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따뜻한 말 한마디'는 감성적인 수사 넘어 강력한 ‘경영 자산’
이충우 교수 <숙명여자대학교 실버비즈니스학과>
이종운 기자 news@yakup.co.kr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수정 최종수정 2026-06-04 09:32

우리나라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전체인구의 20%가 만 65세 이상이 되는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는 단순히 초고령화라는 인구 문제에 국한되는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발생할수 있는 위기상황에 봉착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가적 이슈로 부상한 고령사회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검토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특히  통합돌봄과 재택요양 등 보건의료 측면에서의 제도적 보완과 시행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고령사회와 건강한 장수]라는 제목으로 약국경영 측면에서의 대응방안을 전문가 3인의 릴레이 기고를 통해 조망해 보고자 한다. 집필진으로 이현이 박사(주 자티스 대표), 방준석 숙명여대 약학대학 교수, 이충우 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교수가 참여한다. <편집자>  

 

따뜻한 말 한마디

  이충우 교수 <숙명여자대학교 실버비즈니스학과>  

 

짙어가는 오월의 녹음만큼 캠퍼스는 분주하고 눈 부신 햇살 속에서 학생들의 생각이 점차 단단해지는 시기입니다. 최근 동네 피부과에 다녀왔습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느끼지만, 내원객의 대부분은 50대 이상의 실버층입니다.

간단한 진료 후 항생제 처방전을 들고 바로 옆 약국으로 향했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소곤거리는 제 또래 여성분들의 대화에 발걸음이 멈추었습니다. 요컨대 약사의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태도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좀 멀어도 상가 1층 약국이 친절하니 다음부터는 그리로 가자”는 그분들의 대화가 메아리처럼 제 귀를 맴돌았습니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는 말처럼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대개 비슷합니다. 눈 맞춤 없는 건조한 복약 지도, 성분별 유의 사항조차 적혀 있지 않은 약 봉투, 확인차 던진 질문에 돌아오는 침묵. 머쓱한 기분에 약국 내부를 둘러보니, 상품 진열과 인테리어마저 ‘이곳에 오래 머물 필요가 없다’라는 힌트를 주더군요.

소비자의 구매 결정 과정을 이 상황에 대입해 보면 명확해집니다. 처방 약이라 할지라도 소비자의 구매 과정에는 엄연히 ‘서비스 경험’이 존재합니다. 마케팅에서는 이를 ‘경험 여정(Journey of Experience)’이라 부릅니다. 이 여정에서 고객이 좋아했던 경험은 ‘터치 포인트(Touch Point)’, 고객이 싫어했던 나쁜 경험은 ‘페인 포인트(Pain Point)’가 됩니다.

