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규제개혁이 성공하려면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자 @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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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개혁을 강조하는 ‘끝장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그러나 매스컴들은 역대 정부치고 규제개혁을 시도하지 않은 정부가 없었지만, 그 모든 시도가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고 보도하였다.

나는 ‘규제개혁’이라는 말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차는 철로(鐵路) 위로만 다니게 되어 있다. 다니는 길을 철로로 제한하였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 규정(規定)은 기차의 운행에 대한 일종의 규제(規制)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철로 밖에서 달렸다가는 전복 사고가 일어 날 수 밖에 없음을 생각하면, 이 규정은 기차를 안전하게 다니게 해 주는 ‘가이드라인’이 되는 것이다. 이런 규정까지도 규제로 몰아 개혁하려고(없애려고) 시도한다면, ‘규제개혁’은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식약청에 근무하던 시절, 같은 사안(事案)에 대해 지방청에 따라 정반대로 정책을 집행하는 사례가 있었다. 한 지방청에서는 ‘가능’하다고 보는 사안에 대하여 다른 지방청에서는 ‘불가’하다고 판단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사람에 따라 정반대로도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규정의 서술이 애매하거나 다른 규제와 모순되기 때문이었다.  

갑(甲)의 입장에 있는 정부가 법률이나 규정(법규, 法規)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 먼저 해당 부서가 법규의 안(案)을 만든 다음, 이 법규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 을(乙), 즉 회사나 국민에게 일정 기간 입법예고(立法豫告)를 한다. 그 다음 을의 의견을 수렴 반영하여 법규를 확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흐름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다만 법규의 안이 부실(不實)하게 만들어지는 점, 그리고 입법 예고 기간에 을로부터 적절한 피드백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인 것 같다. 안(案)이 부실하게 만들어지는 첫 번째 이유는, 좀 말하기 거북하지만, 우리의 민족성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우리는 모든 일을 대충 하는 버릇이 있다. 적어도 일본 사람들에 비해 보면 분명히 그렇다. 안(案)이 부실해지는 두 번째 이유는 일부러 애매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렇게 만들어 놓아야 갑의 재량(裁量)의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란다.

법규가 부실하게 만들어지는 세 번째 이유는 을(乙)이 입법예고 기간에 잘 검토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시 민족성과 관련이 있어 보이지만, 우리에게는 당장 자기 업무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규정을 미리 꼼꼼하게 검토하는 버릇이 없다. 그래서 입법예고 기간 중에는 “별 의견 없습니다”라고 회신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막상 그 규정의 적용을 받게 되면, 이미 발효된 규정이 “엉망이다. 지나치다. 다른 규정과 모순된다“ 등의 불평 불만을 쏟아낸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공무원은 이미 발효된 규정에 따라 일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모든 법규는 처음에 안을 만들 때부터 꼼꼼하게 만들어야 한다. 국가적인 캠페인을 해서라도 ‘대충대충’ 만드는 민족적(?) 버릇을 없애야 한다. 다음으로는 갑(甲)은 입법예고 기간을 좀 더 능동적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법에서 정한 입법예고를 하였다는 소극적인 입장의 정당성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고 수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돈과 시간을 들여서라도 을(乙)을 찾아가 을의 의견을 정성껏 들어야 한다. 예컨대 을들로 하여금 일정 장소에서 일정 기간 동안 법규 안을 면밀히 검토하도록 강요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잘 만든 규정은 장해물이 아니라 가이드라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규정은 없는 것 보다 있는 것이 을에게 도움이 된다. 예컨대 세계적인 바이오 신약을 개발하려고 하는데 우리에게 승인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신약을 개발할 수 있겠는가?

규제개혁이란 뜻이 애매하고 모순투성이인 ‘나쁜 규제’를 뜻이 분명하고, 기존의 규제와 충돌되지 않으며, 현실적으로 따를 수 있는 규정으로 정비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규제 개혁이라면 실패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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