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1년 경의 일이다. 서울 약대 4학년에 B라고 하는 한 복학생이 있었다. 그의 4학년 1학기까지의 학업 성적은 클래스에서 거의 꼴찌일 정도로 형편없었다. 4학년 2학기에 거의 올A를 받지 않고서는 도저히 대학을 졸업할 수 없는 성적이었다.
4학년 2학기 시험이 끝나자 마자 B군은 민첩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자기 생각에 2학기 성적도 클래스에서 꼴찌가 될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담당 교수님들을 연차적으로 찾아 뵙고 다음과 같이 간곡하게 부탁 드렸다. “교수님, 죄송하지만 교수님 과목의 학점을 조금 올려 주실 수 없겠습니까? 조금만 올려 주시면 제가 졸업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런 간곡한 부탁을 들으신 교수님들은 대개 “그래? 그거 안되었네. 어때, 내 과목을 한 C나 B 정도로 올려 주면 되겠나?” 라고 반응하셨다. 그러나 B군은 한걸음 더 나가 이렇게 부탁 드렸다. “교수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B나 C를 주시면 제가 졸업을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왕 올려 주시려면 눈 딱 감으시고 A를 주셔야만 졸업을 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 살려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교수님은 어이가 없어 하시면서도 “그래?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원래는 안 되는 거지만 특별히 A를 줄 테니 졸업해서는 성실하게 살게나” 하셨단다.
그는 모든 교수님 들에게 이런 부탁을 드렸다. 결과는 대 성공이어서 약물학 (담당교수 김낙두) 한 과목을 빼 놓고 모든 과목에서 A 학점을 받았다. 그래서 그의 4학년 2학기 성적은 클래스에서 일등이 되었고, 마침내 그는 무사히 (?)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꼴찌가 일등이 된 것이다. B군의 이런 능력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졸업 후 약사고시에 잘 붙어, 약국도 잘 하고 있다고 한다.
2. 농땡이 모범사병?
내가 군인 (10781-1974)이었을 때 K란 동기 사병이 있었다. 그가 유격 훈련을 받으러 갔을 때의 일이다. 열명이 한 조가 되어 함께 장애물을 통과하는 훈련을 받는 도중에, 이 친구 혼자 슬그머니 대열에서 빠져 나가 숲 속에 들어 가 하루 종일 쉬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나머지 9명은 ‘한 명을 어디에 팔아 먹었느냐?’고 훈련 조교로부터 혹독한 기합을 받았다. K군에게 그런 것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힘든 훈련이 끝나 모든 병사들이 연병장에 다시 모일 때쯤 그는 슬그머니 그리고 무사히 (?) 귀환하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훈련에서 빠져 하루 종일 숨어 있는 것이 더 불안했을 터이지만, 그는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우리들은 그의 담대함 (?)에 그저 혀를 찰 수 밖에 없었다.
K 군의 농땡이가 성공하는 걸 지켜본 다른 병사 몇 명이 다음날 덩달아 비슷한 흉내를 내다가 조교에게 걸려서 혼 줄이 났다. 이때 나는 깨달았다. ‘아, 농땡이도 아무나 치는 것이 아니구나. 우선 농땡이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타이밍을 알아내는 천부적 동물적 감각이 있어야 하고, 둘째 무엇보다도 농땡이를 치는 동안 마음이 조마조마하지 않을 배포 (또는 속칭 깡다구)를 타고 난 사람이라야 농땡이를 칠 수 있구나’ 라는 것을. 그래서 얻은 교훈은 ‘‘나 같이 소심한 사람은 그냥 내 식대로 살아야지 어설프게 K를 흉내 내다가는 인생을 망치기 십상이겠구나’ 이었다.
그와 관련된 일 중 하이라이트는 그가 우리 부대의 ‘모범사병’으로 뽑혀 표창을 받은 사건이다. 최고의 농땡이가 모범 사병으로 선정된 것이다. K는 제대 후 사회에 나가 박사가 되고 모 대학의 교수까지 되었다. 훗날 안타깝게 간이 나빠져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지만, 아직도 전우들은 K의 농땡이 기질이 가히 천부적이었다고 회고한다.
꼴찌가 가짜 일등도 될 수 있고, 농땡이가 가짜 모범 사병으로 뽑힐 수도 있는 것이 세상사이다. 그러나 그건 나처럼 능력도 배포도 없는 사람들이 함부로 부러워할 일들이 아니다. ‘그냥 나는 내 식대로 성실히 살아야지’, 새해 아침 추억의 앨범 한 장을 넘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