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들처럼 감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특히 진보적이라고 하는 단체일수록 더한 것 같다.
진보적 단체이니까 사고방식이 진보적인 사람들이 모인 단체일 터인데 단체의 구성을 보면 단연 머리가 무거울 정도로 위쪽에 많은 이름들이 포진(布陣)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마 이런 것이 진보적인 것이라고 생각되는 모양이다.
얼마전 어느 단체의 구성을 보니 공동의장에 10여명의 이름이 나열된 것을 보았다.
또 어느 단체는 고문단이 역시 많은 유명인사(?)의 성함을 모시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런 경향은 최근 정치적인 단체에서 부쩍 많이 보이고 있다.
뉴욕 맨하탄에서 며칠 전 소개받은 어느 신사의 명함에는 앞면에 커다란 천연색 사진과 직함이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미처 보지 못한 것은 뒷면에 나열된 많은 감투, 집에 와서야 다시 한번 들여다보다가 발견(?)했다. 자문위원, 고문은 물론 공동대표, 회장, 부회장 등 화려한 직함이 표시되어 있었다.
이렇게 많은 감투는 물론 많은 저명(?)인사들이 감투를 원하는 데도 원인이 있겠지만 많은 단체가 또 이에 부응하여 감투를 양산(量産)하는 데도 있다.
약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주에 출범한 첫 직선제 대한약사회는 부회장만 9명이다. 여기에 부회장급인 정책기획단장까지 포함하면 실제로 부회장은 10명인 셈이라는 보도이다. 이렇게 부회장이 늘어난 이유는 선거를 하면서 신세를 진 인사들에게 보답을 하려니까 7명으로는 모자라서 늘렸다는 얘기이다. 일부 시도지부도 예외는 아니어서 부회장이 7명이라고 한다.
과연 이렇게 많은 부회장이 필요할가? 옳은 대답은 물론 양식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그것이 내게 해당하는 것이면 나 하나쯤 더 들어가는 데 무슨 일 있을라고 하며 여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남이 하면 불륜(不倫)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이다.
이렇게 감투가 많아지다 보면 감투의 중요성은 날로 희석된다. 자기가 무엇을 맡고있는 지도 모르는 부회장이 늘어나고 이런 감투를 쓴 사람은 회에 대한 기여도(寄與度) 또한 희석되게 마련이다.
최근 대한약사회 총회는 서울시약사회의 총회 파견대의원이 선정되지 않아 연기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물론 제때에 대의원 선정을 못한 이유야 많겠지만 진짜 이유는 신세 진 사람은 많고 자리는 적은 데 원인이 있지 않은가 한다.
대한약사회의 대의원은 회장을 직선으로 뽑게되다 보니 이제는 중요성이 훨씬 떨어지는 `감투'가 되어 버렸는데도 말이다.
또 한가지, 대의원들의 명단을 들여다보면 예우(禮遇)차원의 인사들이 많은 것도 한 원인이다. 전임 회장단이어서, 또 무슨 감투를 쓴 사람이어서 따지다가 보니 현재는 회의에 관심도 없고 참여하지도 않고 심지어는 건강문제로 두문불출인 인사까지도 대의원으로 선정하는 넌센스를 보여주고 있다. 회의 정관이 그렇게 되어서 할 수 없다고 하는 분도 있겠지만 책임있는 회의 집행기구나 운영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약사회는 이제 할 일이 산적해있다. 해결하고 방향을 제시할 일이 어느 때보다도 많다. 없는 지혜도 짜내고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할 일이 많은 때이다.
이런 때에 너도나도 공만 차지하려고 하고 회의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사들이 이름만 걸어놓는 장소처럼 되어서는 안되겠다. 대한약사회는 부회장 10명이 다. 열심히 일하는 약사회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