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송대관 씨가 부른 ‘세월이 약(藥)이겠지요’라는 노래가 있다. 몸과 마음의 상처는 세월이 지나야 회복되는데, 세월은 유수(流水)처럼 또는 화살처럼 빨리 흐르니 좀 참고 기다리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월이 빠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세월의 속도는 연령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젊어서는 느리게 지나갔던 시간이 나이가 들수록 빨리 지나간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세월은 20대에는 시속 20킬로로 지나가고 60대에는 시속 60킬로로 지나간다’는 말이 있는가 보다.
‘나이에 따라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나도 어렸을 때에는 소풍이나 방학 날을 기다리기가 몹시 지루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이 그런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지루함을 잊기 위해서일 것이다. 어릴 때는 방학도 무척 길었던 것 같다. 내가 일생 중 정말 시간이 안 가서 지루해 미칠 뻔 했던 것은 1971년 군대에 갓 들어 갔을 때이었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기성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 제대 말년(末年) 고참병(古參兵)들이 내게 말하였다. “야, 너 제대하려면 얼마 남았냐? 군대 생활 무지 고되거든. 그래서 말인데 웬만하면 탈영해라” 고. 사실 그들도 지루함을 잊기 위해 나 같은 후임 병(後任 兵)들을 놀리는 것이었다.
고참들의 놀림이 아니더라도 당시의 시간은 지루함 그 자체이었다. 그 때 내무반 벽에 걸려 있던 달력은 나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물건이었다. 그 달력에는 내가 신경을 쓸 필요가 있는 날이 단 하루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해가 되어 다시 걸린 새 달력 12장과, 그리고 또 그 다음해의 달력 12장도, 달랑 내 휴가일 외에는, 역시 내게 무용지물(無用之物)이었다. 아, 그 지독한 무료 (無聊)함이란! 세월이 약이라면 그 때의 세월은 매우 오랫동안 먹어야 효과가 나타나는 약이었던 셈이다.
그 다음해인 1974년, 그 해 달력에는 드디어 내가 제대하는 날이 들어 있었다. 마침내 달력이 비로소 나와 상관이 있게 된 것이다. 그 때부터는 달력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제대할 날을 크게 동그라미를 쳐 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이제 며칠 남았나’를 세어 보곤 하였다.
같이 입대한 전우들과는 ‘우리 제대까지 라면 몇 그릇 남았지?’ 하면서 희망을 나누기도 하였다. 당시 군대의 매주 일요일 점심 메뉴는 라면이었다. 그래서 ‘제대까지 라면 열 그릇 남았다’고 하면, 이제 10주가 지나면 제대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70일보다 열 그릇이 덜 길게 느껴지기 때문에 ‘라면 그릇 수’로 제대 날을 손꼽는 것이 당시의 유행이었다.
훗날 내가 교수가 되어 보니 어느새 세월이 많이 빨라져 있었다. 어렸을 때와 달리 눈 깜작 할 사이에 방학이 지나버리는 것이었다. 요즘은 세월이 더 빨라진 느낌이다. 올해도 어느새 3월이란다. 나는 때때로 내가 어렸을 적 세월보다 요즘의 세월이 실제로 더 빨리 지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는다. 혹시 예전보다 지구의 자전(自轉) 속도가 빨라진 것은 아닐까? 시간을 만드신 하나님 외에 누가 절대시간을 완벽하게 알 것인가?
얼마 전 티브이에서 김종필 전 총리가 ‘내가 이제 인생의 생로병사(生老病死) 과정 중 병(病)에 와 있어요’ 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았다. 이를 보니 세월이란 ‘생로병사’에서 다음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연세가 고령이신 분들도 과연 ‘세월을 약’이라고 생각하실지 문득 궁금해진다.
기독교에서는 믿는 사람이 죽으면 본향(本鄕)인 천국으로 돌아 간다고 믿는다. 그래서 세상에서 말하는 발인(發靷) 의식을 ‘천국환송예배’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歸去)’는 표현을 쓴다는 것이다. 죽으면 어디로 돌아 간다는 말일까?
어쨌거나 세월의 끝에 ‘본향으로의 돌아감, 즉 귀향(歸鄕)’이 기다리고 있다면, 세월이야말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장 완벽한 약’이 아닐까 한다. “세월이 약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