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부터 30일까지 인사동에 있는 노화랑(GALLERY RHO)에서는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내음이 물씬 풍기는 한 화가의 개인전이 열렸다. 윤길영전. 익숙한 유명화가의 이름은 아니다.
제약회사의 홍보담당 상무이사라는 그의 직함은 인사동이라는 전문적인 문화의 거리 중심에 있는 갤러리에서 열리는 작품전에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소년시절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미술을 전공으로 다양한 영역을 섭렵했지만 어려운 가정 사정으로 20여년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오다 다시 자신의 길을 찾아 캔버스로 돌아온 윤길영 상무를 만나봤다.
개인전 마지막날 피날레를 위해 화랑에 나와 있다는 윤길영 상무를 만나기 위해 찾은 인사동 골목은 최근 피맛골 재개발 등 주변의 어수선한 변화와 함께 곳곳에 새로운 건물과 볼거리들이 들어서느라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안국동 쪽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로변, 큰 글씨로 '尹吉泳展'이라는 홍보물이 붙어 있는 노화랑 앞 가로수 옆에서 무언가 생각에 잠긴 채 담배를 태우고 있는 중년 신사가 얼른 눈에 들어왔다. 윤 상무였다.
그의 안내로 들어선 노화랑 안은 온통 백색! 그 자체였다. 화려한 조명도 자극적인 유채색의 날카로움도 찾아볼 수 없는 순백의 벽과 있는 듯 없는 듯 그 위에 펼쳐진 역시 순백의 작품 30여점이 펼쳐졌다.
"한국의 토속적 아름다움 화폭에 담고 싶어"
먼 길 돌아 캔버스에 다시 펴는 꿈의 나래
우리 자연과 그 산하에 펼쳐진 집들, 해와 달과 구름과 별… 그리고 새와 사람. 바로 우리 모두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 고향, 그 속에 깃들어 있는 모든 친숙한 소재들이 윤길영 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윤길영 상무는 한마디로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그리고자 노력했다'고 소개했다.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순백의 색과 그 속에 녹아 있는 한의 정서, 그리고 자연과 고향의 이미지와 함께 해, 달, 별 등 우주의 이치를 녹여내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는 것.
지난 1년여 기간 동안 유화라는 장르를 기본으로 캔버스나 켄트지 위에 한지를 구겨서 붙이고 말려서 아크릴로 윤 상무의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한국적 색상들을 입히고, 나이프로 긁어내는 작업을 거쳐 또다시 흰색을 긁어 덧칠하는 인고의 작업을 거쳤다.
"예술가들이 보통 고집이 세고 성질이 급해 작품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과정이죠. 아크릴을 사용한 것도 이런 성질 급함을 고려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한지를 붙이고 말려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기까지 찢고 또 찢는 과정을 참아내기란 무척 힘겨운 것이었습니다"
한 회사의 홍보 업무를 책임지는 상무이사로서 업무를 진행하며 이처럼 힘겨운 작업을 이어왔지만, 전시장을 찾은 수많은 방문객들이 좋은 평을 해주고 작품에서 좋은 영감을 얻고 돌아가는 모습에서 그 간의 고통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더욱이 대부분의 작품이 그 가치를 알아주는 주인을 만나 윤 상무의 품을 떠나게 되는 등 현실적인 성과도 좋았다고 한다.
"작품활동은 스스로 만족하는 것도 무척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의 작품세계를 완성해 가면서 동시에 그것을 이해해 주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인정해 줄 때 예술가로서 활동하는 진정한 가치가 발휘된다고 봅니다."
윤길영 상무는 1948년 인천에서 태어나 동산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전 한국수채화협회 회장인 故 박영성 선생께 수채화, 故 김상유 선생께 판화, 전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인 박석원 교수로부터 조각을 공부했으며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도자기를 전공하는 등 다양한 미술적 이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 상황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며 육영재단 '어깨동무' '새소년', 쥬리아화장품 홍보실을 거쳐 광고회사 '둘기획' '디자인파워'를 운영하고 동성제약에 입사해 20여년간 광고홍보맨으로 활동하는 등 그림과는 조금 동떨어진 생업의 현장을 거쳐왔다.
물론 그 중에도 머리에 떠오르는 영감을 정리하고, 많은 아이템들을 수집하는 등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을 저버린 것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붓을 다시 잡은 건 불과 8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 오랜 작품 활동 기간은 아니었지만 4회에 걸친 개인전을 열었고, 국내외 그룹전에 50여회 참여하는 한편 한국미술협회, 한국수채화협회, 대한민국수채화작가협회, 씨올회, 한국미술세계회협회, 미술세계대상전 심사위원 등에서 활동했으며, 시화집 '풍경소리' '세상사는 이야기' 등 잔잔한 일상에 대한 감흥을 담은 책도 내 놓는 등 왕성한 예술적 활동력을 보여왔다.
윤 상무의 가장 큰 계획은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그간 대학시절까지 배웠던 회화, 조각, 판화 등 다양한 이력의 배경 속에 수채화, 유화 등 장르에 부채 위에 시화를 그리거나 성냥개비에 먹을 찍어서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펴 왔지만 이번 작품전을 준비하며 구축된 한국적 색감과 소재, 그리고 표현 방법 등에서 어느 정도 자신의 화풍을 찾은 것 같아 더욱 뿌듯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부분 중 하나이지만 전문적으로 이 분야에만 종사해 온 것이 아닌 만큼 유명해진다거나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후세에 윤길영이라는… 어떠어떠한 독특한 화풍을 가지고 있는 화가가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기억해 줄 수 있는 나만의 화풍을 만드는 수준까지는 해보고 싶습니다. 예술에 완벽함이란 없지만,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로 제 작품세계를 발전시켜 나갈 겁니다"
은퇴 후 조용하고 풍광 좋은 시골에 자신만의 화실을 마련하고 글을 읽고, 음악을 듣고, 원없이 그림을 그리며 지내고 싶다는 윤길영 상무. 그만의 한국적 정서를 담뿍 담은 작품세계가 완성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