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역사가 미래이다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자 news@yakup.co.kr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수정 최종수정 2016-08-31 10:52

강아지가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꼬리를 흔드는 이유는? 정답은 ‘꼬리가 몸통을 흔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몸통이 꼬리를 흔드는 것이 순리(順理)이다. 그러나 세상일이 꼭 순리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된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영어에도 The tail is wagging the dog이라는 표현이 있다.

 

내가 육군 항공기 정비부대에 근무할 때 본 OA-1이라는 정찰용 비행기는 비행기의 앞날개가 아니라 방향타(方向舵)라고 부르는 뒷날개(꼬리)가 비행기(몸통)의 비행(飛行) 방향을 결정한다. 조종면에서는 주객이 전도된 비행기인 셈이다.

그런데 꼬리로 몸통의 비행 방향을 조종하는 것은 앞머리를 움직여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왜냐하면 조종간을 움직이면 비행기의 기수(機首)가 아니라 꼬리 부분이 움직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원리를 숙지하지 않으면 비행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버린다.

나는 2013년에 대학을 정년퇴임하기 조금 전부터 우리나라의 약학교육사를 정리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 동안 대한약학회 안에 ‘약학사분과학회’를 만들어 5번의 심포지엄을 개최하였고, 서울약대 안에 가산약학역사관을 개관하는 일에 일조(一助)하였다. 이제야 비로소 약학사(藥學史)를 연구할 수 있는 작은 둥지 두 개를 마련해 놓은 느낌이다. 최근에는 탁월한 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서울대약대 백년사(百年史)’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나는 백년사를 집필하면서 가끔 ‘역사(歷史)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그 결과 ‘역사란 과거사의 단순한 나열(羅列)이 아니라, 과거사에 대한 해석(解釋)’이며, 또한 ‘과거로의 회귀(回歸)가 아니라 미래에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학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치 뒷날개로 OA-1의 비행방향을 조종하는 것처럼, 과거의 역사로부터 얻은 지혜는 우리의 나아 갈 바 바른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믿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학)란 과거에 대한 학문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未來)에 대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백년사’를 집필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어떤 사건을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다룰 것인 것 하는 문제이었다. 그것은 ‘중요한 사건이 역사에 남는 것이 아니라, 기록에 남은 사건이 역사에 남을 수 있다’는 역설(逆說)의 가능성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중요한 사건도 기록으로 남겨 놓지 않으면 후세에 망각되기 쉬운 반면, 지극히 사소한 사건도 침소봉대(針小棒大)하여 언급해 놓으면 후세에 중요한 역사로 오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에 손을 대는 사람은 본의이든 아니든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어려웠던 점은 자료의 부족이었다. 심지어 불과 40년 전의 약대 연건 캠퍼스 전경(全景) 사진도 남아있지 않았다. 솔직히 일제(日帝) 때 보다 광복(光復) 후의 역사 자료가 더 부실해 보였다.

부끄러웠다. 사실 광복 후의 일이 조금 더 잘 기록되어 있었더라면, 겨우 백년에 불과한 약학사 쯤은 ‘연구(硏究)’의 대상이 아니라 단순한 ‘정리(整理)’의 대상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과거는 그렇다 치고, 그럼 지금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들, 예컨대 한약분쟁, 의약분업, 약대 6년제 등을 충실하게 기록해 나가고 있는가?

아마 누구도 이에 대해 자신 있게 ‘예’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기록을 남기고 자료를 모으는 습관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선진국이 되었다고 하는 오늘날에 와서도 정부를 비롯한 여러 기관의 정책수립이나 업무수행 행태가 아마추어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은 미래에 나아갈 바를 제시해주는 방향타(역사서)가 없는 데에 기인하는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온고지신(溫故知新)! 역사로부터 미래에 나아갈 방향(비전)을 찾아냄으로써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 아마추어리즘을 극복하는 첫걸음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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