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계절이 다시 돌아 왔다. 아직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어차피 미리 맞아두면 1년은 유효하므로 아직 8월 여름인데도 독감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약국 슈퍼바이저에 따르면 원래 물장사가 많이 남는다고 백신도 물장사라 마진이 상당하다고 한다. 그러니 너도 나도 모든 약국이 백신접종을 경쟁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러니 접종 시기도 빨라질 수 밖에.
올해 내 마수걸이 접종은 피하다 피하다 오히려 다른 약국에 커버 들어 갔을 때 맞게 되었다. 내 가게에는 간호사가 상주하고 있는 미니 클리닉 있어 웬만하면 환자들을 그 쪽으로 보낸다. 그래서 첫 접종을 차일 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엉뚱하게도 남의 가게에 가서 개시를 당하고(?) 말았다. 접종 해 본지 꽤 오래되서 조금 덜 익숙하고 그리고 남의 가게라 주사기며 바늘등 접종 stuff들이 익숙하지 않은데 공교롭게도 걸려버렸다. 할아버지가 약국 앞에 서서 맞겠다고 사정하시니 뭐 별도리가 없었다.
이렇게 올해 나의 첫 victim(?)이 되신 분은 미스터 가이너로 연세가 85 세이신 할아버지였다. 문제는 이 할아버지가 너무 연로하셔서 팔에 근육이 별로 없으시다는 것이다. 약간 망설이다가 그래도 근육이 조금 있는 곳에 찔렀는데 주사 바늘에 뼈가 부딪혔다. 아! 이건 아닌데 조금 더 깊이 들어 가야 하는데. 하고 주사기를 빼서 다시 찔러 보았는데 역시 뼈가 부딪혔다. 이걸 어쩐다. 다시 빼기도 그렇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백신을 그냥 주입하였다. 그랬더니 백신을 주입한 피부가 뽈록 올라왔다. 근육주사를 해야 되는 데 아마 피하주사로 간 것 같다. 이런분은 팔에 근육이 없으니 그래도 근육이 있는 엉덩이쪽에 주사를 놓았어야 했는데 약국에서 그럴수는 없으니. 작년에도 팔에 맞으셨다 하는데 그냥 무사하게 겨울을 나시길 바랄 뿐이다.
주사를 놓다보면 혈관을 건드려 주사 후 피가 흘러 나오는 경우가 있다. 백신의 효과와는 상관 없지만 피가 흘러 나오면 여러모로 찝집하다. 혹시 환자의 피에 에이즈라도 감염되어 있다면? 물론 장갑을 끼고 주사하니 전염될 확률은 0.1 %도 안되지만 어쨌든 피를 보면 기분이 좋지는 않다. 나이가 조금 드신 분들은Coumadin같은소위blood thinner를 복용하고 계시므로 피가 나오기 시작하면 잘 그치지 않고 계속 나오는 경우가 있다. 미스 로젠바움이 그런 경우였는데 피가 거의 줄줄줄 흘러내렸다. 많이 당황하는 나에게 미스 로젠바움이 매년 같은 일이 반복된다고 ‘Normal’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거의 5분간은 줄줄이 계속 나온 것 같다.어찌보면 Blood Thinner의 효과가 대단한 것 같기도 하다.
약사들은 18세이상 어른들에게만 백신을 접종할 수 있는데 작년 첫 해에는 그 규범을 제대로 몰라 부모랑 같이 온 10살짜리 아이에게 백신을 접종한 적이 있다. 그 애가 첫 블리딩을 보여 준 아이라 조금 당황했었는데 오히려 부모가 애한테 네가 움직여서 그런거라고 핀잔을 줘서 내가 조금 민망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규정을 어기고 아이에게 준 걸 알고 혹시 하고 조금은 불안하였는데 아직 별얘기가 없는 걸 보니 큰 문제는 없었던 거로 추정된다.
그 후에 아이 엄마가 빽빽 우는 소아들을 데리고 와서 내게 백신을 맞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접종을 준비하고 있는데 하도 울어대니 다음에 온다고 그냥 돌아섰다. 그 때 재네들에게 내가 무슨 수로 백신을 접종하나 하다가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찾아보다가 약사는 18세이상에게만 접종하는 것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늦게라도 안게 다행이었지만 전에 10살짜리 애에게 너무 미안했다. 피까지 봤는데..
각 약국별로 올해도 어김없이 목표치가 내려왔다. 사실은 약사들 쥐어짜서 약국 수입 올리려는 거다. 백신 접종에 약사들은 아무런 어드밴테이지가 없다. 페이를 더 주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베니핏도 없으면서 약사의 엑스트라 잡만 늘어난 거다. 작년에 노스캐롤라이너의 한 약사는 백신 접종 때문에 약사의 고유 업무가 방해 된다며 약국을 떠나기 까지 했다. 하지만 이젠 떠나봐야 소용없다. 모든 약국이 다 백신을 접종하고 있으니까. 불만이 있어도 갈 데가 없다.
사실 약사 노조가 세다면 이렇게는 못할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여기서도 노조의 필요성이 대두된다고나할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백신 접종을 즐기는 편이다. 약사의 고유업무가 지루해질 때 주사 한 방, 그게 그렇게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