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 주례 없는 결혼식
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심창구 기자 news@yakup.co.kr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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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 없는 결혼식 
 

요즘 결혼식의 모습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결혼식 주례(主禮)가 없어진 일이다. 요즘 참석했던 세 번의 결혼식 모습을 소개한다.  
 

첫번째 참석한 결혼식에서는 사회자의 소개에 따라 신랑이 선글라스를 쓰고 입장하였다. 단상에 오른 신랑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신부가 입장합니다”고 외쳤다. 이에 신부가 아버지와 함께 식장에 들어서더니 대뜸 둘이 막춤을 추었다. 그 후 아버지 손을 잡고 행진한 신부가 신랑에게 인계되었고, 신랑 신부는 서로에게 자기가 어떤 배우자가 되겠는지 서약하였다. 이에 사회자가 “이로써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고 선포하였다. 곧이어 신랑 신부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고, 사회자는 “가장 먼 데서 온 하객은 손을 드세요” 하며 상품을 주는 등 분위기가 여흥(餘興)으로 바뀌었다.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나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두번째 참석한 결혼식에서도 주례가 없었다. 사회자의 소개에 따라 양가(兩家) 부모님의 입장 및 양가 어머니의 화촉 점화가 있은 후 신랑 신부가 함께 입장 등단하였다. 역시 신랑 신부가 각자 배우자로서의 다짐을 읽은 다음 사회자의 성혼(成婚) 선언이 있었다. 특이했던 점은 양가 부모의 덕담(德談)이었다. 먼저 신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자 하객(賀客) 및 신랑 신부에게 제법 긴 겸 덕담을 하였다. 이어서 신랑 부모도 각자 경우에 맞는 좋은 내용의 덕담을 하였다. 식이 끝난 다음 신부 아버지에게 ‘덕담 내용이 좋았다’고 했더니, ‘사실 준비하느라 스트레스 좀 받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식은 누군가의 축가 한 곡으로 마무리되었다.
 

가장 최근에 참석한 세번째 결혼식도 주례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신부 댁이 독실한 개신교 신자(信者)임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을 주례로 모시지 않았다. 좀 의외였다. 식은 옛날처럼 양가 어머니의 화촉 점화로부터 시작되었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신랑이 먼저 혼자 입장한 다음, 뒤이어 신부가 아버지 손을 잡고 입장하였다. 그 뒤 신랑 신부가 혼인 서약문을 낭독한 후 역시 사회자가 성혼(成婚) 선포를 하였다. 그 후 신랑 아버지의 덕담이 있었고, 이어서 신부 아버지의 덕담이 있었는데, 특이했던 점은 신부 아버지가 짧은 덕담에 이어 축가까지 부르는 것이었다. 다행히 축가가 결혼식 분위기에 잘 어울려 하객들의 반응이 좋았다. 식은 신랑 아버지가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이 세 번의 예식에 참석하면서 느낀 소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무리 주례를 모시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성혼 선언은 목사님이나 원로 인사가 하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었다. 신랑 또래의 젊은 사회자가 감당하기에는 성혼(成婚)의 의미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두번째로는 이제 결혼식 주례업(?)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제 고 홍문화 교수님 같은 명 주례는 다시 나타날 수가 없겠구나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세번째로는 세 결혼식이 모두 예전과는 매우 다른 형식으로 진행되었지만, 형식이 비슷하더라도 그 내용에 따라 어떤 결혼식은 경건하고 아름다운 반면에, 어떤 결혼식은 별로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역시 형식은 진실을 담는 그릇에 불과한 것이었다.
 

네번째로는 앞으로는 결혼식에 축의금만 보내고 현장 참석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청첩(請牒)을 받으면 꼭 참석해야 했다. 사정이 있어 못 가면 축의금을 전달해 줄 사람을 찾아내 부탁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종이 청첩장이 사라지고 대신 신랑 신부 및 양가 부모 6인의 계좌 번호가 전부 나와 있는 전자 청첩장을 받게 되었다. 이제 직접 참석하지 않고도 내가 지정한 사람의 계좌로 축의금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더구나 요즘 결혼식장의 음식 값이 너무 비싸서 작은 축의금을 들고 가서 식사까지 하고 오기가 미안한 경우가 많아졌다. 또한 예식의 내용도 우리 같은 구세대의 참석을 별로 반기지 않는 방식으로 바뀌었으니, 이제 현장 참석을 삼가는 것이 이 시대의 매너가 아닐까 싶다.

<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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