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임신 중 타이레놀 먹어도 될까
정재훈 기자 @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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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약사.

두통이나 발열이 있을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약 중 하나가 타이레놀이다. 타이레놀의 주성분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은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해열진통제이며, 임신 중에도 가장 안전한 선택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최근 이 약의 안전성에 대해 우려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025년 8월 미국 마운트사이나이 의대 연구팀이 46개 연구, 10만 명 이상의 데이터를 종합 분석한 결과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노출이 자폐스펙트럼장애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고품질 연구일수록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노출과 자폐스펙트럼장애 위험 증가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으로 임신부의 절반 이상이 복용하는 약이라는 점에서, 위험 증가가 아주 작더라도 공중 보건 차원에서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문제라는 게 연구진의 지적이다.  

또한 연구진은 아세트아미노펜은 태반을 통과할 수 있으며 산화 스트레스 유발, 호르몬 교란으로 태아 뇌 발달을 방해할 수 있다는 생물학적 기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로 인과관계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2024년 미국 의학협회지(JAMA)에 발표된 스웨덴 연구는 250만 명이라는 방대한 규모의 데이터를 분석했지만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사용과 아이들의 자폐스펙트럼장애 사이에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스웨덴 연구의 핵심은 형제자매 비교분석으로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들을 비교함으로써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을 통제했다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도 처음에는 아세트아미노펜에 노출된 아이들이 노출되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질 가능성이 약간 높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형제자매 쌍을 비교하면 그런 위험 증가는 사라졌다. 

이렇게 상반된 결론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외부 변수가 결과를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경발달 장애가 있는 부모가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할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자녀도 신경발달 장애를 갖게 될 가능성이 더 높지만 이는 약 때문이 아니라 유전적 요인 때문이다. 

또한 낮은 사회적 계층, 임신 초기 높은 체질량지수(BMI), 임신 중 흡연, 정신과적 장애가 있는 부모일 경우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형제자매는 유전적 배경을 공유하고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기 때문에 이들 외부 변수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더 낮다. 이런 이유로 스웨덴 연구의 결론이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  

그렇다고 논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마운트 사이나이 연구팀은 스웨덴 연구팀의 방법론에 한계점이 있다고 반박한다. 250만 명을 조사했지만 실제 분석에는 형제자매 쌍만 포함되어 표본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통계적 검정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수십 년 동안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율이 현저히 증가한 것은 진단 기준과 사회적 인식 변화 때문일 수 있지만, 같은 시기 아세트아미노펜이 임신부의 표준 진통제로 자리 잡은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연구진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임신 중 열이 나거나 아플 때 어떻게 해야할까? 무조건 약을 피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마운트사이나이 연구팀도 “임신부들이 의사와 상담 없이 약 복용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통증이나 발열을 치료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태아에게 해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능한 한 약이 아닌 다른 방법을 먼저 시도해보고, 꼭 약이 필요한 경우라면 최소 용량을 짧은 기간 사용하며 반드시 의사, 약사와 상의하는 편이 안전하다.

어쩌다 해열진통제 한두 알을 먹는다고 해서 위험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가벼운 두통에 무조건 약을 찾아야 이유도 없다.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연구는 우리가 익숙한 약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그렇기에 약사는 새로운 근거를 살펴보고 지식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무조건 안전하다고 혹은 무조건 위험하다고 단정짓기보다 최신 지식에 기반해 균형 잡힌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 약사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래서 약사는 공부를 멈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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