이 처방약국의 사례를 서비스 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핵심은 명확해집니다. 서비스 디자인이란 고객의 경험 여정에서 단점은 고치고 장점은 강조하여 전체적인 만족도를 높이는 작업입니다. 약국을 경영하는 약사는 의료 전문인이자, 의료 소비자와 최전선에서 만나는 ‘서비스 제공자(Service Provider)’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약국 경영의 첫걸음은 고객의 경험 여정에서 페인 포인트를 어떻게 제거하고, 터치 포인트를 어떻게 강화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최근 약업계의 뜨거운 화두이자 우려의 대상인 ‘체험형·창고형 약국’도 이 맥락에서 짚어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산업 전문 방송(채널i)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정보의 비대칭 해소와 소비자 욕구의 다변화로 인해 창고형 약국의 선호가 앞으로도 증가할 거라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약국을 찾는 고객의 지형은 이미 크게 바뀌었습니다. 인구통계학적으로 50대 이상 실버층이 급증했을 뿐 아니라, 가치 소비 측면에서 가격 민감성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특히 심리학적으로 건강을 더욱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소비하는 ‘셀프 메디케이션(Self-Medication)’ 경향이 도드라져 보인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지금의 의료 소비자는 정보 탐색에 능숙하고, 주체적인 선택을 원하며, 건강을 삶의 질과 활동성의 문제로 인식합니다. 최근 급증하는 1인 가구 트렌드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가족이 곁에서 약을 챙겨주고 병원에 동행하며 생활 속 건강을 돌봐주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돌봄 구조가 빠르게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동네약국이 단순히 ‘조제와 판매’라는 기능적 공간을 넘어, 초고령사회에서 건강한 장수(Longevity)를 지원하는 ‘생활 밀착형 플랫폼’으로 재정의되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소비자 관점에서 창고형 약국은 넓은 공간, 다채로운 품목, 정돈된 진열, 그리고 직접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특히 해외여행 등에서 월그린이나 마츠모토 기요시 같은 대형 드럭스토어를 경험하며 느꼈던 편의성과 가성비의 만족감은, 정보 탐색과 자기 결정 성향이 강한 소비자에게 강력한 터치 포인트로 작용합니다. 즉, 창고형 약국의 등장은 단순한 규모의 대형화가 아니라 약국 서비스의 ‘소비자 경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렇다면 초고령사회에서 동네약국의 본질적인 경쟁력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이를 ‘롱제비티(Longevity)’ 관점에서 바라보면, 약국의 가치는 단순히 소비자 선택의 넓이만을 확장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선택을 돕는 약사의 신뢰성, 복약을 지속하게 만드는 동기 부여, 그리고 일상 속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의료 소비자와의 관계’에 있습니다. 서비스 마케팅의 7P 믹스 중 ‘피플(People)’, 즉 사람이 핵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서비스 마케팅에서 사람은 단순히 노동력이 아니라 ‘브랜드 경험 그 자체’입니다. 약사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 질문의 방식과 설명의 깊이가 곧 약국의 ‘서비스 품질(Service Quality)’로 이어집니다. 고객이 기억하는 약국의 이미지는 화려한 인테리어보다 약사의 태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인데요. 특히 고령층 고객에게 약사는 단순한 판매자가 아니라 강력한 건강 조언자이자 과학적 판단을 돕는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현실 속 많은 약국은 여전히 고령층을 그저 ‘행동과 답변이 느린 나이 든 고객집단’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령층 고객 역시 정밀하게 세분화(Segmentation)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국내 1차 베이비붐 세대(1954~1963년생)는 대면 소통과 관계를 선호합니다. 통기타와 청바지 문화를 향유했던 이들은 정서적 교감을 통해 신뢰를 쌓으며, 전문가의 권위를 중시합니다. 반면 2차 베이비붐 세대(1964~1974년생)는 다소 다른 특성을 보이는데요. ‘신인류’와 ‘X세대’로 불리었던 이들은 사화와 개인을 분리하기 시작한 대한민국의 첫 세대입니다. 이들은 일방적 설명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왜 이 약이 필요한지, 다른 선택지는 없는지, 생활 습관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복합적으로 따져 묻는 주체성을 보입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약국 서비스는 핵심 고객층의 특성을 명확히 파악한 약사의 ‘커뮤니케이션 역량’에 좌우될 것입니다. 단지 상대를 나이 든, 그저 신체 기능이 저하된 소비자로만 대할 것이 아니라, 여전히 주체적인 선택권을 가진 ‘고객’으로 존중해야 합니다. 전문 용어 대신 쉬운 말로 설명하되 결코 얕잡아 보지 않고, 반복해서 설명하되 가르치려 하지 않으며, 노화의 맥락을 이해하되 그 불편함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앞으로 약사의 전문성은 오롯이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지식을 능수능란하게 발휘하는 역량에서 차이가 나타날 것입니다.

특히 지난 3월부터 시행된 ‘돌봄통합지원법’ 체계 안에서 약사의 역할은 더욱 도드라질 것입니다. 통합돌봄 대상자 대부분이 다제약물을 복용하는 만성질환 고령층이기 때문입니다. 지역사회에서 통합돌봄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동네약국이 먼저 친숙함과 신뢰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일상적인 건강 관리의 접점에서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주효할 수 있습니다.

“요즘 식사는 어떠세요?”, “이 약 드시고 속이 불편하진 않으셨나요?”, “지난번보다 혈압은 좀 안정되셨나요?” 같은 짧지만 따뜻한 말들은 단순한 친절의 범위를 초월합니다. 이는 약사가 나의 건강 상태와 라이프스타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나를 일회성 구매자가 아닌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이웃’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속 깊은 함의입니다.

초고령사회에서 이 ‘따뜻한 말 한마디’는 감성적인 수사를 넘어 강력한 ‘경영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고객이 약국을 조제와 판매만 이루어지는 물리적 장소로만 기억하게 할 것이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약사님, 즉 사람을 떠올리게 해야 합니다. 창고형 약국이 가격 효율성과 다양한 선택 대안을 내세울 때, 동네약국은 오직 자신만이 줄 수 있는 관계의 지속성으로 경쟁해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동네약국의 사람 중심의 서비스는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경쟁력을 가지게 됩니다. 똑같은 약이라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건네느냐에 따라 고객이 느끼는 가치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결국, 사람의 경쟁력이 곧 약국의 경쟁력이 되는 이유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롱제비티 시대, 초고령사회의 약국은 분명 지역 커뮤니티의 일상적 건강 거점이자 가장 친밀한 건강 관리의 파트너이어야 합니다. 창고형 약국의 등장은 체험형 소비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지역 커뮤니티라는 본질적 관점에서 보면 역설적으로 창고형 약국의 태생적 한계는 분명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사람이 답’이라는 동네약국의 존재 이유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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