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藥)으로 진정한 나눔의 낙(樂) 깨달았죠"
횡간도 의약품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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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수정 최종수정 2006-09-22 17:00
몇일 몇밤동안 지겹게 비를 뿌려대며 사람을 지치게 만들던 장마가 어느새 물러나고, 매미 소리가 요란한 햇살 뜨거운 7월의 마지막. 비록 방학 기간이었지만 집에 내려가지 못하고 나는 학교를 지키고 있었다.

이유인 즉, 다름이 아니라 우리 성균관 약학대학 제제부만의 여름 행사인 ‘의약품 봉사활동(이하 약활)’이 코앞에 다가 왔기 때문이었다. 차장으로서 행사를 성공리에 치러야한다는 일종의 책임감도 있었지만, 나를 그 더위 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만든 것은 의무감이 아니라 약활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약대생으로서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는 약활 이었기에 우리 제제인들을 위해서라도 감히 그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약활을 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뽑는다면, 우선 가서 직접 봉사활동을 할 학생들이 있어야하고, 환자분들과 상담을 하고 조제를 할 제제부 선배 약사님들을 모셔야하고, 그에 필요한 의약품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주로 맡은 임무는 바로 의약품이었다.

우선 제약회사에 우리의 취지를 밝히고 의약품을 지원해달라는 협조공문을 보내는 것이 첫 과제였다. 아무리 봉사활동일지라도 학부생이 제약회사로부터 선뜻 고가의 의약품들을 지원받는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약활은 물론, 평소 제제부 일이라면 아낌없이 지원해주시고 신경써주시는 제제부의 지도교수님이신 약제학실의 지상철 교수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쌓여 있는 의약품 정리한다고 밤새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약을 받고 해맑게 웃음 짓는 마을 주민분들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물심양면으로 많은 힘이 되어주신 지상철 교수님과 의약품을 지원해주신 제약회사 관계자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한다.

7월 30일 아침, D-day. 20명 정도의 제제인들이 조용한 학교의 아침잠을 깨우면서 부산하게 짐을 챙기고 드디어 출발~! 선발대에는 학부생 뿐만 아니라 이번 약활의 약사님으로 가시는 93학번의 박지영 선배님도 동행하였다. 첨 뵈었지만 제제부의 이름 아래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방학이라 늦잠만 자다가 오랜만에 일찍 일어났는지 다들 떠들며 웃다가 곧 잠이 들고, 약활단을 태운 스쿨버스는 땅끝을 향해 뜨거운 햇살을 시원하게 갈랐다.

목적지인 횡간도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점심때가 한참이야 지나서 도착한 우리는 많은 의약품 박스를 배에 싣고 중간 경유지인 산양으로 향했다. 머리위에는 태양이 작렬하고 있었지만 바닷바람의 시원함은 더위도 무색하게 했다.

마치 찜질방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는 듯한 기분이 참 묘했다. 그렇게 산양에 도착하고 우리는 이장님께서 직접 몰고 오신 배를 타고 다시 횡간도로 향했다.

의약품 박스에 손을 얹고 배에 걸터앉아 눈에 들어오는 횡간도의 모습에 나는 알 수 없는 긴장감과 기대감에 몸이 살짝 떨려왔다. 잘해야지 라는 마음속의 다짐이었으리라. 6시가 좀 넘어서 도착한 횡간도에는 톳 작업이 한창이었다. 부두에 널어놓은 톳을 어쩔 수 없이 밟아가며 우리가 실제 약활을 할 장소인 마을회관에 짐을 풀었을 때는 해가 곧 바다 아래로 가라앉으려하고 있었다.

약활 첫날은 마을 주민분들께 상비약을 나눠드리면서 좋은 이미지를 심어드리고 약활에 대해 안내해드리는 상비약 나눠드리기를 한다. 시간이 너무 늦었지만 안할 수 가 없기 때문에 저녁식사를 뒤로 미루고 물파스, 감기약 등의 상비약을 챙겨서 조를 나눠 상비약을 나눠드렸다. 마을에 사시는 분들은 나이 드신 분들이 대다수 였고, 가끔 휴가를 맞아 고향에 내려오신 젊은 분들도 계셨다.

섬마을이라 그런지 저녁 8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거의 주무시거나 주무시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잠을 깨우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약을 받으시고 고마워하시며 손수 만드신 식혜 한 사발을 떠주실 때는 마치 친할머니 같이 푸근한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어두운 가운데 150가구 정도에 설명과 함께 약을 나눠드리고 나서 우린 늦은 저녁을 먹고 내일 약활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마을회관 정리도 하고 10시가 넘어서 평반에 들었다.



