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도파민은 억울하다
정재훈 기자 @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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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약사.

요즘 유행하는 말 중 하나가 도파민 디톡스다. 영상, 게임, 단 음식, 심지어 친구와의 대화까지 줄이면 삶이 다시 즐거워질 거라고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극적인 세상에서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돼 뇌가 무뎌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치 도파민이 현대인의 모든 중독과 불행의 주범이라도 되는 듯하다.

하지만 도파민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건 억울해도 한참 억울한 일이다. 도파민은 직장인이 아침에 졸음을 이겨내고 출근하도록, 학생이 지루함을 견디고 공부를 계속하도록 만드는 뇌 속의 조용한 추진력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성취하도록 돕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도파민 터진다’는 말도 도파민에 대한 오해를 보여준다. 도파민이 단순히 쾌락을 주는 물질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달콤한 케이크를 맛보거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좋아요’가 쏟아지거나 또는 게임에서 승리했을 때 흔히 ‘도파민이 폭발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도파민이 쾌감을 유발한다는 개념은 관련 연구가 아직 초기 단계였던 1970년대에 나온 것이다. 생쥐,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동물 실험에서 도파민이 보상과 관련된다는 점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관련 연구가 진전되면서 도파민이 보상 그 자체보다 기대와 예측, 그리고 동기 부여와 더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도파민은 무언가를 얻기 직전, 그것이 주어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순간에 가장 활발히 분비된다. 케이크를 한 입 먹기 직전, 스마트폰을 열기 직전, 선물 포장을 뜯기 직전에 분비되어 우리를 행동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정작 보상을 받는 순간에는 도파민 활동이 줄어들 수 있다. 도파민은 특정 활동의 결과 자체보다는 기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결과가 예상보다 좋으면 도파민 뉴런이 강하게 반응하고 결과가 예상보다 나쁘면 반응이 감소한다. 결과가 예상대로일 때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도파민은 쾌락을 주는 물질이 아니라 보상을 향해 나아가도록 행동을 유도하는 신호다. 어려운 문제를 풀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는 건 도파민보다는 세로토닌, 옥시토신, 엔도르핀과 같은 다른 신경전달물질의 작용과 더 깊이 관련된다. 하지만 우리가 문제를 붙들고 있게 만든 건 도파민이다. 이 신경전달물질은 우리가 움직이고 기억하고 주의를 유지하는 데도 꼭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파민은 ‘중독의 화학물질’, ‘현대인의 타락을 부추기고 디지털 노예로 만드는 주범’으로 비난받는다. 이렇게 도파민을 단순화하여 악당처럼 몰아가는 과정에서 나온 게 도파민 단식이다. 도파민을 자극하는 모든 활동을 끊으면 뇌가 회복되고, 다시금 사소한 일상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도파민은 끊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침에 커피를 떠올리는 순간, 메신저 알림이 울리는 순간, 또는 반가운 얼굴을 보는 순간에도 도파민이 작동한다. 설령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기대하는 마음만으로도 도파민은 분비된다. “도파민을 끊겠다”는 말은 사실상 “기대와 동기를 끊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도파민 단식의 전파자 중 한 사람인 실리콘 밸리 스타트업 창업자 제임스 싱카는 뉴욕 타임즈와 인터뷰에서 도파민을 끊겠다며 다른 사람과 눈 맞춤마저 피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대만으로도 분비되는 도파민을 의식적으로 줄이거나 리셋할 수는 없다.

약으로 도파민의 작용을 일부 조절할 수는 있다. 뇌에서 도파민 수치를 높이는 약물로 레보도파와 같은 파킨슨병 치료제, 반대로 도파민 작용을 낮추는 약물로 조현병 치료제가 있다. 하지만 도파민 자체를 조절해서 중독을 치료하려는 시도들은 대체로 실패해왔다. 강박 행동과 중독의 원인은 다양하며 이를 오직 도파민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다.  

도파민은 우리가 몰입하고, 배우고, 도전하고, 성장하게 만드는 뇌의 필수적 도구 중 하나이다. 이 신경전달물질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과학도, 예술도, 사랑도 없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도파민 디톡스가 아니라 잘못된 건강정보로부터의 해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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