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된 지 3년이 넘은 의약분업이 계속 문제가 되고 있다. 한 국회의원이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하여 조사한 결과를 보면 87%가 의약분업으로 손해를 본 것은 국민이라는 놀랄만한 결과가 나왔고 의약분업의 시행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라는 의견도 과반수(56.7%)이상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의약분업 실시의 중심 역할을 한 약사사회로서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의약분업의 실시로 의료의 혜택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고 있어 이것만으로도 의약분업의 진짜 수혜자는 국민인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홍보 부족'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엄청난 사실이다. 시행초부터 준비부족과 의료비가 적게든다는 장밋빛 그림만을 그려 국민에게 잘못된 인식을 준 결과가 이제 나타나는 것이다. 필자는 의약분업이 시행되기 전부터 이 제도가 만능(萬能)의 해결책은 아니며 국가의 의료비 지출은 증가될 것이며 의약품 사용은 증가되고 남용(濫用)과 오용(誤用)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번 경고한바 있다.
이제와서 “I told you so!”라고 말할 의도는 없다. 그러나 현행 의약분업의 미비점과 잘못되어 가는 방향, 마땅히 가야할 방향에 대해서는 집고 넘어가야 할 의무감에서 이글을 쓴다.
부메랑이 될 처방약 목록제출
한마디로 의사들이 흔히 처방하는 목록을 제출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는 실용적(實用的)인 가치가 없는 제도이다. 이 목록을 보고 약사들이 많은 약 중에서 어떤 약을 약국에 비치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는 참고자료가 될 수는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또 이것은 의약분업이 처음 실시될 즈음에는 약사들이 어떤약이 처방될 지를 몰라서 나온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이제 의약분업이 실시된 지 3년이 경과된 시점에서는 더구나 필요 없는 일이다.
의사는 한국에서 유통되는 어떤 약이건 처방이 필요한 약은 처방을 쓸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처방목록을 제출해 놓고 그 안에서 주로 처방을 낸다는 것은 의사의 처방권(處方權)을 제한하는 일이 된다. 또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이를 처방하려면 처방약목록을 다시 제출해야하는 번거로움도 생긴다.
처방약목록 작성도 의사들의 개인적인 필요가 아니고 시·군·구의 의사회(또는 치과의사회)가 조정하여 해당약사회에 내게 되어있어 지방에 따라 일종의 제한된 처방집(limited formulary)을 마련하는 것과 같다. 이는 의사의 진료를 제한하는 결과가 되며 제약회사는 그들의 생산제품이 이 처방집에 포함되게 하기 위한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할 우려도 있다.
약국의 입장에서 보면 이 처방목록에 포함된 약품은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
그러나 의약분업의 역사가 긴 미국에서의 경험으로 보면 아무리 처방을 많이 취급하는 약국이라도 200~300개의 의약품을 가지고 있으면 충분하다. 의사는 그들의 전문 진료과목에 따라 대략 50개 내외의 약품을 주로 쓰는 것으로 되어있다.
처방약의 종류는 그 지역의 의사들이 어떤 진료를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어떤 전문과목을 표방하는 의사들이 있느냐에 따라 정해질 문제이고 그 동네의 약국은 이에 따라 반응하면 된다.
흔히 약사들이 걱정하는 것은 처방은 왔는데 약이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나 모든 처방전을 바로 그 자리에서 환자에게 주어야 되는 것이 아닌 만큼 없는 약은 특별히 주문하여 몇 시간 후 또는 다음날 교부(交付)하면 된다. 그것이 싫다는 환자는 그 약이 있는 약국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다.
처방약의 목록에 포함되었다고 해서 다 비치해 놓았다가는 그 중에는 처방이 가뭄에 콩나듯 나오는 것도 있을 것임으로 이런 것은 재고로 처지게 되는 위험부담도 생각해야 한다. 특히 재고약의 교품같은 것이 큰 문제가 되어있는 한국의 실정에서 이것은 약사의 편익을 위해서도 재고해야 한다. 처방약 목록은 약사에게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처방전 2매 발행은 계륵(鷄肋)
처방전을 꼭 2매씩 발행해야 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자원의 낭비이다. 2매를 발행해서 하나는 약국의 조제용으로 나머지 하나는 환자의 보관용, 또는 참고용으로 필요하다고 하지만 꼭 그럴 필요가 있는 지는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통계에 의하면 의사를 찾아가서 처방을 받는 환자의 73%는 경(輕)질환의 경우라고 한다. 감기, 두통, 편도선 등 이런 것에 대한 투약의 기록을 굳이 안 하겠다고 하는 의사에게 처방전을 2매씩 발행하게 강요하는 것은 인심을 써도 괜찮은 사항일 것으로 생각된다. 또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런 것까지 보관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록으로 보관하고 싶다면 중증의 질병의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중증의 질병에 대한 처방과 투약은 병원에서 시행됨으로 환자가 기록을 보거나 가질 기회도 없다.
