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물책임에 관한 국내외 판례 소개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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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수정 최종수정 2006-10-16 11:33
전순덕
·서울대 약대, 연세대 법무대학원
·약국(약사) 및 특허사무소 근무
·제40회 사법고시 합격
·법무법인 移山변호사
·약업닷컴 '전문가 Q&A' 의료·약사·생활법률 자문위원

표시상 결함여부 판단기준 구체적이어야
법적 정의만 갖춰…제조자 설명·지시 등 상세규정 필요


우리나라의 판례소개


(1)서론

아직은 2002. 7. 1.부터 시행된 PL법이 적용된 대표적인 대법원 판례가 없으나 PL법이 시행되기 전에도 제조물의 결함과 관련한 다수의 판례가 있었다.

이 판례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과실책임원칙에 기한 불법행위책임의 법리로 제조물과 관련된 책임 문제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제조물에 대한 제조·가공상의 결함의 경우(본 PL법의 경우 무과실책임)에도 무과실의 제조물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제조물에 관련된 정보가 제조업자에게 편중되어 있는 점, 제조과정 및 제조물의 하자에 관한 입증이 어려운 점 등을 반영하여 제조업자의 과실이나 인과관계를 추정하는 방법으로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입장을 보여왔다.

우리법원에서 결함의 개념 및 그에 대한 판단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한 판결이 1992년의 이른바 `변압변류기사건' 판결이다. 이 판결 이전 비록 결함개념을 도입하지는 않았지만 제조물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 제조업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있었으며, 이 판결 이후에는 이 판결에서 제시된 결함의 개념 및 결함의 판단기준에 기해 제조물 책임 문제를 다룬 대법원 및 하급심의 대표적인 판례가 몇 가지 있으므로 이하에서 이들을 소개하여 본 PL법이 시행되기 전의 판례 동향을 살펴보겠다.
 
(2)제조업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사례

① 경상사료사건(대법원 1997. 1. 25. 선고 75다2092 판결)

판결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원고는 피고가 경영하는 사료공장에서 사료를 매입하여 자기 양계에 급식한바 그 3~4일 후부터 닭들이 심한 탈모현상과 더불어 난소가 극히 위축되고 복강내 침출물이 충만되는 등 심한 중독현상을 일으키고 매일 약80%에 달하던 산란율이 급식 후 약10일이 경과한 무렵부터는 약30% 이하로 떨어져 양계의 경제성이 완전상실 되어 끝내는 모두 폐기처분하기에 이르렀다.

감정인이 그간 원고가 보관하고 있던 사료로서 사양시험을 한 결과 원고의 양계장에서 나타난바와 똑같은 시험결과를 보였고, 그 즈음 같은 양계업자 여러 명도 피고 공장으로부터 구입한 배합사료와 기초사료를 닭들에 급식한 결과 같은 현상을 나타내어 결국 모두 폐기처분하고 말았다. 아울러 원고의 급식 방법이나 계사관리 또는 사료보관에 어떤 이상이 없었고 위 감정인이 사양시험에 제공했던 사료들이 변질되거나 부패한 것도 아니었다.

위 사실관계에 기한 법원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비록 본건 사료에 어떠한 불순물이 함유되어 있고 또 그 것이 어떤 화학적 영양학적 내지는 생리적 작용을 하여 이를 사료로 한 닭들이 위와 같은 난소협착증을 일으키게 되고 산란율을 급격히 현저하게 저하케 한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 사료에 어떤 불순물이 함유된 것이 틀림 없어 제조과정에 과실이 있었고 이로 인하여 원고가 사육하던 닭들이 위와 같은 현상을 초래하게 된 것이라는 이른바 인과관계는 입증되었다 할 것이므로 사료제조 판매자인 피고에게 불법행위의 책임을 인정하였음은 정당하다.

위 판결은 정황증거에 의해 입증되는 간접사실에 기해 제조물의 결함, 제조업자의 과실, 제조물의 결함과 손해발생과의 인과관계를 추정하여 피해자 보호를 도모하였다는 점에서 제조물책임에 관한 법리구성의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②서울적십자병원 질소통 사건(대법원 1979. 3. 27. 선고 78다2221판결)

가스공급회사가 서울적십자병원에 질소가스를 공급하였는데 그 용기가 산소통으로 오인될 수 있게 표시되어 있었고, 병원은 이를 질소가 아닌 산소로 오인하여 이를 환자에게 마취제와 함께 주입하여 환자를 사망케 한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가스공급회사가 공급한 질소통이 외관상 산소통으로 오인될 수 있도록 도색과 문자가 된 채 서울적십자병원으로 공급되었다면, 가스공급회사는 서울적십자병원과 함께 공동불법행위자로서의 연대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시하면서 가스공급회사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위 판결은 제조물의 표시상의 결함에 대해 공급업자에게 그 책임을 인정하였으나 표시상의 결함의 내용이나 그 판단기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판시하지는 아니하였으며 아직까지 이를 제시한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은 없다. 이처럼 표시상의 결함으로 인한 소비자의 피해에 대해 제조업자나 공급업자에게 그 책임을 묻게 되면 제조물의 사용과 관련된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생명과 신체에 대한 안전을 확보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본 PL법의 제정에 따라 표시상의 결함에 대한 내용이 법적으로 정의되어 있으나 제조업자가 합리적인 설명·지시·경고·기타의 표시를 하였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기준이 규정되어 있지는 않다. 따라서 법원은 소비자보호를 위해서 뿐 만 아니라 제조업자로 하여금 합리적인 표시를 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표시상의 결함여부에 대한 판단기준을 명확히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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