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먹는 비만치료제 신약에서 배울 수 있는 것
정재훈 기자 @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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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약사.

비만과 당뇨를 치료하는데 위고비, 오젬픽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먹는 알약이 곧 세상에 나올 것 같다. 오포글리프론(orforglipron)이란 약물을 함유한 알약이다. 이 약은 분자 크기가 작으며 먹어서 효과를 낸다. 기존의 GLP-1 유사체는 주사해야 하고 값도 비싼 편이며 냉장 보관을 필요로 하지만 먹는 알약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냉장 보관을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물류, 유통 면에서도 용이하다. 사용자 관점에서도 먹는 약이 주사약보다 매력적이다.

오포글리프론의 개발사인 일라이 릴리의 최고 과학 책임자인 다니엘 스코브론스키 박사는 앞으로 수십 년 내에 전 세계적으로 7억 명이 2형 당뇨병을, 10억 명이 비만으로 고생할 거라며 “주사제는 전 세계 수십억 명을 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1주일에 한 번 주사하더라도 연간 플라스틱 주사 장치 884억 개가 필요하다. 먹는 약으로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면 주사제보다 환경 면에서나 비용 면에서 훨씬 나은 해결책이다.

미국 현지시간으로 4월 17일 일라이 릴리가 발표한 임상 3상 결과에 따르면 먹는 당뇨/비만치료제의 효과는 오젬픽, 마운자로와 같은 주사제와 비슷한 수준이다. 2형 당뇨병이 있는 참가자 559명을 대상으로 40주 동안 신약 또는 위약을 복용하도록 한 임상 시험 결과 신약을 복용한 사람들의 혈당치(A1C)는 평균 1.3~1.6% 감소했다. 체중 감소 효과도 나타나서 연구 종료 시점까지 최대 7.3kg이 빠졌다. 부작용은 주사형 약물과 비슷하게 설사, 소화불량, 변비, 구역(오심), 구토였다.

먹는 약으로 주사형 약물과 동일한 효과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슐린, GLP-1과 같은 펩타이드 호르몬은 덩치가 제법 큰 분자여서 먹어서는 흡수가 잘 되지 않는다. (보통 2~50개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분자는 펩타이드, 이보다 많은 아미노산이 연결된 분자는 단백질로 분류한다.) 오젬픽, 위고비의 약성분인 세마글루티드의 경우 흡수촉진제(SNAC)를 써서 먹어도 약성분이 흡수되도록 설계한 알약(리벨서스)이 있긴 하다. 하지만 고작 1%가 흡수되는 정도여서 나머지 99%의 약성분이 낭비된다는 단점이 있다. 흡수촉진제가 희석되어 흡수에 영향을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공복에 물 반 컵(120ml 이하)와 함께 약을 삼켜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이번에 임상 시험 결과가 발표된 오포글리프론은 저분자화합물 신약으로 식전 또는 식후에 복용할 수 있다.

고분자화합물 바이오 신약이 개발되고 나서 저분자화합물 신약이 개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편두통 예방에 효과적인 바이오 신약 에레누맙이 2018년 5월에 미국에서 승인된 뒤 2019년 편투통 치료 신약 우브로게판트(Ubrogepant)이 세상에 나왔다. 에레누맙과 같은 단클론항체로 CGRP(Calcitonin Gene-Related Peptide) 경로를 차단하는 게 편두통 병태 생리학에서 핵심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되면 더 작은 분자로 동일한 경로를 차단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자 하는 노력에 힘이 실리기 마련이다. 오젬픽, 마운자로와 같은 주사제 신약의 성공 뒤에 많은 제약회사가 같은 효과를 내는 먹는 비만치료제 신약 개발에 더 많은 힘을 쏟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저분자화합물은 덩치가 작은 만큼 먹어도 흡수가 잘 되는 장점이 있지만 원하는 수용체 부위에만 착 달라붙지는 않는다는 단점도 있다. 타겟을 벗어나 다른 곳에 약물이 작용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화이자가 지난 4월 14일(현지시간) GLP-1 계열 경구 비만치료제 다누글리프론의 임상 시험을 중단하며 개발을 포기하기로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임상 시험에서 약물로 인한 간 손상 가능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저분자화합물 약물인 텔카게판트(Telcagepant)도 간 독성 부작용으로 인해 개발이 중단된 바 있다. 표적이 되는 인체내 단백질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어야 이를 조절하는 약물의 분자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자물쇠의 구조를 제대로 알아야 열쇠를 만들 수 있다. 신약 개발은 기초과학부터 임상시험까지 종합적 투자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건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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