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라’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자 @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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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섬기고 있는 온누리 교회의 올해 슬로건은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라’ 이다.

1. 함께 즐거워 하기 : 오래 전 은사 (恩師)이신 모 교수님이 내게 물으셨다. “당신이 잘 되면 누구 누구가 좋아할 것 같소?” “글쎄요” 하며 내가 잠시 망설이자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마 당신 부인, 부모님 그리고 자식들은 분명히 좋아할 것이요. 하지만 형제만 해도 심정이 복잡해 질 것이요. 친구나 이웃들은 진심으로 기뻐하기가 더욱 쉽지 않을 것이요”. 냉정한 표현 같지만 많은 깨달음을 주는 말씀이었다. 내가 잘 되면, 더구나 그 일로 내가 잘난 척을 하면 주변의 사람들은 그 일로 인해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남이 잘 되는 것을 함께 즐거워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나는 사람이 세상을 사는 코드는 ‘겸손’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잘 나가는 사람의 교만은 멸망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본시 교만할 수가 없는 존재이다. 사람의 외모, 머리, 심지어 성격까지도 다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일 뿐인데, 마치 제 공 (功)인 것처럼 자랑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찬송가 가사처럼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인 것이다. ‘겸손’이라는 말 자체가 교만한 단어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나는 크리스챤은 마땅히 남의 잘 됨을 함께 즐거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의 과거를 돌아 보니 나는 돈 잘 버는 사람에 대해서는 비교적 시기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살 수 있었다. 다만 교수가 되고 나서는 다른 연구자들이 좋은 연구 업적을 내면 살짝 배가 아프곤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후배 교수들이 좋은 연구 업적을 내서 상을 받고 큰 연구비를 받아도 배가 아프지 않다. 오히려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 생긴다. 나이가 좀 든 탓일 것이다. 이런걸 철이 들었다고 하는 것인가? 아무튼 남의 성공을 배 아파하지 않게 된 자신이 스스로 대견스럽다.

2. 함께 울기 : 성경의 욥기란 책을 보면 하나님을 잘 믿는 욥이란 사람이 하루 아침에 자식들이 다 죽고 재산이 다 없어지는 참혹한 어려움을 겪는다. 그 욥을 위로하기 위해 몇 친구들이 찾아 왔다. 어떤 친구는 ‘네가 잘못한 것이 있으니까 이런 벌을 받았을 것이니 지금부터라도 회개하고 하나님을 잘 믿으면 복을 다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다른 친구들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쏟아 붓는다. 친구들의 말을 들은 욥은 위로는커녕 더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

욥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얻는다. 하나는 ‘어떤 사람이 복을 받고 어떤 사람이 벌을 받는가?’를 사람이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두 번째 교훈은 남의 비극을 앞에 두고 하는 섣부른 훈계는 상처를 더욱 깊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만약 욥의 친구들이 훈계 대신 욥을 붙들고 함께 울었으면 어땠을까? 오히려 그 것이 욥에게 더 큰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나는 18년 전 내가 직장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 와, “형 어떻게 된 거야” 하면서 동생이 울었을  때에 큰 위로를 받았었다.
 세상은 역경을 딛고 성공한 사람들을 칭송한다. 당연한 일이다. 반면에 끝내 역경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고난의 시절은 성공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끝내 실패한 사람에게 있어서 고난은 절망스러운 환경일 뿐이다. 이 지구상에 깨끗한 물과 세끼 밥을 먹으면서 입시나 정치 문제를 가지고 투덜거릴 수 있는 나라는 몇 되지 않는다. 국내에도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국내외에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이야기이다.

국가와 사회, 특히 교회는 성공한 사람, 또 역경을 딛고 일어 선 사람을 보고는 ‘함께 즐거워’ 해야 하지만, 고난 중에 재기하지 못하고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붙들고는, 우선 ‘함께 울기’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울기’가 참 사랑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드는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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