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두 학자는 최근 세계 의학사에 남을 만한 업적을 보고했다. 인간의 줄기세포(stem cell)를 복제(cloning)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여태까지 인간이 아닌 동물에서 이에 성공하여 복제양(複製羊)을 만드는 데 성공한 바는 있지만 이것을 인간에 적용시켜 성공한 사실은 아직 없었다.
인간복제는 이것이 갖는 윤리적인 문제로 인해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금지하고 있고 따라서 이에 드는 막대한 연구비를 정부가 지원하지 않는다. 이번 황우석(51세), 문신용(56세) 두 교수가 발표한 것은 인간복제(human cloning 또는 reproductive cloning)가 목표가 아니라 이를 이용한 난치병, 예를 들면 알츠하이머, 파킨슨, 당뇨, 암같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소위 치료용복제(therapeutic cloning)에 목적을 두고 있다.
권위있는 과학잡지 Science에 그 논문이 실리는 것을 계기로 뉴욕타임스는 2월13일자 1면에 연구실 사진을 싣고 상세한 기사를 뒷면에 한 페이지에 걸쳐서 관련기사와 함께 대서특필하고 있다. 며칠 후(2월17일)에는 과학판에 이에 관한 기사와 아울러 두 교수와의 인터뷰를 싣는 등 또다시 크게 다루고 있다. 그러나 막상 한국의 종이신문이나 인터넷신문들은 이 기사를 간략하게 다루고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엠바고를 깬 중앙일보만이 공식 발표되는 시점에 앞서 1면 머리기사로 다루었을 뿐이었다.
엠바고(embargo)란 기사의 발표시기를 정해 그전에는 기사를 내보내지 못하게 하는 신사협정이다. 한국의 언론들은 엠바고를 깼다, 아니다라는 논쟁을 오히려 크게 다루고 연구자체나 획기적인 연구성과를 올린 학자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외국에서는 벌써부터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연구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 판에 IT, BT만이 한국이 살길이라고 외치는 나라에서 BT의 최고급기술에 속하는 복제기술에 대해 냉대(冷待)를 함은 어쩐 일 일까? 뉴욕타임스에 난 이 두 교수의 인터뷰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부시대통령의 생명공학윤리 고문은 당신들의 연구가 미국에서는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의견은?
황우석 교수=우리의 목적은 복제인간을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불치병들의 원인을 밝혀 새로운 치료의 기회를 주고자 함이다.
문신용 교수=황 교수와 나는 복제인간을 만드는 것을 반대한다. 우리의 기술을 이용, 인간을 복제하는 데 쓰는 것은 반대한다. 우리는 모든 나라들이 인간복제를 금지하는 법률을 조속히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과학자로서 나는 복제인간을 만드는 것은 금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모든 복제연구가 금지된다면 미국의 과학연구는 어찌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문 교수=모든 복제 연구가 금지된다면 미국의 과학연구는 문제가 생길 것이다. 줄기세포의 연구는 사람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기본을 이해하는데 중요하고 또한 새로운 약품을 개발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미국에서의 생명공학 발전에 장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들의 연구를 수행하는 데 한국정부와는 문제가 없는가?
황 교수=이런 식으로 답변할 수 있다. 만일 한국정부가 우리의 연구를 금지한다면 우리는 이런 연구가 허용되는 다른 나라, 예를들면 싱가포르, 중국, 또는 어쩌면 영국으로 가야할 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한국정부가 이런 연구를 허용하리라고 희망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곳을 갈 것이다. 현재 우리 연구진의 반은 기도교인이다. 문 교수는 감리교인이다. 우리는 왜 이런 연구를 하는가를 자체 내에서 토론해 왔다. 우리들 스스로 불치의 병을 치료하는 목적이 복제를 통하지 않고 이루어 질 수 있는가 자문(自問)해 왔다. 해답은 목적이 선한 것임으로 이러한 연구는 과학자의 책임이라는 결론이었다.
△황 교수는 어떤 종교적인 환경에서 자라왔는가?
황 교수=나는 불교신자이다. 복제와 관한 철학적인 문제는 없다. 당신도 알다시피 불교는 인간의 윤회(輪回)를 믿고 내 생각으로는 치료용의 복제도 윤회의 시작이다.
△황 교수는 넉넉한 가정에서 자랐는가?
황 교수=그렇지 않다. 내 고향은 아주 벽촌이다. 내가 영아였을 때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홀로 여섯 형제를 키웠다. 한국전쟁 후 여러 해 동안 시골사람들은 매우 어렵게 살았다. 나는 시골의 초등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으나 대학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시골에서 자란 것이 복제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가 되었나?
황 교수=그렇다. 어려서부터 소를 길러왔다. 지금까지도 소의 눈을 들여다보면 소와 대화할 수 있다. 이것은 내가 동물복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또 농부들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예를들면 어떤 소는 우유만을, 어떤 소는 고기만을 위해서 사육한다. 1999년에 나는 우유와 고기 둘다 해결할 수 있는 일종의 수퍼 소를 만들 수 있었다. 또 2002년에는 인간에게 이식할 수 있는 장기를 제공해줄 수 있는 조그만 돼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파키슨병이나 척추상해 등 불치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용복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신들은 이 연구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게 되었는가?
황 교수=이미 세계특허(PCT)를 내놓고 있다. 60%의 특허료는 서울대로 가고 나머지 40%는 다른 협력자에게 돌아간다. 문 교수와 나는 대학의 교수임으로 이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당신들의 동기(動機)가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 참여하지 않는 것인가?
문 교수=그렇다. 한국에서는 서양과는 달리 교수들은 사회의 존경을 받는다. 황 교수는 명예는 택하되 돈에 연연하지 않는다.
△당신들은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가?
황 교수=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의 세대가 우리가 한 일을 더욱 발전시키고 성취할 때는 노벨상을 받을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한 일은 하나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