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무료투약 100회 이어온 강동구약사회
100회 이어온 약사들의 '정 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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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수정 최종수정 2006-09-27 14:46
(글 : 강동구약사회 이순훈 약사 - 동덕여대 약대 졸, 승민약국, 소설가)

2004년 5월 둘째주 화요일, 무료투약 봉사약국이 100회째 투약활동을 실시하고 있는 강동구 구민회관내의 풍경은 '난민대피소'처럼 혼잡하기만 하다. 약국, 병원, 한의원, 미장원, 식당…… 그 많은 이동 행사장이 1층 전체에 나누어져있기 때문이다. 아마 처음 와본 사람이라면, 서울의 일개 구에 그렇게 많은 노인들이 살고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란 입을 다물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경제적 여유가 있는 더 많은 노인들은 이미 그 대열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면 더 놀라겠지.

이 약사는 바쁜 걸음으로, 끝이 어딘지 찾기 힘들만큼 길게 늘어선 환자들을 뚫고 봉사약국 문 앞에 겨우 선다. 문밖에서 다음 번호를 호명할 때까지 차례를 지키도록 통제하고 있던 다른 봉사자가 목례를 하며 문을 열어 준다. 열 서너 평의 강의실을 꽉 메운 채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앉아있는 환자들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눈이 부딪친 이미 친숙해진 몇 몇 사람과 눈인사를 나누며 상담실로 올라간 이 약사는 재빨리 가운으로 갈아입는다. 옆자리의 선생들은 바로 등뒤에서 폭발물이 터진다해도 절대로 자기 앞의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을 기세다. 이 약사 역시 묵묵히 책상 앞으로 가 앉는다.

호흡을 가다듬은 이 약사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맨 윗장 투약봉투를 집어들며 출석을 부르듯 환자의 이름을 크게 부른다.

이미 연세 많은 분들이라는 걸 참작한 발상이다. '여기요 여기! 내가 000인디……' 하며 맨 뒤쪽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나오신다. 의자 옆으로 뻗고 있던 다리를 안으로 들여놓으며 '주책이여, 그렇게 일찍 왔으면 앞에 앉을 것이지, 왜 뒤에 있다가 시간을 끄는지 모르겄네.' 하고 볼멘 소리 크게 높이는 할아버지는, 선생들 모두 개근상을 주어 마땅하다고 인정하는 그 중 멋쟁이 노신사다. 걸어나온 할머니가 이윽고 책상 앞에 설 때쯤이면 진료카드 위의 볼펜을 쥔 이 약사의 손과 귀가 바짝 긴장한다.

"벌써 한참 됐지유. 맨 처음에는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그게 가만히 있지 않고 다리로 내려가잖아유. 한쪽만이 아녀. 두 다리가 다 아프다니께. 계단도 못 올라가유. 이렇게 무릎을 펴고 다리를 옆으로 휙 돌려서 한 개씩 올라가니 오죽 답답하겠냐구유. 그라구 또 뭐냐 위도 안 좋아유. 뭘 먹어두 맛있는 게 있나, 소화도 잘 안 되구…… 하긴 이빨이 시원찮으니께…… 그라구 또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잠깐만요, 할머니. 너무 빨라요. 조금만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

"뒤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오래 기다리게 한다구 쑥덕거리니께……"

"그럼, 지금까지 말한 것 중에서 세 가지만 말해보세요. 왜요, 잘 안 되겠어요· 그럼 제가 말하는 거 맞나 보세요. 첫째, 허리가 아프다. 둘째. 다리도 너무 아프다. 셋째, 소화도 잘 안 된다. 어때요, 맞죠·"

"맞긴한디, 기운이 하나도 없다니께, 이빨도 시원찮구……."

"할머니, 그건 허리, 무릎 좀 나은 다음에 치료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그 세 가지 약만 드릴게요. 위도 안 좋으신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약을 복용하면 큰일나요. 그래도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골치 아픈 병은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대변은 하루에 한 번씩 보세요·"

"그라믄 얼마나 좋겠어유. 어짜다가 한번 생각나 화장실에 가 앉으면 용을 써야 한다니께. 어차피 짓는 거니께 그 약두 같이 넣어줘유"

이렇게 매월 둘째주 화요일, 강동구약사회 월중행사의 하나인 무료투약 봉사약국내의 풍경은 지역 노인들과 약사들 간의 질문과 대답으로 이어가는 '정 쌓기'로 술렁거리곤 한다.

어느덧 100회 째를 맞은 봉사약국을 찾아 온 노인들의 이야기 역시 상담이 끝나고 조제약이 손에 쥐어질 때까지도 쉬임 없이 이어진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증상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한 가지 약이라도 더 받게될지 모른다는 기대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건 이 약사의 영악한 생각일 뿐일는지도 모른다. 그저 아무런 보상을 요구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 열고 들어주는 사람이 바로 앞에 있다는 미더움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까지 고스란히 접수하며 앉아있는 이 약사에게,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무게 있게 다가온다. 조금이라도 더 잘 살아보겠다고 허리띠 바짝 졸라매며 살아온 세월이 주고 간 생채기, 그 흔적들이 나이테처럼 골 깊게 파고들며 나타난 비슷비슷한 퇴행성질환들 앞에 풀 죽은 어른들! 그 분들로부터 듣던 '아프다' 는 말에 혹여 귀찮다고 자주 얼굴 찌푸리고 사는 우리는 아닌지, 효과 좋다는 약으로, 혹은 수술로 자식 도리는 다했다며 더 이상의 호소를 피하려 들고 있지는 않은지…….

다음 달에 다시 오겠다는 마지막 환자, 그리고 함께 봉사하던 선생들과 마주 인사하며 재빨리 가운을 벗고 행사장을 빠져 나오는 이 약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어느새 40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사회를 받쳐가고 있는 기둥의 어느 부분인가에는 한 손이라도 내밀고 있어야 한다는 이 나이에, 따로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이렇게 봉사할 수 있는 약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것에 감사할 일이라고, 선배 약사들의 응집된 지역사랑으로 시작된 이 무료투약 봉사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지역 주민들에게서 받고있는 약사로서의 신뢰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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