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셀, `석유도 소금물처럼…' 단순 의뢰
석탄 대체할 뛰어난 조명 연료 밝혀져
의료약 아닌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게 돼
19세기 중반은 조명 기술이 세상의 주목을 끌고 있었으며, 석탄가스를 쓰면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정도의 밝기를 갖는 인공의 빛을 얻을 수 있음이 알려지고 있었다. 소수의 과학자들은 여러 가지 타는 액체, 예를 들면 석유(石油)를 사용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던 때였다.
약 가게를 지나가던 비셀도 기름을 쓰는 조명이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것은 충분한 기름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셀은 약병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석유도 식염과 마찬가지로 지하에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소금물을 얻는 데 쓰는 방법으로 그것을 지면까지 퍼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석유가 조명에 적합한지 아닌지를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는 키어의 석유를 한병사서 벤자민 실리만이라는 화학교수에게 분석을 의뢰했다. 분석한 결과 매우 뛰어난 조명용 연료를 얻을 수 있음이 밝혀졌다.
간단한 처리에 의해서 그 기름으로부터 많은 귀중한 제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실리만 교수의 보고는 그 때까지 화학자가 내린 예측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 중의 하나가 되었다.
비셀은 펜실바니아주 타이터스빌의 유전을 매입하고 드레이크 대령이라고 불리는 사람을 고용하여 사업을 시작했다. 드레이크 대령은 유전에 데릭을 세웠으나 석유를 퍼올린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소금물 우물을 하나 더 파고 있을 뿐이라고 소문을 냈다.
그는 여러 날 동안 계속 파서, 1859년 8월 작업을 멈추었을 때는 20미터 깊이만큼 파들어간 상태였다. 석유를 찾아내기까지는 아직 몇 주일을 더 파야 한다고 생각하며 사람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 날도 일손을 놓고 제각기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신기하게도 그 구멍 안에는 진한 황갈색의 액체가 두꺼운 층이 되어 떠 있었다. 이것은 아주 운이 좋은 경우였다. 석유가 그토록 얕은 곳에 있는 건 그 근처에서 그 곳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주위의 몇 킬로에 걸친 지역 가운데 다른 어느 곳을 파보아도 석유를 함유한 지층에 도달하기까지는 20미터는 커녕, 300미터 정도까지 파내려 가야 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곧 하루에 약 400갤론의 석유를 산출하게 되었고 9개월 동안 이 산출량은 유지되었다.
드레이크 대령이 석유를 발견했다는 소식은 급속히 퍼져 곧바로 석유광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사막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새로운 마을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많은 석유회사가 세워졌다. 토지매매의 투기도 유행하였고, 석유로 인해 벼락부자가 되기도 했고 빈털터리가 되기기도 했다.
결국 인간은 새로운 연료를 손에 넣게 되었고, 석유는 진정 미래 세대를 위하여 놀라운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