꼭 기록을 가지겠다는 환자는 스스로 처방전을 복사해서 가지면 된다. 또 뒤에 언급하겠지만 약국에서 조제투약할 경우 분명한 라벨 또는 복용지시서를 발급하고 이것을 보관하면 더 확실한 기록이 된다. 처방 자체만으로 약국에서 조제해서 복용하기 전에는 환자가 어떤 약을 복용했다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 처방전 자체만으로는 환자가 그 약을 복용했다는 증거능력이 없다.
소송만능사회에 대비한 처방전 보관
약국에서 처방전을 2년 또는 5년 동안 보관해야 하는 이유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만약의 경우'란 문제가 생길 경우를 말한다. 오약(誤藥)사고가 났다든지, 어떤 처방약을 복용했느냐가 중요한 분쟁의 단서(端緖)가 된다든지 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법원의 재판과정은 우리가 다 알다시피 며칠만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몇 년이 걸릴 경우도 있고 아예 몇 년이 지나서야 소송이 제기되는 경우도 있다. 적어도 5년은 약국에서 보관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본다. 이제 한국사회도 점점 소송 만능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약국에서 조제한 처방전은 또한 환자와 약사간에 비밀로 해야할 의무기록(medical record)임으로 제3자에게 공개해서는 안 된다. 환자나 또는 환자가 위임하는 사람에게만 공개할 의무를 가진다. 처방전을 5년씩이나 보관하려면 부피가 꽤 되니 약국의 스페이스가 문제라는 얘기도 있으나 이는 약사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각론이 없는 성분명 처방과 대체조제
성분명 처방은 한국 약사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고 있지만 조금만 자세히 검토해보면 성분명 처방이란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첫째 성분명 처방이란 의사들에게 꼭 성분명으로 처방을 쓰라는 것이다. 그러면 약사들이 조제할 약을 선택하겠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의사들에게 성분명으로만 처방을 쓰라는 것은 의무기록(chart)을 영어로만 쓰라든지, 또는 라틴어로만 쓰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의사들에게 성분명(generic name)은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 약사들에게 약학대학에서 시판 약품들의 상품명(trade name)과 성분명을 가르치지 않음으로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둘째로는 만약에 의사들이 성분명으로 처방을 쓴다고 하면 약사들에게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면 `ranitidine정 150mg'이란 처방을 약국에 가져왔을 경우, 시판되는 ranitidine정 150mg은 53종이다.(참고 Korean Drug Index, 2003-2004판, 약업신문발행) 가격은 1정당 43원에서부터 506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이런 경우 약사는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또 건강보험을 집행하고 돈을 주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뭐라고 할 것인가? 이런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성분명 처방을 주장하는 분들에게 있는가?
셋째로 한국에서는 상품명과 성분명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없다. 구미(歐美)에서는 상품명이란 최초로 어떤 약을 개발하여 독점권, 특허권을 가진 품목이다. 이 품목의 특허가 끊어지면 다른 회사가 만든 동종(同種)의 제품이 성분명제품, 또는 `generic product'인 것이다. 위에서 예를 든 ranitidine은 generic 또는 성분명제품, 심지어는 카피제품, 복제(複製)제품이라고 일컫는 것들이다. 상품명은 Zantac이다. 그런데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위의 ranitidine정 53개가 모두 그들의 상품명을 가지고 있다. 듀락틴정, 큐리틴정, 원탁정…등등.
한국 내에서 상품명제품은 한국 제약회사가 최초로 만든 그들만의 제품이거나, 신약 또는 다국적 제약회사가 내는 그들이 처음 개발한 약품이거나 아직도 특허가 유효한 제품이다.
약사들이 성분명 처방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자명(自明)하지만 한국에서는 성분명제품 즉 `generic'이라고 확연히 구분할 만한 제품이 없다. 대부분의 `generic'제품이 한국에서는 또한 상품명제품(branded product)인 것이다.
Refill제·복약지도 문서화로 환자편익 도모
실시간 On-line 도입 급여결제 비용·중복진료 방지
Refill(재조제) 제도의 실시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에 쓰는 약의 경우 많은 환자가 오랫동안 복용해야 한다. 이런 약들을 필요할 때마다 의사에게 가서 진찰을 다시 받고 처방을 받아오도록 하는 것은 환자나 의사 측으로 봐서도 시간의 낭비이고 건강보험 재정 측의 입장에서 봐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런 약품은 똑같은 처방을 되풀이 해 조제 받을 수 있는 재조제(refill)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또 이런 종류의 약품이 아니더라도 필요가 있을 때는 횟수를 정해 의사가 재조제를 표시해 놓을 수도 있다.
원칙적으로 재조제는 모든 약에 대해서 의사의 판단에 따라서 가능하게 하고 마약(痲藥)같은 남용의 우려가 있는 약 또는 되풀이 할 필요가 없는 약 등으로 재조제를 허용하지 않는 약만 종류를 정하고 다만 재조제의 가능기간을 1년 또는 6개월로 정해 놓아 그 기간이 넘으면 재조제가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refill제도는 의사들이 약사의 수입을 늘이기 위한 음모라고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의약분업을 실시하는 모든 나라가 실시하는 제도이다.
