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심방세동 있어도 커피 괜찮을까?
정재훈 기자 @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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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약사.

심방세동이 있으면 커피는 끊으라고 권고하는 경우가 많다. 카페인이 심박수를 올리니 불규칙한 심장박동을 악화시킬 거란 생각에서 나온 말이다. 심방세동은 심계항진(두근거림)뿐만 아니라 잠재적으로 심부전, 혈전, 뇌졸중을 유발한다. 그런데 커피가 오히려 심방세동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가 나왔다. 2025년 11월 미국심장협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되고 미국의학협회지(JAMA)에도 게재된 DECAF 임상시험 연구 결과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UCSF)와 호주 애들레이드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카페인이 든 커피를 하루 한 잔 마시도록 배정된 그룹은 커피를 마시지 않은 그룹에 비해 심방세동 재발률이 39% 낮았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카페인 함유 커피 섭취가 재발성 심방세동(AFib) 발병 위험에 유익한, 해로운, 또는 중립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알아보기 위해 미국, 캐나다, 호주에서 무작위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불규칙한 심장 박동 병력이 있어 증상이 해결되었거나 치료를 받아서 리듬이 정상적인 200명의 환자를 6개월간 추적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 그룹은 매일 최소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다른 그룹은 모든 카페인을 끊었다.

결과는 통념과 달랐다. 커피를 마신 그룹의 심방세동 재발률이 47%였던 반면, 커피를 끊은 그룹은 64%였다. 커피를 마신 사람들이 오히려 39%나 낮은 재발 위험을 보였고 첫 재발까지 걸린 시간도 커피 섭취군에서 더 길었다.

사실 이런 결과의 단서는 이미 있었다. 이번 연구를 이끈 그레고리 마커스(Gregory Marcus) 교수팀은 2021년 발표한 다른 연구에서 UK Biobank의 수십만 명 데이터를 분석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커피를 더 많이 마실수록 심방세동 발생 위험이 낮았던 것이다.

2023년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발표된 CRAVE 연구도 비슷했다. 100명의 건강한 지원자에게 웨어러블 기기(Fitbit)와 심전도 패치를 착용시키고 24시간 단위로 커피를 마시거나 끊게 했다. 그 결과 커피가 심방세동의 강력한 예측인자인 조기 심방수축(PAC) 횟수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마커스 교수는 커피가 이런 효과를 내는 이유로 다섯 가지 추측을 제시한다.

첫째, 미주신경 억제 효과다. 심방세동의 상당수는 미주신경 긴장이 높아질 때 발생하는데 카페인이 교감신경을 활성화해 이를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심방 재분극 연장 효과다. 동물실험에서 카페인은 항부정맥제인 아미오다론처럼 심방의 재분극 시간을 늘려 부정맥을 일으키는 작은 전기 파동들이 형성되지 못하게 한다.

셋째는 신체 활동 증가다. CRAVE 연구에서 커피를 마신 날 걸음 수가 유의하게 늘었다. 운동이 심방세동을 줄인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므로 커피가 운동량을 늘려서 심방세동을 줄일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넷째, 혈압 감소 효과이다. 카페인이 혈압을 올릴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커피의 이뇨 작용으로 혈압이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커피 이야기에 빼놓을 수 없는 항염증 효과이다. 커피에 풍부한 플라바놀과 같은 항산화물질은 항염증 작용을 하는데, 염증이 심방세동의 중요한 위험인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로 인해 커피가 심방세동 재발을 막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는 이미 커피를 즐기는 심방세동 환자라면 굳이 끊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심방세동이 있는 사람이 일부러 커피를 마실 필요는 없다. 커피를 마시지 않던 사람이 마시는 게 좋은지 알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커피를 마신 후 명확하게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라면 당연히 피해야 한다.

또한 이번 연구는 지난 5년 내 커피를 마신 경험이 있는 사람들만 포함했다. 커피를 마시다가 심방세동이 생겨서 끊은 사람들은 애초에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연구 참여를 거부한 가장 큰 이유가 커피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이제는 그런 사람들에게도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안심할 수 있다는 근거가 생겼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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