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살면서 스페인어를 쓰는 멕시코, 중남미 사람들을 히스패닉이라 부른다. 물론 브라질 사람들은 포루투갈 말을 쓰지만 그 사람들도 포함해서 모두 히스패닉, 보다 정중한 언어로는 라티노라고 부른다. 70% 이상은 멕시코 사람들이고 나머지는 중남미 사람들이다. 인종적으로 백인도 있고 아이티나 도미니카 사람들처럼 흑인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백인과 인디오들의 혼혈로 피부 색깔은 우리와 비슷하고 이목구비는 백인들과 비슷한 사람들이다. 현재 미국에서 흑인을 제치고 가장 큰 소수 민족 집단이며 인구가 점점 불어나 가까운 미래에는 미국 인구의 메이저가 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공공 서비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장소에서 영어와 함께 스페인어는 거의 공용어가 되었다. 학교에서도 대부분의 애들은 스페인어를 제 1 외국어로 택해 공부하고 있다. 우리 애들도 큰 애는 중·고등학교 7년간 스페인어를 배웠고 대학에서도 부전공으로 스페인어를 택하고 있다. 둘째와 막내도 현재 학교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 그래서 라티노들에게는 영어 없이도 미국에서 그럭저럭 살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러나 어쩌다 나같이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는 약사를 만나면 그들도 고생 좀 하게 된다. 사실 그들 보다 약사인 내가 더 고생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젊은애들이 전혀 영어를 못하니 참 난감할 때가 많다.
서울도 강남 사람들과 강북 사람들 다르듯, 이 곳 미국도 백인 거주 지역, 흑인, 히스패닉 거주지역이 확연히 구분된다. 물론 법적으로 구분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흑인이나 히스패닉들은 비용이 저렴한 아파트 등에 많이 거주하므로 자연스럽게 인종간 거주 지역이 구분된다. 그래서 히스패닉 거주지역의 약국에서 근무할 땐 스페인어 때문에 약간 고생할 때가 있다. 히스패닉 등은 멕시코 국경을 그냥 넘어와 불법체류하는 경우도 많으므로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은 사람들은 영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미국에서도 그들끼리 모여 살고 인구가 많아지면서 그들끼리의 경제권도 형성되어서 굳이 영어를 안 배워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히스패닉들은 가난하므로 대부분 의료보험이 없다. 불법체류자도 많으므로 저소득층을 위한 메디케이드 보험 환자들도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그래서 처방전을 들고 오는 경우도 드물지만 처방전을 들고 오면 주소나 생년월일 등은 최소한 영어로 얘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영어로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행히 영어와 스페인어를 잘하는 히스패닉들이 주위에 많으므로 쉽게 그러한 불편은 해소되긴 한다. 그래서 약국에서도 지역에 따라 종업원들을 같은 인종으로 배치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따라서 흑인 거주 지역에는 흑인 종업원이 많고 히스패닉 거주 지역엔 히스패닉 종업원이 많다. 굳이 특별히 노력 안 해도 그 지역에서 종업원을 뽑으면 같은 언어의 같은 인종이 근무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백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Bethesda city의 미 국립 보건원(NIH) 근처 내 약국에도 2명의 히스페닉 테크니션이 낮 근무 하나, 저녁 근무 하나씩 있어 가끔씩 찾아오는 히스패닉 손님들을 대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더구나 한국어에 너무나 능통한(?) 약사도 하나 있어 특별히 한국 고객들을 대하는데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사실 많진 않지만 한국분들이 오셔서 한국인 약사가 있으면 정말 좋아들 하신다. 병원이야 주소록에 나와 있는 한국인 의사가 있는 곳을 찾아가면 되지만 약국이야 한국사람이 있다고 특별히 광고도 안하고 숫자가 그리 많지도 않으니 찾기도 힘들다. 그래서 뜻밖에 나 같은 한국인 약사를 만나면 정말 좋아하시고 어떨 때는 날 붙잡고 그 간의 모든 불편함과 억울함(?)을 호소하시곤 한다. 그 이후로는 편하니까 내 약국의 고객들이 되셨고 나도 특별히(?) 편의를 봐 드리고 있다. 외국에 나와 있으니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