Labeling, Rx munber 복약지도
약국에서 조제한 약을 받아보면 대부분 약사들이 “이 약은 하루 한 알씩 복용하시고, 이 파란 캅셀약은 한 알씩 하루 세 번 식간에 복용하시고 이 안약은 2방울을 왼쪽 눈에 하루 세 번 넣으시고, 이 연고제는 하루 한번 자기 전에 환부에 도포하시오” 라고 설명한다. 약국에 따라서는 약사가 볼펜으로 적당히 적어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것을 정확히 기억하는 환자가 얼마나 될까? 어떤 이는 그러니까 처방전이 2매가 필요하지 않은가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조제라는 과정을 거친 약은 약사의 책임아래 복용지시를 약사가 환자에게 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약사의 지시는 약사가 처방의 지시에 따라 분명하게 써주는 것이 옳다. 약사의 조제시에는 모든 약국이 컴퓨터를 사용함으로 지시사항을 라벨에 프린트해 주어야 한다.
그 뿐 아니라 약품의 일반적인 주의사항 같은 것도 보조라벨(auxiliary label)을 사용해서 환자가 밀크류와 복용하면 안된다든지, 알코올의 섭취를 금한다든지를 표시해 주어야 한다. 이것은 약사의 의무로 되어있는 `복약지도'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또 약사들이 조제할 때 조제한 처방을 보관하는 것을 보면 조제한 날짜 순으로 보관한다. 의사가 쓴 처방전을 보면 처방날짜가 적혀있다. 이 날짜는 조제한 날짜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약국의 조제약은 라벨과 함께 처방약마다 일련번호로 처방번호(prescription number)를 매겨야 한다.
약국에서 조제받은 약은 반드시 그 라벨에 처방번호, 환자이름, 주소, 약이름, 의사가 지시한 복용방법, 의사의 이름을 기재해야 하고 미리 인쇄된 약국의 라벨에는 약국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 그리고 약사의 이름 등이 명기되어 있어 만약의 경우 예를 들면 조제약에 대한 의문이 있을 경우에는 그 약국에 연락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labeling requirement가 필요한 이유는 처방된 약의 근원을 밝히는 것도 되며 환자A에 조제된 약을 환자B가 복용하는 오약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실시간처방전(On-line) 급여 결제
처방전을 취급하는 약국은 일정기간 동안의 조제기록을 모아서 심평원에 제출하고 심평원은 이를 심사하여 약국에 수가를 지급한다. 말은 간단하지만 이 과정에서 약국은 잘못 기록된 경우이거나 급여가 중지된 품목이거나 변경된 품목에 대해서 손해를 볼 경우도 생기고 다시 소명 자료를 첨부하여 청구하는 경우도 생긴다. 심평원은 이를 다시 심사하여 15일이나 30일 등 그들의 지불 사이클에 따라 지급한다. 이는 약국이나 심평원의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약국의 전산시스템을 실시간(on line)으로 하면 많은 이득이 있다. 우선 심평원의 심사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적격 판정을 없앨 수 있다. 급여가 변경된 품목 등을 조제하면서 컴퓨터의 feedback으로 당장에 알 수 있음으로 손해를 방지할 수 있다.
심평원 입장에서는 부적격한 청구를 실시간으로 막을 수 있음으로 심사에 필요한 인력의 낭비를 막을 수 있고, 이것뿐 아니라 이밖에도 컴퓨터에 다양한 기능을 첨가함으로서 잘못된 약의 조제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심각한 drug interaction을 지적할 수 있고, drug utilization review의 기능을 부여함으로서 정부가 원하는 약품의 사용을 유도, 건보재정의 절감을 가져올 수도 있다.
또한 참여하는 약국들에게 변경사항의 통보 등을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할 수 있어 많은 비용을 절약하고 동시에 빠르게 전달할 수 있다. 의사까지 이에 참여시키면 고질적인 환자의 중복진료도 막을 수 있다.
한국은 이제 세계에서 둘째라면 섭섭할 정도의 IT강국임으로 이의 실시에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하나도 없다. ATM(현금인출기)이 곳곳에 있어 언제고 자기가 은행에 있는 돈을 찾을 수 있고, 동회에 가서 성적증명서, 졸업증명서는 물론 호적등본을 떼어 볼 수 있는 컴퓨터 시스템이 갖춰졌는데 약국시스템을 온라인으로 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 일 것이다. 오히려 이를 안 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심평원은 많은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다. 미국에는 수백 개의 보험회사가 있다. 약국의 컴퓨터에는 이들 보험회사의 까다로운 조건이 모두 입력되어 있어서 조제를 하면서 처방하나에 대해 얼마를 지불 받는가를 안다. 한국은 이보다 조건이 훨씬 좋은 것은 보험회사(심평원)가 하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