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천재 女流시인 이 옥 봉 <제2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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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수정 최종수정 2016-12-01 15:50

낮부터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해가 떨어지자 거세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가 거세지자 천둥번개까지 요란하다. 이따금씩 벼락 치는 소리도 들렸다. 옥봉은 불안한 표정으로 방안을 오갔다. 결혼 후엔 시를 쓰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다. 애걸복걸하여 소실로 들어간 자리다.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소실자리를 주었기 때문에 약속을 깼으니 집을 나가라 해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도 조원은 기척이 없다. 자정이 지나 새벽이 되어가도 남편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옥봉은 자리에 들수가 없다. 평소 조원의 성격으로 봐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어서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는 그칠 기세가 아니다. 어둡고 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여명이 동창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도 차츰 기세가 꺾여갔다. 그때다. 조원이 들이닥쳤다. 어제 오후부터 밤새 기다린 남편이 들이닥치자 옥봉은 전신이 얼어붙었다.

평소 같았으면 “왜 이렇게 늦었어요?”라고 짜증을 부릴 상황이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몸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왜 그렇게 보고만 있소? 이리 와서 앉으시오...” 조원의 입에선 술 냄새도 풍기지 않는다.

평소와 너무나 다르다. 옥봉은 남편의 행동에 겁이 났다. 이미 자신이 시를 써서 파주 친척이 누명을 벗고 방면된 사실을 알고 있을 것으로 믿고 있어서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남편의 맨송맨송한 운우지정이다. 옥봉도 작심하고 온몸의 정기를 모았다. 부부는 여명이 동창으로 들어오고 있는데도 뜨겁게 운우지정을 즐겼다. 옥봉도 첫날밤 보다 더 따뜻하고 뜨겁게 사내물건을 받았다.

지금의 운우지정이 마지막이 될 것으로 생각해서다. 그렇다고 요란한 몸짓으로 사내의 욕정을 북돋우는 여자로 인식되기는 싫었다. 온몸의 기를 옥문(玉門)으로 모았다. 뜨거운 정화수(井華水)같이 잔잔하지만 힘찬 파도가 일 듯 사내 심볼을 조였다. 조원의 자식을 갖고 싶은 욕망이 갑자기 커졌다.

마침 배란기다. 사내도 새벽 욕정이 꿈틀댔다. 하주종일 수창(酬唱)으로 기분이 들떠 있었다. 풍류를 즐기느라 육신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그런데 뜻밖에도 옥봉이 뜨겁게 맞아줘 애액(愛液)이 폭포수처럼 나왔다. 옥봉이 기대했던 대로다. 애액은 옥봉의 옥문을 넘어 사타구니에 까지 넘쳐 나왔다.

아이를 가지려는 여자의 본능이다. 여자보다 어머니가 되는 것이 사랑의 파트너인 동시에 소실의 의무이기도 하다. 아들을 낳아 당당하게 소실의 두 가지 의무를 다 하려는 야무진 속내다. 풍류 반려를 뛰어 넘으려는 것이다.

날이 밝자 조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엇에 쫓기듯 방을 빠져 나갔다. 잠자리엔 쪽지 하나가 놓였다. 금시맹약(禁詩盟約)이다. 소실의 의무다. 약속을 어겼다는 통보다. 의무를 어겼으니 소실의 자격이 상실됐다는 얘기다. 옥봉은 파주에 있는 친척에게 써준 시가 번개처럼 떠올랐다. ≪위인송원≫(爲人訟寃)이다. ‘洗面盆爲鏡:세면분위경·얼굴을 씻는 동이로 거울을 삼고/ 梳頭水作油:소두수작유·머리를 빗는 물로 기름을 삼아도/ 妾身非織女:첩신비직녀·이 몸이 직녀가 아닐진대/ 郞豈是牽牛:낭기시견우·낭군이 어찌 견우가 되오리까.’ 사연인 즉 이러하다.

소를 훔쳤다는 남편이 누명을 쓴 아내의 하소연을 듣고 써준 시다. 마침 칠석날 일어난 사건이다. 견우와 직녀를 활용한 시다. 견우가 아닌 사람이 어떻게 소를 끌고 갈 수 있겠느냔 것이다. 사또는 화들짝 놀라 누명을 쓴 주인공을 즉각 방면시켰다. 하지만 옥봉은 소실의 자격을 잃어 집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떻게 얻은 소실의 자리인가...

옥봉의 부친 이봉이 조원의 장인 이 준민을 찾아가 자신의 딸이 비록 한번 결혼에 실패했으나 춤과 노래, 시에도 재주가 있어 ‘풍류반려’가 될 만하니 며느리로 받아 줄 것을 애걸복걸하여 얻은 자리다. 그런데 지금 쫓겨나는 신세가 된 가여운 운명이 되었다. 옥봉이 조원의 소실에서 자격을 잃고 다시 청상과부가 되면 아버지 이봉은 가슴앓이를 또 다시 할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가혹하였다. 시를 쓰면 안 된다는 약속을 어겼으니 소실의 자격이 상실되었다. 옥봉은 뚝섬에 우거(寓居)를 마련했다. 일선에는 조원이 옥봉을 소실에서 내쫓은 것은 시 실력이 뒤져서란 얘기도 있다. 남편이 아내, 그것도 소실만 못해 자격지심이 발동하여 내쫓았다는 풍문이다.

옥봉이 조원의 소실이 되기 전에 이미 그녀의 시 실력은 널리 알려져 사내가 알고 있었을 터다. 하지만 장인이 ‘풍류반려’로는 안성맞춤의 여자라고 강력히 권하여 마지못해 맞아들였는데 ’위인송원‘을 써 파주사또의 간담을 써늘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남편의 체면을 깎았다는 이유다. 아녀자는 관가의 일에 참견을 하면 안 된다는 금기시 된 조선시대의 사회 흐름이다.

하지만 옥봉은 샘솟듯 하는 시심의 발로를 주체할 길이 없었다. 그녀는 집을 나설 때 역시 시 한편을 남겼다. ‘임 그리는 깊은 마음 어이 쉽게 변할 손가/ 다시 또 말하려니 부끄러워요/ 행여나 임께서 내 소식 물으시면/ 옛 화장 그대로 난간에 기대어 있다 전해주오...’ ≪이원≫(離怨) 이별의 슬픔이다.

그랬다. 옥봉은 아버지가 조원의 장인에게 간곡한 부탁으로 소실의 자리에 들어갔으나 그녀는 운강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조원의 소실로 들어가 풍류반려로 살아갈 것을 강력히 권고했으나 옥봉은 거부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조원을 뜨거운 마음으로 사모하고 있었던 처지였었다.

친정에서 아버지가 시회를 열었을 때 첫눈에 사랑의 꽃을 화사하게 피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쫓겨 나갈 신세가 되었다. 등 떠밀려 내쫓겨 떠나가도 마음은 변함이 없다는 애절한 시다.

비록 몸은 내쫓기는 신세로 떠나가도 마음은 가져가지 않고 두고 간다는 이별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읊었다. 성리학이 지배하는 남존여비사회의 여자의 숙명이다. 아니 소실의 천형(天刑)같은 굴레다. 그러나 옥봉은 자신의 문재(文才)를 썩히지 않았다. 소실의 자리는 잃었어도 샘솟듯 발로하는 시심을 잠재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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