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혈당 조절이 위험할 수도 있는 이유
정재훈 기자 @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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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약사.

혈당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연속혈당측정기(CGM)를 착용하고 식사 때마다 혈당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체크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면 혈당치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혈당을 잘 관리하면 망박병증, 신장병증과 같은 미세혈관합병증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혈당치를 낮게 유지하는 게 무조건 좋은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젊은 성인과 중년 당뇨병 환자는 혈당을 엄격히 관리해서 목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게 좋지만 고령자의 경우에는 다르다. 철저한 혈당 관리로 인해 얻는 이득이 생각보다 크지 않고 오히려 저혈당 위험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혈당을 목표치 이하로 낮게 유지하려다보면 혈중 포도당 수치가 너무 낮아지는 저혈당 위험이 커지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혈당이 70mg/dL 이하일 경우 저혈당으로 간주한다. 저혈당 초기에는 식은땀이 나고 떨리거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한 증상이 나타나고 더 진행되면 시야가 흐려지고 집중력이 저하되며 말이 어눌해질 수 있다. 심하면 의식 저하, 경련, 혼수까지 겪게 되는 응급상황이 올 수 있다. 운전 또는 기계 조작 중에 의식을 잃거나 혼란스러워진다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 특히 위험하다.

저혈당은 혈당을 낮추는 약을 복용 중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고령일수록 더 자주 발생한다. 저혈당 증상 또는 위험 신호를 자각하거나 대처할 능력이 줄어들고 식욕이 줄거나 식사를 거르기 쉽기 때문이다. 약도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인슐린, 설폰요소제와 같은 약물을 사용하고 있을 경우 저혈당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메트포르민, GLP-1 작용제(오젬픽, 마운자로와 같은 신약이 여기 속한다), SGLT-2 억제제(자디앙, 포시가)와 같은 약은 저혈당 위험이 덜하다. 고령이며 오랫동안 당뇨병을 앓은 사람이라면 과거부터 더 오래 사용되어온 약인 설폰요소제, 인슐린을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저혈당 GLP-1 작용제, SGLT-2 억제제와 같은 더 새롭고 안전한 약으로 바꾸는 문제에 대해 의사와 상의해볼 수 있다.  

고령자가 혈당을 어느 정도로 관리하는 게 최적인가에 대한 대규모 임상연구는 부족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수의 임상 가이드라인에서 전문가 합의의 형식으로 혈당조절 목표를 높이고 있는 추세이다. 2013년 미국 노인의학회(American Geriatrics Society)는 대부분의 고령 당뇨 환자에게 당화혈색소(A1c) 목표치를 7.5~8.0%로, 여러 만성질환을 앓고 기대수명이 짧은 사람에게는 8.0~9.0%로 제시했다.

우리나라 2023 당뇨병 진료지침 제8판에서 제시하는 노인 당뇨병 환자의 혈당조절 목표 또한 당화혈색소 7.5% 미만이다. 하지만 이런 목표는 개인별 상황에 맞게 달라질 수 있다. 인지기능이 정상이고 독립적 일상생활이 가능한 경우이며 저혈당 위험이 높은 약물을 쓰고 있지 않은 노인의 경우 당화혈색소 7.0% 미만을 목표로 할 수 있고 저혈당 위험이 높은 약물을 사용 중인 경우는 7.0~8.0%를 목표로 할 것을 권한다. 경도인지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일상생활에 도움이 필요한 경우는 저혈당 위험이 높은 약물 사용 여부에 따라 목표치가 7.5% 미만 또는 7.0~8.0%로 달라진다. 중등도 치매, 일상생활 기능장애, 중증 기저질환 또는 요양시설에 거주하는 노인이 저혈당 위험이 높은 약물을 사용 중일 때는 목표치가 7.5~8.5%로 높아진다.

고령이어도 아주 건강한 사람이라면 젊은 성인과 비슷하게 혈당을 관리하는 게 유익할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만성질환이나 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고령자의 경우 혈당을 잘 관리해도 얻는 게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 엄격하게 혈당을 관리해도 그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릴 수 있다. 혈당을 낮게 관리하는 이점보다 저혈당의 위험이 더 큰 사람의 경우라면 저혈당 위험을 낮추는 게 더 중요하다. 건강뉴스나 유행을 따라가기 전에 먼저 나는 누구인지 되돌아보는 지혜를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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