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주례 육태 (主禮六態)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자 @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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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결혼식 때 주례는 한관섭 명예교수님이 해 주셨는데 얼마나 주례사가 짧았던지 5분 늦게 식장에 도착한 우리 육촌 형님이 내 결혼식을 보지 못하였다. 결혼식 사회를 본 친구 최응칠 교수는 그 주례사가 자기가 본 주례사 중 가장 짧았다고 회고한다. 한 교수님은 “잘 먹고 잘 살라는 말 이외에 뭐 할 말이 있어?” 하셨지만, 그 사건(?) 이후 나는 ‘주례사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어느 정도 시간을 끌어 주는 것도 중요한 역할의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2. 반면 내가 경험한 가장 긴 주례사는 고 한구동 선생님의 주례사이다. 1975년, 지금은 고인이 된 대학 동기 K군의 결혼식에서였다. 짠돌이 K군은 경비를 줄이려고 종로의 한 예식장을 30분간만 빌렸는데 그것이 문제였다. 한교수님은 “끝으로”와 “마지막으로”를 반복하시면서 무한정 주례사를 하셨다. 그래서 주례사의 후반부는 K군의 하객이 아니라 다음 결혼식 하객들이 듣는 진풍경이 벌어졌었다.

3. 최응칠 교수는 이미 30대의 나이에 결혼식의 주례를 본 일이 있다. 대학원 제자가 결혼식을 하게 되었는데, 최교수가 현장에 가보니 옛 은사이신 주례 선생님이 갑작스런 병환으로 결혼식장에 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하나 둘 최교수를 주목하게 되었다. 이미 당시에 머리가 허연데다가 키도 큰 최교수는 누가 봐도 주례를 보기에 무리가 없는 풍채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최교수는 할 수 없이 십자가(?)를 지게 되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수많은 결혼식 사회를 본 경험이 있는 최교수에게 주례는 별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일을 ‘최교수가 일생에 걸쳐 가장 잘 한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4. 최교수가 대타(代打)로 주례를 본 일이 한번 더 있다. 중앙대 약대 천영진 교수의 결혼식 주례를 보기로 되어 있던 내가 갑자기 수술을 받게 되어 주례를 볼 수 없게 된 적이 있었다. 나는 부득이 최교수에게 내 대신 대타로 주례를 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최교수는 흔쾌히 들어 주었다. 천영진 교수는 말할 것도 없고 나에게도 매우 고마운 일이었다.

5. 얼마 전 우리대학을 정년 퇴임한 J교수가 한 제자의 주례를 봤을 때의 일이다. J교수는 주례를 서기 위해 단상에 올라 섰다. 사회자는 ‘지금부터 주례 선생님의 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라고 안내 멘트를 하였다. 그런데도 한동안 J교수의 음성이 들리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J교수는 하얘진 얼굴로 주머니만 뒤적이고 있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신랑 신부는 물론 하객들마저 ‘무슨 일인가’ 하며 긴장하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J교수는 단상을 내려와 식장을 가로질러 식장 입구에 있는 접수대로 달려가더니 허겁지겁 축의금 접수통을 뒤지는 것이었다. J교수는 식장에 들어 갈 때 축의금 봉투 대신 그만 주례사 봉투를 내미는 실수를 했던 것이었다. 간신히 주례사 봉투를 찾은 J교수는 식은 땀을 닦으며 단상으로 돌아가 무사히(?) 주례를 마쳤다고 한다. J교수가 주례사 봉투를 찾아 단상으로 돌아 올 때까지 하객들은 긴장되어 거의 죽을 뻔 했다고 한다. 

6. 우리대학의 K명예교수님이 현역 시절 어떤 제자의 주례를 보게 되었는데, 당일 그만 깜빡 잊고 식장에 가지 않으셨단다. 그러다 혼주(婚主)의 전화를 받고서야 화들짝 놀라 허겁지겁 택시를 타고 결혼식장으로 달려 갔다. 그 동안 혼주는 하객들에게 “식사부터 하신 다음 결혼식을 올리겠습니다”라는 간단한 안내 방송을 하고 있었다. ‘주례 선생님이 늦으시기 때문’이라는 말은 입 밖에 내지도 않았다. 하객들은 “요즘에는 식사부터 하고 식을 올리기도 하는가 보다’ 생각하였다. 식사가 끝날 무렵 식장에 도착한 K교수는 태연한 표정으로 무사히 주례를 마쳤다고 한다. 혼주와 주례 중 아무도 사과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객들은 끝내 상황을 눈치챌 수 없었다. 혼주와 K교수의 임기응변이 돋보였던 사례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주례가 좀 심했다 싶은 해프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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