지났다. 지금 부안은 매창의 신드롬에 걸렸다. 지방 특화다. 매창에겐 신화같은 애기들이 신비롭게 얽혀있다. 16세기 왕조시대에 지방관리인 현감에게 장래 최고 여류 시인될 천재소녀가 있었다. 매창이다. 현감은 소녀의 보호자이자 사내였었다.
지방자치가 활성화됨으로 각 자치단체마다 특화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스토리텔링이 필요해서다. 역사와 문화예술의 주인공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부안엔 영원한 연인 매창이 있다. 문인과 풍류객들이 줄을 섰었고 오늘날에도 작가와 연구를 위한 교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을 훌쩍 뛰어 넘는 문화예술 창작과 스토리텔링의 메카(Mecca)다. 매창은 서당에 다닐 때에 향금(香今 )이란 이름으로 다녔다. 당시는 남존여비사상의 사회였으므로 남자로 변장하고 공부하기 위함이였으리라... 아무튼 학동(學童)들이 ≪동문선습≫·≪명심보감≫ 등을 읽고 있을 때 매창은 ≪논어≫와 ≪맹자≫를 읽었다고 한다.
천재소녀는 역시 달랐다. ‘생각 끝에 한숨이요 한숨 끝에 눈물이라/ 눈물로 지어 내내 들어보소 단장사를/ 이리하여 날 속이고 저리하여 날 속이고/ 속이기는 좋거니와 속는 이는 어떠하리...’ 부안 현감의 뜻에 따라 기적에 올리고 수청을 들었다.
현감은 매창을 극진히 사랑했으나 승진하여 한양으로 올라갔다. 사내는 현감으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 마을사람들이 공덕비를 세워주었다. 매창은 현감에게 순정을 바친 첫 사내였다. 위의 시는 어느 휘영청 달 밝은 밤에 매창이 현감의 송덕비 앞에서 불렀다는 ≪단장사≫다. 당시 그녀는 10대 후반의 소녀 때다.
사실 사내는 예나 지금이나 그러하지 않았나? 더욱이 왕조시대에 기생을 노류장화나 말하는 꽃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시대다. 매창을 남장을 시켜 가면서 서당에 보내 교육을 시켰다. 매창의 아버지는 아전(衙前)이었다. 비록 지방 말단 벼슬을 하고 있으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딸에게 글공부를 하도록 하였다.
하급관리로서 현감 등의 거드름이 벨이 꼴리고 눈에 몹시 거슬렸을 게다. 아낌없이 사랑을 듬뿍 주었던 아버지는 매창이 10살 때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잃은 매창의 삶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다. 천애고아로 똑똑한 매창이 현감의 눈에 번쩍 띄었을 게다.
매창에게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발동하여 기적에 들게 하고 그만 동정(童貞)을 빼앗고 말았다. 연민의 정이 늑대 심보로 돌변했으리라...
그 후 매창은 유희경을 만났다. 당시 전라도 일대 현감이었던 이귀(李貴·1557~1633) 등이 호시탐탐 그녀 품기를 목마르게 원했으나 매창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매창은 자신의 신분을 알고 격에 맞지않는 사랑은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천민출신 시인 유희경이 홀연히 나타났다. 그들은 한양과 부안이란 거리감이 있었으나 인향만리(人香萬里)의 소문으로 이미 알고 있었던 처지였다. 첫날부터 그들은 헤어졌던 연인이 오랜만에 재회한 듯 질펀한 운우지정을 마음껏 즐겼다. “너의 거문고 솜씨가 신기(神技)에 이르렀다.” “부끄럽사옵니다. 소녀 아직 배우고 있는 중이옵니다.” 매창은 소리를 하면서 춤을 추었다.
유희경은 너울너울 나비처럼 춤추는 매창에게 넋을 빼앗겼다. 왜 진작 만나지 못했을까 아쉬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런 마음이 들수록 매창의 몸을 더욱 탐닉하였다. 이처럼 매창과 유희경은 첫 만남부터 금슬 좋은 부부 같았으리라...
그들의 만남은 늘 짧은 만남에 긴 여운을 남겼다. 시로 서로 알게 되어 만나면 자연스럽게 시가 나왔다. 내로라하는 한양의 사대부들이 그녀의 사랑과 시를 목메도록 갈망했으나 유희경을 선택했다. 천민의 신분 처지에 시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세상의 시름을 카타르시스 할 수 있는 통로가 있기 때문이다.
‘맑은 눈 하얀 이에 푸른 눈썹 계랑아/ 홀연히 뜬 구름 따라 너의 간 곳 아득하다/ 꽃다운 넋 죽어서 저승으로 갔는가/ 그 누군가 너의 옥골 고향 땅에 묻어주리/ 객지의 초상이라 문상객이 다시 없고/ 오로지 경대 남아 옛 향기 그윽하다/ 정미년간 다행히도 서로 만나 즐겼는데/ 이제는 슬픈눈물 옷을 함빡 적시누나...’ 매창의 죽음 소식을 듣고 유희경이 지은 ≪차임정자도옥진운≫(次任正字悼玉眞韻)이다.
그들이 첫 만남은 유희경이 불혹(不惑)을 갓 넘긴 나이였으며 두 번째 해후는 환갑을 살짝 넘긴 나이때다. 매창의 매력에 빠져 금녀(禁女)의 신조를 스스로 깨고 사랑의 포로가 되었다. 유희경은 풍류객으로 숱한 여인을 만났으나 소위 동정(童貞)을 지켰다.
그런데 그 동정을 천재 기녀 매창이 차지하였다. 사실 매창은 유희경이 첫 남자가 아니다. 그녀를 기적에 올리게 하고 수청을 들게 한 현감이 첫 남자였었다. 그때 쓴 시가 ≪단장사≫다.
400년 전의 뜨거운 남녀상렬지사(男女相悅之事)다. 그들의 사랑은 서로 윈윈한 효과가 나타났다. 대시인과 천재 기생의 사랑은 만인의 질투를 넘어 그들이 생산해 낸 문화예술과 풍류에 매료되었으리라...
유희경은 풍월향도로 시작하여 삼청시사(三淸詩社)가 되어 평민과 천민이 주류가 되는 소위 위항문학(委巷文學)의 대부가 되었다. 주류사회에서 중인이하 계층이 주역의 문학이 태동하는 메카가 되었던 것이다.
한편 매창은 조선의 여류문학이 탄생하는데 황진이·김부용(金芙蓉·1820~1869)등과 한 축을 형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