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형 체인약국이 고전하는 이유 - Pharmacy Benefit Manager (PBM)
지난 포스트에서 미국의 대형 체인약국 중 하나인 월그린스 (Walgreens)가 영업실적이 저조해지자 운영비 절감을 위해 점포 수를 줄이는 과정에서 겪는 환자의 불편함에 대해 기술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실적부진에 따른 점포 수 감소는 월그린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다른 대형 체인약국에도 일어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큰 체인약국인 CVS의 2025년 9월 현재 점포 수는 9,000여개로, 10,000개에 가까왔던 지난 2015년보다 10%이상 줄어든 상태다. 또, 2020년까지만 해도 CVS와 월그린스 다음으로 미국 전역에 걸쳐 약국점포를 많이 가지고 있었던 라이트-에이드 (Rite-Aid)는 2023년과 2025년 두 번이나 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다. 이 약국체인은 첫번째 파산 신청 후에 투자자를 구해 다시 살아나는가 싶었지만 두번째 파산 신청으로 이어져 완전히 문을 닫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면, 2010년대에만 해도 잘 나갔던 미국 대형 약국체인들이 왜 고전하고 있는 것일까?
체인약국들이 고전하는 이유로 비의약품 매출 감소 등을 들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처방약에 대한 지불금액 (reimbursement rate) 감소이다. 예를 들어, 월그린스의 경우, 전체 매출의 60%이상을 처방약 판매에서 올린다. 그래서, 처방약에 대한 지불금액 – 처방약을 팔 때 보험회사로부터 받는 금액 – 이 줄면 전체매출에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처방약에 대한 지불금액은 정부기관인 건강보험관리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협력하여 결정하지만, 미국에서는 이 역할을 Pharmacy Benefit Manager (PBM; 약국혜택관리회사)라고 불리는 사기업들이 맡아왔다.
보험가입자가 약국에서 처방약을 살 때 약국은 환자의 보험회사에 약값을 청구한다. 그런데, 미국의 건강보험의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처방약에 대한 지불혜택 규정도 보험마다 각각 다르다. 그래서, 약국이 환자마다 달라지는 지불혜택 규정을 일일이 확인하고 이에 따라 약값을 청구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든다. 그리고, 약국 입장에서는 보험에 약을 청구하는데 드는 시간에 처방약을 하나라도 더 조제하는 것이 이익이다. 이것이 PBM이라는 회사가 등장하기 시작한 배경이다. 즉, PBM은 약국이 환자의 보험회사에 청구하는 것을 대리하여 도와주는 역할로 시작한 회사들이다.
PBM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 역할은 단순했지만 지금은 매우 복잡하다. 많은 약들이 시장에 나와 있기 때문에 보험회사는 이를 모두 지불해 주는 것보다 자신에게 좀 더 싼 값으로 공급해 줄 수 있는 회사들의 제품들만을 우선적으로 지불해 주는 것이 유리하다. 대량구매에 따른 할인혜택처럼 말이다. 이처럼 보험회사들이 우선적으로 지불해 주는 약들을 포뮤러리 (formulary)라고 부르는데 현재 이를 정하는 것은 보험회사가 아니라 PBM이다. 즉, 보험회사를 대신해서 PBM이 포뮤러리를 정해주는 것이다.
PBM은 포뮤러리를 정하기 때문에 제약회사와 직접 구매협상을 해서 약의 구입가격을 정한다. 즉, 약의 보험가를 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보험가는 환자가 그 약을 약국에서 받을 때 PBM이 보험회사에 청구하는 가격이다. 그런데, PBM은 약국에 동일한 보험가로 지불해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PBM도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만약 PBM이 보험회사로부터 받은 동일한 금액을 약국에 주게 되면 PBM에게 남는 것은 하나도 없게 된다. 그래서, PBM은 자신들이 정한 보험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약국에 지불해 준다.
이처럼 PBM은 처음에는 약국을 대신해서 보험청구를 해 주는 역할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제약회사, 보험회사, 약국 중간에서 거래하면서 돈을 버는 중개업자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중개업자가 약국의 존폐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PBM의 파워는 소수의 PBM에 의한 처방약 청구 시장지배, PBM이 소유한 체인약국과 보험회사 등을 통해서 나온다.
2025년 9월 현재, CVS Caremark, Express Script, OptumRx 등 세 개의 대형 PBM이 전체 처방약 청구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세 회사는 모두 포브스 톱 50 기업 (Forbes Fortune 50) 에 올라갈 정도로 그 규모가 크니, 미국에서 약값으로 돈 버는 것이 얼마나 수익이 많이 나는 사업인지 알 수 있다. 어쨌든, 이 세 회사가 합병 등을 통해 커지기 전에는 여러 PBM들이 약국, 보험회사, 제약회사로부터 유리한 계약을 따내기 위해 서로 경쟁해야 했지만 이제는 처지가 반대로 되어 버린 것이다.
또, PBM 중 CVS Caremark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큰 체인약국인 CVS를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 PBM은 보험가입자가 CVS 약국에서 처방약을 구입할 경우 좀 더 싼 가격으로 약을 제공함으로 CVS 약국을 이용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또, 이를 바탕으로 CVS가 아닌 다른 약국들이 낮은 지불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세 PBM 모두 건강보험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CVS Caremark는 애트나 (Aetna), Express Scripts는 시그나 (Cigna), 그리고, OptumRx는 유나이티드 헬스 그룹 (UnitedHealth Group)라는 보험회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 세 보험회사는 미국 전체 건강보험시장의 약 사분의 일을 차지한다. PBM은 제약회사로부터 리베이트 (rebate)를 받는데 제약회사와 리베이트 협상할 때 이런 가입자 규모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PBM은 보험가와 지불가의 차이로 돈을 번다 (이를 스프레드 – spread - 라고 부른다). 그래서, 지불가가 낮으면 낮을수록 돈을 더 벌 수 있다. PBM은 처방약 청구 시장의 지배력과 체인약국 소유 등을 통해 약국에 주는 지불금액을 낮추어 왔다. 불투명한 시장으로 인해 PBM이 처방약 지불금액을 얼마나 낮추어 왔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하지만, 일부에 의하면 지난 5년간 두자리 수 퍼센트 수준으로 지불금액이 감소한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체인약국의 수익이 처방약 매출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월그린스, 라이트-에이드 같이 PBM을 가지지 못한 약국들이 지불금액의 감소로 인해 고전해 온 것이다.
그런데, PBM은 보험가가 높아도 돈을 더 벌 수 있다. 왜냐하면, 스프레드가 최대로 되는 경우는 보험가가 높고 지불가가 낮을 때이기 때문이다. 즉, PBM입장에서는 보험가가 높을수록 이익이다. 그래서, 미국의 비싼 처방약 가격의 원인 중 하나로 PBM을 지목하고 미국 정부는 이들의 독과점과 불공정 거래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미국의 체인약국들이 고전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으로 PBM의 독과점과 불공정 거래를 들 수 있다. 그런데, PBM은 미국의 독특한 건강보험제도의 산물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전국민건강보험이 없고 사기업들이 건강보험시장을 장악한 것이 PBM이 등장하여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예는 정부가 모든 국민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전국민건강보험을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보여준다.

<필자소개> 신재규 교수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