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에 들어서는 사람의 게놈(genome) 정보를 이용하여 신약을 개발하는 ‘게놈 창약(genome 創藥)’이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와는 정반대, 즉 ‘게놈(DNA) → RNA → 효소 또는 수용체 → 약(유기화합물)의 창조’라고 하는 새로운 연구 흐름이 주목 받게 되었다. 게놈 정보를 이용하면 약을 창조하기 위한 창약 표적물(標的物, target)을 발견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러나 새로운 창약 표적물에 작용하는 리드(lead) 화합물을 발견해 낸 다음, 리드 화합물의 구조를 최적화하는 전통적인 신약 개발 방식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종래의 신약 탐색에서는 천연물이나 합성 화합물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활용해서, 생물 활성을 갖고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새로운 유도체들을 합성한 다음, 그 물질에 대해 활성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보고 다시 새로운 유도체를 ‘설계 → 합성 → 활성 평가’ 하는 조작을 몇 십~몇 백 번 반복한다. 따라서 이런 방식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등장한 ‘조합화학(combinatorial chemistry, 組合化學)’의 기법을 이용하면 비교적 간단하게 분자의 크기와 형태, 관능기 등이 다양한 몇 천~몇 만 개의 화합물 군(화합물 라이브러리)을 설계, 합성할 수 있다. 다음, 합성된 화합물에 대해 ‘고속검색 (high throughput screening)’이라고 하는 최신의 평가법을 써서 활성이 있는 리드(lead) 화합물 군(群)을 고른다. 그리고 이 리드 화합물 군의 주변을 상세히 탐색함으로써 신약 후보 물질의 구조를 최적화(optimization)한다. 이런 방법을 쓰면 신약 후보 물질을 발견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활성이 있는 리드 화합물을 놓칠 위험성도 낮출 수 있다.
조합화학에서는 종래의 ‘액상 합성법’ 대신 parallel법과 split법이라고 하는 고체상 합성기술을 사용한다. 액상 합성으로 1,000종류의 화합물을 합성하기 위해서는 1,000개의 플라스크를 나란히 배열해 놓고 반응을 시킨 다음, 각 반응 액을 별도로 추출, 농축, 정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방법으로 1,000개의 화합물을 합성하려면 하루에 3개씩 합성한다고 해도 거의 1년이 걸린다. 이와 달리 고체상 합성법에서는 합성하고 싶은 기질 (약의 원료)을 우선 폴리스틸렌 같은 특수한 고체상 담체(擔體, carrier)에 결합시킨 다음, 반응시키고자 하는 시약 용액을 가하여 반응을 일으킨 후 남은 시약을 용매 등으로 씻어 내면, 만들고자 했던 생성물이 고체상 담체 위에 남아있게 된다. 따라서 종래의 액상반응법에서와 달리 번잡한 뒤처리가 필요 없기 때문에 단시간에 많은 종류의 화합물을 얻을 수 있다.
자연이나 인간이 창조해 낸 화합물은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는 것만 해도 8,800만개나 되지만, 그 중에서 약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조합화학처럼 약이 될만한 화학구조를 갖고 있는 물질을 효율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 기술은 앞으로의 신약개발 연구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기술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