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륵’
병실 문 열리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새벽 1-2시쯤 온다고 했는데 벌써 때가 되었나 보다.
“환자님, MRI 찍으러 가셔야 합니다.”
어머니는 어제 (8월 4일) 낮, 담당 교수에게 외래진료를 받았다. 담당 교수는 어머니의 황달이 점점 심해지고 있으니 입원해서 MRI 등 검사를 좀 한 다음, 이를 토대로 시술을 해서 황달을 완화해 보자고 권유했다. 우리도 어머니의 상태가 점점 나빠졌기 때문에 이에 동의했다. 다행히, 빈 병실이 있어서 당일 입원할 수 있었다.
입원 수속을 할 때 간호사는 오후 11시쯤 MRI를 찍게 되며 시술은 월요일에 받으실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저녁시간에 간호사는 MRI 검사실 사정으로 계획이 새벽 1-2시쯤으로 바뀌었다고 알려주었다. 구토로 거의 드시지 못한데다 외래진료를 마치고 입원하기까지 거의 4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기에 입원하셨을 때 어머니는 너무 지치신 상태였다. 그래서, 저녁시간부터 주무시기 시작한 어머니는 MRI 검사실로 수송하는 사람이 왔을 때에는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어머니, MRI 검사 장소로 수송하는 분이 오셨어요. 일어나실 수 있으세요?”
“몇 시니?”
시계를 보니 2시였다. 옆 침대의 다른 환자분도 인기척에 깨셨는지 코고는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힘겹게 일어나신 어머니는 침대에서 휠체어로 옯겨 타셨다. 나는 어머니와 수송하는 분을 따라 나섰다. 우리는 북적대던 낮과는 달리 적막감이 드는 병동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MRI 검사실로 갔다. MRI 검사실에는 검사를 담당하는 하는 것으로 보이는 두 명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이 토요일 새벽인데 이 시간에도 일을 하네.’
검사 스케줄에 적힌 환자들 수로 보아 밤새도록 일을 하는 것 같았다. 검사실로 어머니를 수송하시는 분은 다시 병동 쪽으로 휠체어를 끌고 돌아갔다. 보호자는 검사실로 들어올 수 없어서 나는 환자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했다. 환자 대기실은 텅텅 비어 있었고 MRI에 대한 안내방송만이 TV 스크린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낮에는 기다리는 환자로 붐빌 텐데 밤이라 아무도 없구나.’
난 주위를 둘러 보았다. 환자 대기실로 들어오는 통로에 걸린 안내판에는 ‘외래’라고 크게 쓰인 글자가 눈에 들어 왔다.
‘입원환자만을 위한 MRI 검사실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 병원에서 MRI같이 비싼 장비를 입원환자와 외래환자로 구분해서 사용할 이유가 없지.’
착각에서 벗어나게 되자 난 왜 병원이 위급하지도 않은 입원환자에게 MRI 검사를 한밤중에 시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비싼 MRI를 하루 종일 돌려야 이익이 극대화되니 외래환자는 낮에, 입원환자는 밤에 검사하는 구나!’
입원수속할 때 당일 밤에 MRI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빨리 검사를 받을 수 있게 해 준 병원에 대해 고맙게 생각했었는데 그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먹지도 못하는 환자를 잘 자게라도 해서 기운을 내도록 돕지는 못할 망정 돈 몇 푼 더 벌려고 곤히 자고 있는 중증 입원환자를 한밤 중에 깨워서 급하지도 않은 검사를 시키다니! 병원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3시가 넘어서 검사를 마치셨다. 거의 한 시간 동안 검사를 하신 것이다. 기진맥진해서 병실에 돌아오신 어머니는 바로 주무시기 시작했다.
며칠 후 삼성서울병원에서 퇴원하신 뒤 어머니는 토요일 새벽에 받으신 MRI 검사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때가 입원기간 중 가장 힘들었어. 암 때문에 등이 아픈데 좁은 기계안에 갖혀서 한 자세로 오랜 시간동안 참고 있어야 하는게 너무 견디기 어려웠어. 거기에 못 먹고 토해서 기운이 없는데 잠도 못 자게 했잖아.”
환자의 안녕보다는 수익을 우선시하는 비인간적인 병원.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