평반이 끝나고 불침번을 정해놓고 잠이 들었다. 횡간도에서의 첫날밤이 그렇게 정신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7월의 마지막 날, 새벽 일찍 일어난 우리는 체조를 하고 아침 식사도 하고 아침 배로 섬으로 들어오신 선배 약사님들과 함께 8시부터 본격적인 약활을 시작했다. 하나 둘 마을 주민들이 오시기 시작하면서 인사드리고 약포지 싸고 정신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가운에 긴 바지를 입었기에 더운 날씨에 한층 더 더워서 약포지를 싸면서 땀을 뻘뻘 흘려야만 했다. 손은 항상 청결해야 하기 때문에 땀도 닦지 못하고 또 흘려서도 안되기 때문에 신경 쓰이고, 날씨도 덥고, 계속 앉아 있다보니 다리도 아프고 짜증이 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렇지만 봉사활동이라는 것이 자기를 희생해서 남을 돕는 일이지, 자기 할 것 다하면서 남을 돕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웃으면서 약포지를 쌌다. 그렇게 약을 받으면서 연신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는 마을 분들을 보면서 힘든 것도 점점 잊었다. 이렇게 실내에서 약포지를 싸는 것 말고도 밖에서 쓰레기를 줍고 방역활동도 하고 주민들의 일거리도 대신 맡아서 하는 농활 팀을 조직해서 활동하였다.

전날 홍보가 잘 되었는지 주민분들이 많이 오셔서 다들 힘들어 하면서도 입가에는 만족의 웃음이 걸려있었다. 저녁의 평반시간 오늘 하루를 평가하고 반성하는 시간이다. 둘러앉아서 다들 한마디씩 평반을 했다. 어디가 잘못 되었는지 어느 부분은 잘 되었는지 서로 토론하고 반성하면서, 더 나은 내일을 약속하고 잠이 들었다.

그렇게 셋째날, 전날과 같은 패턴으로 아침 8시부터 약활을 시작하였다. 전날 주민들이 많이 오신 탓으로 그리 많은 분이 찾으시진 않으셨으나 스스로 해이해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도 좀더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그렇게 셋째 날 까지 눈 깜빡할 새에 지나가 버리고 어느새 약활의 끝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약활을 하는동안 힘들어서 깜빡 졸았던 사람도 있고, 약사님들은 고된 진료에 잠 한숨 제대로 못 주무시고 고생하시고, 농활 팀들도 땡볕 아래 힘들게 여러 활동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섬이라 물이 부족하고 또, 비가 안내린지도 한참 되었기에 물을 최대한 아껴 쓰기 위해 제대로 씻지도 못해서 몸도 찝찝했지만 마음만은 그렇게 개운하고 시원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실질적인 약활이 끝나고 마지막 날 아침 일찍, 급하게 뒷정리를 하고 뱃시간에 맞춰 섬을 나왔다.

부두까지 나와주신 마을 분들은 정말 고맙다며 다음에 또 오라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네. 다음에 다시 뵐때까지 건강하세요”라고 다같이 밝게 인사를 하며 배에 올랐다. 그렇게 2004년 여름의 제제인들의 약활은 끝이 났다.

처음 대학에 들어왔을 때가 생각난다. 사실 나는 약학대학을 간절히 원해서 들어온 것이 아니기에, 내가 어떤 약사가 되겠다는 비젼도 꿈도 사실 없었다.

하지만 1학년 여름 제제부 약활을 다녀오고 나서 내가 무엇이 되고자하는지 알았고, 또 그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알았다. 의약품 봉사활동, 어찌 보면 수많은 봉사활동의 하나일지 모르지만 우리 성균관약학대학을 다니는 약학도들에게는 자기가 베풀고 오는 것보다 얻어오는 것이 더 많은 봉사활동이 아닌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살다보면 도움을 받는 일도, 주는 일도 생기게 된다. 누군가 말했듯이 세상은 베풀면서 사는 것이다.

자기가 가진 능력으로 남을 도울 수 있으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이란 학문만을 배우는 곳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을 살아가는 법, 옳은 것이 어떤 것인가를 배우는 곳이다. 두달 이라는 긴 방학 기간동안 과외나 아르바이트도 좋지만 한번쯤은 내가 가진 것을 들고 부족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봉사활동을 갔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기회를 준 우리 제제부에 감사하고 제제인들에게 감사한다. 앞으로 내가 약사가 되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항상 약활의 마음으로, 제제부의 마음으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나의 약활은 끝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이다.


기고자: 성균관 약학대학 2년 장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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