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나노 의약(nano medicine)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자 news@yakup.co.kr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수정 최종수정 2015-05-06 09:39

과학에도 유행이 있다. 어떤 연구 주제가 인기를 끌기도 하고, 때가 지나면 시들해지기도 한다. 오늘은 나노 의약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항암제의 경우, 약학, 특히 약제학에서는 약물의 항암 활성보다 약물이 암세포에 얼마나 잘 분포하느냐가 더 큰 관심을 끈다. 항암제가 암세포가 아닌 정상 세포에 분포하면, 정상 세포도 죽이는 부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물 분자를 암 조직 등 체내의 특정 부위에만 분포시키는 기술이 필요해 지는데, 이런 기술을 타게팅(targeting)이라고 한다. 따라서 타게팅은 약효를 최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 하는 중요한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약과학자들은 항암제를 암세포에 타게팅 하기 위하여, 항암제를 리포좀이나 마이크로스피어, 또는 나노 미립자 등의 미소 운반체(carrier)에 봉입(封入)하여 정맥으로 주사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한다. 약물의 운반체를 약물송달체(Drug Delivery System; DDS)라고 부르는데. 지금까지는 나노 미립자(nano particles)가 가장 효율적인 타게팅용 DDS로 알려져 있다. 이는 암 조직에 분포되어 있는 혈관벽에 생긴 미세 틈새를 빠져 나와 암 조직 사이에 축적되는 나노 미립자의 특성 때문이다. 나노 미립자의 이러한 특성을 EPR(투과성 항진 및 축적) 효과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노 미립자가 암 조직에 축적되는 정도는 일반적인 기대 수준 이하이었다. 그래서 약과학자들은 암 조직이나 암 세포 표면을 특별히 잘 인식하는 특정 물질로 나노 미립자 표면을 처리 (修飾)해 보기로 하였다. 즉 암세포 표면의 특정 항원과 결합하는 항체분자(antibody)나, 암세포 표면의 특정 수용체(receptor)와 결합하는 분자(ligand)로 미립자의 표면을 수식해 본 것이다.

독소루비신(DOX)이라는 항암제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기로 하자. DOX는 간암에 널리 사용되는 항암제이지만, 비가역적인 심근증이나 울혈성 심부전 같은 심장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문제인 약이다. 이 부작용은 DOX가 심장에도 상당량 분포되기 때문에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 연구실은 DOX를 함유한 나노 미립자 표면을 특정 물질로 수식하여 DOX의 심장 분포성을 낮추어 보고자 하였다.

우선 DOX를 함유한 알부민 나노 미립자를 만든 다음, 그 표면을 헤마토포피린(HP) 분자로 수식하였다. HP를 선택한 이유는 HP가 암세포 표면에 발현되어 있는 LDL 수용체와 특별히 잘 결합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이 HP로 나노 미립자 표면을 수식하면, 나노 미립자가 암세포 표면의 LDL과 효율적으로 결합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결국 미립자 안에 봉입되어 있는 DOX가 효율적으로 간암 세포로 분포될 것으로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시행 착오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HP로 표면을 수식한, DOX가 함유된 알부민 나노 미립자를 제조할 수 있었다. 이 나노 미립자를 간암에 걸린 흰쥐에 정맥 주사한 뒤 체내 분포를 조사해 보았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즉 DOX의 간암 조직 분포성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DOX의 심장으로의 분포성이 현저히 낮아진 것이다. 간암에 대한 치료 효과는 높아지고 심장에 대한 부작용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되는 고무적인 결과이었다.

그러나 이로부터 이와 같은 나노 미립자를 곧바로 간암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결론 내리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한 일이다. 체내에 투여된 나노 미립자가 체내의 미세 혈관의 혈류를 방해할 우려는 없는지, 또 특정 암을 타겟으로 삼은 나노 미립자의 크기와 경도(hardness) 및 체내 분해성은 어느 정도로 조절해야 안전한지 등에 대한 정보가 아직까지도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가 대유행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변변한 나노 의약이 개발되지 못한 까닭은 바로 안전성이 문제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유행은 그저 유행일 따름이니, 무조건 따라다닐 일이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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