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연구는 리-써치 (research)?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자 @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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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21일자 조선일보에 크게 게재된 바 있지만 서울약대는 전 세계 약대 중 교수 1인당 논문 발표 건수가 가장 많은 대학이다. 사실 서울약대는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쭉 일등을 해 오고 있었다. 세계 1등이라! 얼마나 놀라운 사건인가? 내가 서울대 대학원에 다니던 1970년대에는 우리나라에서 연구된 약학 논문이 국제 학술지에 실리는 일 자체가 꿈이었다. 당시의 우리나라 약학 연구 수준은 그 정도로 형편 없었던 것이다. 

1979년 동경대학 박사 과정에 유학을 가보니 동경대학에서는 이미 국제 잡지에 약학 논문을 많이 게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당시에는 국제논문 게재가 매우 기쁜 일이었다. ‘제제학 교실’에서는 연말이 되면 대학원생 1명이 사용한 연구비와 국제학술지에 게재한 논문 수를 표로 만들어 공개를 할 정도이었다. 

그 때만 해도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 연구 논문을 ‘impact factor (IF)’를 가지고 평가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제법 권위 있는 학술지에 논문을 실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한 학술지 평가 회사가 국제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의 영향력을 비교하기 위하여 IF란 지표(指標)를 개발한 이후 상황이 급변하였다. IF는 학술지에 발표된 어떤 논문이 얼마나 많은 다른 연구자의 논문에 인용되었는가를 세어 봄으로써 그 학술지의 영향력을 숫자로 나타낸 것이다. 학술지에 따라 IF의 값은 1 이하에서부터 20 이상에 이르기 까지 큰 편차를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까지는 그저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수를 가지고 연구자의 연구 역량을 평가하였다. 소위 양적(量的) 평가를 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IF를 가지고 논문을 평가하게 되었다. 소위 질적(質的) 평가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예컨대 IF 2인 학술지에 논문을 5편 게재한 것 보다 IF 10인 학술지에 논문 1편을 게재한 것을 더 알아주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물론 IF로 논문의 질을 평가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 되었다. 연구자 집단이 작은 분야의 학술지에 실린 논문은, 이를 인용하는 연구자 수가 적기 때문에 자연 그런 학술지의 IF는 아무리 논문의 질이 높더라도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IF의 단점을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도 끊임없이 개발 제안되고 있다. 어쨌거나 지금은 논문의 양보다 질로 연구자를 평가하는 시대가 되었고, 더구나 논문의 질도 숫자로 정량화(定量化) 하는 시대가 되었다.  

누구나 IF가 높은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런 논문을 쓰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아마 ‘연구의 속성(屬性)’ 때문이 아닌가 한다. 연구를 영어로는 “리-써치 (re-search)”라고 하는데 이는 누군가가 한번 이상 뒤졌던 (search) 주제를 ‘다시 뒤지는 일 (re-search)’이 연구란 뜻이다. 그렇다면 연구자란 ‘넝마주이’처럼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사람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다시 뒤지는 일’이 ‘연구’라면 연구를 통해 정말 새롭고 쓸만한 발견을 하기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은 왜 남들이 이미 뒤졌던 주제를 리-써치 (다시 뒤지기) 하는가? 그것은 논문을 빨리 쓰라고 강요하는 주변의 끊임없는 압력의 때문이다. 그 압력은 때로는 승진(昇進)으로, 때로는 연구비로 나타난다. 심지어 연구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신설 약대마저 교수보고 논문을 내라고 들볶는다. 이제 논문을 쓰지 않는 과학자는 사라지게 되는 (Publish or Perish)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하다못해 찌그러진 깡통 하나라도 찾아낼 가능성이 있는 쓰레기더미를 리-써치 할 수 밖에. 

나는 우리나라의 약학 논문이 조만간 그 질에 있어서도 세계 최고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먼저 지나치게 논문 쓰기를 채근하는 연구분위기부터 바뀌어야 한다. 입춘(立春)이 지났으니 날씨도 곧 따듯해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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