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7> 문명아 좀 천천히 가자 !
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이종운 기자 news@yakup.co.kr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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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아 좀 천천히 가자
 

세상이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식당에 가면 키오스크로 음식을 주문해야 한다. 처음에는 거북했지만 이제 나도 제법 익숙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휴대전화로 QR코드를 찍어 주문하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자동차보험도 예전에는 직원이 직접 찾아와 설명을 해주고 계약을 체결했지만, 이제는 대부분 온라인으로 처리된다. 갱신할 때마다 자동차 계기판과 블랙박스 사진을 찍어 올려야 하는데, 결국 해내고 있긴 하지만 매번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상에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연결이 가능한 사이트는 또 얼마나 많은지. 

몇 년 전만 해도 코딩을 배워야 한다며 초등학생들이 학원에 다녔는데, 이제는 말(vive) 몇 마디만 하면 인공지능(AI)가 몇 분 안에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내는 바이브 코딩이 유행이란다. 실제로 금년 초에 삼육대 약대 학생들이 벡터라고 하는 바이브코딩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약사공론, 26.6.22).

인류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해 문명(과학기술 등 포함)이 발전하는 것이겠지만, 그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정작 인류가 적응할 시간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겨우 하나 배웠나 싶으면 또 다른 변화가 우리 에게 신속한 적응을 강요한다. 인터넷을 사용할 줄 모르면 각종 신고나 신청의 기한을 놓쳐 본의 아니게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특히 나 같은 노인들의 경우 상황이 사실 심각하다. 주민 센터에 이런 첨단 문명 부적응자를 도와주는 전담 부서가 생겼으면 좋겠다.

문명은 오늘날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었지만, 지나치게 빠른 발전은 부적응자에게 소외감을 주는 차원을 넘어, 인류의 존립 기반을 흔드는 위기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AI를 장착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등장은 사람을 로봇보다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지 않을까 염려된다. 조만간 로봇를 정말 사람과 똑같이 만들 수 있게 된다고 하니, 그 때가 되면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상대가 로봇인지 진짜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한다. 정말 무서운 이야기이다.

이제 대학에서 배운 지식으로 직장을 구할 수 있었던 시대도 지나간다고 한다. 그 정도의 전문성은 AI가 더 잘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일부 전문직 분야에서 신입 사원의 채용 규모가 대폭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사람은 AI가 처리한 일을 확인하는 정도의 경륜을 갖고 있는 최고 전문가(사람) 한 명만 필요해진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젊은 세대가 AI에게 직장을 빼앗기니, 이제 사람이 직장에서 경륜을 쌓아 최고 전문가가 될 기회마저 사라진다는 것이다. 사람의 가치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1975년 내가 제약회사에 다니던 시절에는 공장에 사람이 참 많았다. 그후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근무 인력이 현저히 줄어들었는데, 앞으로는 AI와 로봇의 도입으로 인력의 필요성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앞으로 사람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오늘날 우리의 문명(과학 기술 포함)은 이미 충분히 편리한 경지에 도달해 있다. 그래서 나는 문명이 10년 정도 멈추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좀 천천히 발전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명은 인류의 적응 여부에 개의치 않고 제 멋대로의 과속으로 발전하고 있다. 인류가 브레이크를 놓친 것은 아닐까? 판도라의 뚜껑이 이미 열린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문명은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지 인간을 파괴하면서까지 제멋대로 발전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인류가 만든 문명이 인류를 위협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는가? 이제 우리는 서둘러 판도라의 뚜껑을 닫는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 그래서 우선 사람과 구별하기 어려운 휴머노이드 로봇의 개발, 진짜와 분간하기 어려운 가짜 (음성, 영상 등)의 개발 및 제조부터 엄격히 금하기를 제안한다.

솔직히 내 생애까지는 이런 변화의 피해를 크게 받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하는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무거워진다. 문명아, 좀 천천히 가자.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 이 시대를 구원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어 순차적으로 발간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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