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 사람을 무서워하는 나라, 일본(15) - 미래형 동사를 잘 안 쓰는 일본어.
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편집부 기자 webmaster@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수정 최종수정 2026-01-21 10:14

사람을 무서워하는 나라, 일본(15) - 미래형 동사를 잘 안 쓰는 일본어
    

일본어에는 신기하게도 미래형 동사가 없다. 예컨대 ‘내일 가겠습니다’라는 의미로 말을 할 때 ‘아시다 이끼마스(明日 行きます)’라고 한다. 여기에서 ‘이끼마스’는 ‘간다’라는 의미의 현재형 동사이다. 또 ‘먹겠습니다’라고 할 때도 ‘먹습니다’라는 의미의 현재형 동사를 써서 ‘다베마스(食べます)라고 하고, ‘갖고 오겠습니다’라고 할 때에도 현재형인 ‘못데기마스(持って来ます)’를 사용한다. 
    

왜 이처럼 미래를 현재형 동사로 말할까? 챗지피티에게 물어보니, 일본어에서는 ‘시간’보다 ‘상황·확정성’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설명이다.
 

나는 그 이유를 내 지론(持論)대로 일본인들이 남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즉 어디로 가라고 명령했을 때, ‘가겠습니다’라고 미래형으로 대답하면, 명령에 즉시 순종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우려가 있는데, 그게 두려워서 ‘네 갑니다’라고 하는 현재형 동사로 대답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어디에 가서 무언가 부탁했을 때 ‘네, 고객님’이라는 대답 대신 ‘잠깐만이요’라는 말을 들으면 살짝 기분이 나빠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형을 써서 미래를 말하는 경우가 있다. 옛날에 중국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때가 많았다. 기다리던 손님이 지쳐 독촉을 하면, 종업원은 예외없이 ‘네네 지금 나가요’라고 대답한다. 물론 그 대답은 대개 거짓말로 그 후로도 십중팔구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만약 이때 종업원이 솔직하게 ‘대충 10분 정도 기다리시면 음식이 나갈 겁니다’라고 미래형 동사를 써서 대답을 한다면, 아마 손님은 ‘아니 여태 기다렸는데 더 기다리란 말이냐?’라고 화를 낼지도 모른다. 그래서 종업원은 거짓말이지만 ‘네네 금방 나갑니다’라고 현재형 동사로 대답함으로써 손님의 독촉에 즉각 순종(順從)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현재형 동사를 써서 대답하는 어법(語法)이 생겼을 것이라는 말이다.   
 

무례할 정도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말버릇이 있을 정도이면, 사무라이가 활보해서 유난히 사람을 두려워했던 일본에서는 오죽 말을 조심해서 했겠는가? 그래서 ‘어디 좀 다녀와라’라는 명령을 들으면 ‘네네 지금 갑니다’라는 즉각적인 순종의 의미로 미래형이 아닌 현재형 동사인 ‘行きます(갑니다)’라고 대답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일본에 비하면 우리는 대개 동사의 현재형과 미래형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사용한다. 고 이어령 선생은 우리말의 특징의 하나로, 과거와 미래의 어느 날을 가리키는 용어가 별도로 정해져 있다는 점을 들었다. 오늘을 기점으로 과거의 날을 가리키는 어제, 그제 (그저께), 긋그제(긋그저께)가 있고, 미래를 가리키는 내일, 모레, 글피, 그글피라는 말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동사의 미래형이 없는 일본어에도 우리말처럼 내일(あした)이나 모레(あさって) 등 미래를 가리키는 고유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하기사 어제나 내일 같은 시간 명사를 함께 쓰지 않으면, 상대방이 현재를 말하고 있는지 미래를 말하고 있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영어에는 우리말이나 일본어와 달리 내일(tomorrow)이나 어제(yesterday)에 해당되는 단어는 있지만, 그제, 긋그제, 모레, 글피, 그글피에 해당하는 단어는 없다. 이런 면으로 보면 우리말과 일본어가 영어보다 더 발전한 언어 같아 보인다.  
 

그런데 이어령 선생은, 과거와 미래를 가리키는 우리의 말(어제, 그제, 모레 등)이 다 순수한 우리말인데 유독 ‘내일(來日)’만은 한자어를 쓰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고 하였다. 이는 ‘내일은 체험된 시간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날을 생각 속에서 미리 불러온 시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셨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미래를 현재형 동사로 서술하는 일본어의 습관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일본인’의 특성에서 연유(緣由)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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