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TV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일본의 동경대학은 지금도 입학시험 합격자를 옛날처럼 게시판에 번호를 써 붙여서 발표하고 있었다. 학교 내 운동장 게시판에 합격자의 수험번호를 써 붙여 놓고 정해진 시간이 되기까지는 건장한 럭비부 학생들이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다가, 정각이 되면 게시판 앞으로 군중들을 인도한다. 그러면 군중들은 자신의 이름을 찾으려고 목을 빼고 게시판을 쳐다 본다. 물론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사람은 환호하고,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낙심하거나 운다.
문득 1960년대 우리나라의 대학입시 발표 현장으로 돌아 간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 때 우리는 추운 날 손을 불며 대학교 운동장에 가서 게시판에 자기 이름이 있나 없나를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예외적으로 수석 합격자는 신문과 라디오를 통하여 미리 공개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현장에 가서야 합격 여부를 알 수 있었다. 세월이 좀 지나서는 대학에 인맥이 있는 사람은 그 인맥을 통해 정식 발표날 하루 이틀 전에 자신의 합격여부를 은밀히 알아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다. 그런데 우리보다 선진국이라는 일본이 아직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언제가 네델란드의 라이덴 대학을 방문했을 때, 그 대학에 포닥으로 있는 제자의 설명을 듣고 엄청 놀랐다. 그 대학에서 박사 학위 실험이 거의 완료되면 지도교수가‘이제 박사 학위 논문을 발표하고 심사 받을 장소의 사용 신청을 하라’고 한단다. 그러나 본부에 신청하면 대개 1년 후에나 그 장소를 사용할 수 있단다. 전교에 박사 논문 발표 및 심사를 하는 방이 딱 하나 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것을 투덜대는 학생이나 교수는 없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옛날부터의 전통이기 때문에 으레 그러려니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방에는 권위가 생겼다고 한다. 학생도 교수도 그 방에 들어가는 것 자체에 엄숙함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일본이나 네델란드나 참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서울대학에서 심사장소를 예약하는데 1년이나 걸린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런 가정은 사실 해 볼 가치도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서울대학에서는 신청 당일에 방을 사용할 수 없으면 당장 난리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전통을 지키는 것이 미덕’임을 잘 안다. 그렇다면 과연 전통은 어느 정도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일본이나 네델란드 만큼 지독할 정도로 전통을 지키는 것을 옹호할 사람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을까? 왜 그들과 우리는 전통에 대한 생각에 이만한 차이가 나는 것일까?
나는 ‘약창춘추’를 통하여 일본 사람들이 ‘남을 두려워하는 민족’이라는 주장을 펴 온 바 있다. 남이 무서우면 제도를 함부로 바꿀 수 없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을 두려워하는 민족은 전통을 존중하게 된다는 논리이다. 혹시 일본의 전통지키기는 그렇게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네델란드의 전통지키기는 도무지 설명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다. 혹시 네델란드도 남을 두려워하는 민족이었는지 한번 알아 보아야겠다.
우리가 전통을 지키든지 말든지를 논하려면 우선 그 전에 자신의 역사를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먼 옛날의 역사는 차치하고 우리들 스스로가 겪은 역사도 기록으로 남기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 아닌가? 예컨대 서울약대에 와서 과거 약제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사람의 명단과 논문 제목 리스트를 얻고자 해보라. 적어도 몇 날은 서류를 뒤적이며 수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부끄러운 우리의 현실이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어찌 보면 컴퓨터의 시대에 이처럼 수작업으로 답을 구하고 있는 우리의 태도야말로 아주 오래된 우리의 전통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 과연 지킬 전통은 무엇이고 버릴 전통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