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암 한구동 교수님 3주기 봉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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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수정 최종수정 2006-10-16 11:31
이번 10월 20일은 한구동 교수님께서 별세하신지 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20世紀의 한국 약계의 선구적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 약학 교육을 수립한 교수이시며, 약학 연구 분야를 대표하는 과학자이신 한구동 교수님께서 2000년 10월 20일 93세로 영면하셨습니다.

한 교수님께서는 1908년 10월 18일(음력) 종로구 예지동에서 탄생하셨으며 효제 초등학교와 경복고교를 졸업하신 후 1927년에 조선 약학교(서울대 약대의 전신)에 입학하셨습니다.

1930년 3월 졸업과 동시에 조선 총독부 위생시험소(국립보건원의 전신)에 조수로 입소하시어 약학 연구의 첫 발을 내디디셨습니다. 미개척분야였던 한국 식품의 영양학적 연구 및 한국 온천 수질에 관한 연구를 꾸준히 수행하시어 성과를 이룩 7년 후에 우수한 연구관으로 선발되시어 일본의 국립 동경 위생연구소에 파견되어 3개월간 교육을 받으셨습니다.

그 후 1942년 조선 약학회 창립 30주년 총회에서 학술상과 공로상을 받으셨습니다.
광복 후 이 시험소를 미군정청보건후생부 국립화학연구소로 개편하셨고, 소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한편 경성 약전을 운영하던 일본인들이 물러간 후 4년제 서울약학대학으로 승격되어 1946년 9월에 녹암 선생님이 모교 교수로 취임하셨습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재정이 빈약하고 불안정한 이 사립대학을 서울대학교에 편입시켜 확고하게 기반을 만드셨습니다.

한 교수님이 학장으로 취임하시어 11년 이상 약대 발전에 기여하셨습니다. 피난지 부산에서 대한약학회를 창립함에 따라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어 15년간이나 학회를 육성하셨습니다.

전쟁이 휴전될 무렵, 문교부 산하에 대한미국 학술원을 창립하여 각 학문 분야의 석학들을 회원으로 선출하였는데, 한 교수님이 창립외원으로 피선되시어 24년간 정회원으로 활동하신 후에 원로 회원이 되셨습니다.

1956년 7월에 대한 약사회 3대 회장으로도 선출되시어 초창기의 약사회 발전에 3년간에 걸쳐 공헌하시었습니다.

이와 같이 분주한 활동 속에서도 연구에 꾸준히 집중하시어 1963년에 '희첨의 디텔페노이드 성분에 관한 연구'로 서울대학교에서 약학 박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또한 1966년에 서울대학교 생약연구소 소장이 되시어 본격적으로 생약을 연구하셨습니다.

이러한 성과들을 제 11회 태평양과학회의 및 미국 생약학회 총회에서 발표하셨습니다.

1968년에는 이태리 밀라노 대학교의 초청으로 그 곳 유기화학연구소에서 한약의 디텔페노이드성분에 관하여 연구하셨습니다.

녹암 선생님의 생화학 강의는 약대 3대 명강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한 때 건강이 악화되시어 한 학기 동안 병가를 받아 요양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강의 중간에 흡연을 한모금 하셔야 강의를 계속할 정도로 애연가이셨는데 마침내 금연을 하신 후 건강관리를 철저히 실행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한 교수님께서는 1974년 건강하게 정년 퇴임하시어 명예 교수가 되셨으나, 덕성여자대학교에 초빙되시어 5년간 더 근무하셨습니다.

녹암 선생님은 그 동안 황조소성훈장, 8·15 해방 기념 학술문화훈장, 제3회 과학기술상, 대한민국 학술원상, 약학회 우수 논문상 등등 우리나라 최고 학술상을 모두 수상하셨습니다.

봉사 활동으로는 보건복지부, 국방부, 교육부, 총무처 및 서울특별시 등의 심의 위원을 오랫동안 맡아 보셨습니다.

대한약학회 창립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녹암학술상'을 제정하였으며 금년에 첫 번 시상을 수행하였습니다. 또한 한 교수님께서 '약의상' 심사위원장으로 오랫동안 도와주신 약업신문사도 내년이면 창간 5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 교수님께서는 20세기 한국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약학자로 기록되리라는 사실입니다.

선생님께서 훈도하신 말씀 중에서 위선최락(爲善最樂)이라는 신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녹암 선생님의 명복을 비옵나이다.

          문하생 김 병 각 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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