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찬 용틀임으로 제2의 창업 선언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체육대회 갖고 새출발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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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수정 최종수정 2006-09-22 16:49
[창립 30주년 기념행사]

㈜한국파마(사장·박재돈)는 지난 3일 오후6시 리츠칼튼호텔에서 창립 30주년 기념식을 갖고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힘찬도약, 제2창업·이란 슬로건 아래 박재돈사장을 비롯한 일본 ‘오따’사등 해외 거래선, 우수협력업체 등 총 2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진 제 30주년 창립기념식에서 “한국파마는 전임직원 및 협력업체가 함께 노력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했다.

박재돈 사장은 기념사를 통해 ·(주)한국파마의 오늘이 있기까지 사랑과 염려로 지켜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한다·면서 “언제나 사회와 인류의 행복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아 다함께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당부하였다.



또한 이날 축하객으로 참석한 일본 (주)오타사의 오시아키오타사장은 ·비록 국가는 다르지만 동종 제약회사인 한국파마의 창업30주년을 축하한다·면서 · 한국파마가 30년을 헤쳐온 실적에 자신감을 가지면서도 또한 초심을 잊지 않고 더욱더 앞으로 40년, 50년의 전통을 착실하게 이루시는데 최선을 다해주도록 바란다·로 축하 인사를 대신하였다.

(주)한국파마는 1974년 민생제약으로 첫걸음을 시작하여 2000년 100만불 수출탑을 수상하고 이제는 년 매출 300억의 중견제약회사로써 입지를 굳혀 왔으며, 지금까지 출시된 대표품목은 속편제에프정(전문소화제), 솔린액오랄(하제완장제), 거풍정환(순환기용제) 등이 있다.

한편 이날 기념식에서는 전직공장장에 공로패를, 20년 이상 장기근속상에 박동석이사, 송재순이사, 이병진이사, 10년 근속에 임승재부장외 12명에 대해 공로패를 수여했다.



또한 다음날인 9월4일 한국파마 전임직원 및 계열사 임직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도 양평의 미리내 캠프에서 ·(주)한국파마 30주년 기념 한마음 체육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개회사에서 박재돈 사장은 · 한국파마 30년 동안 함께 한 파마가족모두에게 감사함과 함께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며 ·이제 한국파마는 창업30년을 기점으로 새로이 초심으로 돌아가서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는 팀별 축구, 족구, 발야구등 각가지 체육대회와 레크레이션이 어우러져 가을날 따사로운 햇빛아래에서 한마당 큰잔치를 벌였다.

74년 민생제약 인수, 창업
90년 향남제약공장 설립, 본사 서울진출
지방 제약기업 한계 극복하고 전국적 기업으로 우뚝
먼디파마등과 위탁생산 체결로 우수약품 생산체제 구축


[한국파마의 30년 발자취]

(주)한국파마가 지나온 30년은 역경의 연속으로 창업자 박재돈사장의 굴하지 않는 강력한 의지가 없었다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발자취였다.
한국파마의 30년 역사는 박재돈 사장이 지난 74년 9월 민생제약을 인수, 창업을 선언하면서 시작되었다.

항도 부산에서 출발한 한국파마는 부산-대구 등 영남권을 중심으로 영업망을 구축하면서 서서히 판매 영역을 확대했으며, 제약회사로서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75년 상호를 한국파마로 변경하여 본격적인 영업에 나선 1년 만에 76년 공장을 완공하여 제약보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행보에 나섰으며, 83년 8월 서울사무소를 개설하여 전국적인 제약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정지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부산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한국파마로서는 정보에 어두워 신제품 개발 등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고 지방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어 제약기업의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을 안고 부산지역에서 탄탄한 기반을 다진 한국파마는 전국적인 제약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원대한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작업을 전개하여 때마침 정부의 KGMP 정책의 영향으로 서둘러 90년 향남제약 공단에 자동화 공장을 완공하면서 본사를 서울로 옮기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게 되었고 본격적인 제약기업으로서의 경영 환경을 조성해 나가면서 경쟁력을 강화해 나갔다.



이후 전국적인 영업망을 구축하는 등 영업-생산-마케팅-개발등 각 분야에 걸쳐 조직을 확대하기에 이르렀고 한국파마의 건실한 이미지를 차분히 심어 나갔다.

그러나 한국파마는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다. IMF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한때 자금난이 몰리면서 도매상들의 부도사태로 존폐의 위기를 맞았으나 박재돈사장의 피나는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기도 했다.

그것도 잠시나마 숨돌릴 겨를 없이 2000년부터 의약분업 제도가 시행되면서 일반약이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파마로서는 치료제 기반이 허약해 매출이 급전직하 하는 등 절대 위기에 몰렸으나 서둘러 전문약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등 심혈을 기울여 위기를 기회로 반전 시켰으며, 그 와중에도 자회사인 감마선 멸균 시스템을 갖춘 ‘(주)소야’ 설립에 상당한 고초를 겪는등 어려움이 연속이었으나 박재돈 시장을 중심으로 한 전사원의 일체감속에 강력한 불굴의 의지로 난관들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칠전팔기와 같은 신화를 실현시킨 박재돈 사장의 제약보국의 꿈이 없었다면 한국파마의 30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를 아는 지인들의 평가이다.

한국파마는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제품력을 치료제 중심으로 구축하면서 병원시장에 대한 영업망을 확충하여 이제는 전국을 효과적으로 커버 할수 있는 맨파워를 형성하고 있다.



이와 함께 향남제약 공장의 우수한 생산시설 활용을 극대화하여 1999년 먼디파마사, 2003년 스티펠사와 톨매뉴팩춰링 계약을 체결하여 우수의약품 생산체제를 완벽하게 갖추어 가동하고 있다.

또한 2003년 12월에는 일본의 ‘오따’사와 소화제 ‘오따위산’의 국내 독점 판매계약을 체결하는등 제품력을 꾸준히 증강 증강하면서 2010년 매출 1천억 고지를 달성하기 위한 전환점을 마련 하는 등 중견제약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나가고 있다.

한국파마는 이러한 경영환경을 바탕으로 매출목표를 2004년 3백억원대, 2005년 4백억원대, 2006년 5백억원대로 설정, 치료제를 바탕으로 한 성장 드라이브 정책을 실현시켜 나감으로써 2010년에는 반드시 1천억 고지를 달성한다는 청사진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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