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대6년제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가고 있다. 얼마전 복지부 장관은 대한약사회의 회장단을 만난 자리에서 협조를 약속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약사사회에서도 약대6년제에 대한 뚜렷한 반대는 없다.
일종의 묵시적(默示的)인 합의가 이루어진 느낌이다. 그러나 이상스럽게도 약대6년제에 대한 반대는 한의계나 의사들의 단체에서 나오고 있다. 이들의 반대이유는 약학대학이 6년제가 되면 행여나 자기들의 업권에 침해가 되지 않는가 하는 우려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반대이유는 그들의 약사의 직역에 대한 잘못된 이해나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에서 탈피하고 있지 못한데 연유한다. 우선 의약분업의 실시로 의사와 약사가 서로의 직역을 공공연히 침범하던 시대는 지났다.
약사는 처방에 의해서만 조제하고 병의원의 임의조제는 없어졌다. 한의사가 약사의 역할에 과민스럽게 반응하는 것도 당치 않은 일이다. 이미 한의사의 처방을 담당할 한약사제도가 확립되었고 약사들 중에 한약을 취급하는 경우는 한약조제시험을 통해 한약취급의 범위가 제한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약대6년제를 대하는 약사사회 안에 있다고 본다. 솔직히 약사사회는 약대를 6년제로 한다는 것만 있을 뿐 약대를 6년으로 할 경우 어떤 학위를 이들에게 수여하며 늘어나는 2년 동안에 어떤 과목을 가르치며 현장실습을 중심으로 한 인턴과정이 필요한 것인지 필요하다면 인턴과정을 1년으로 할 것인지 또는 한학기 정도로 충분한지에 대한 논의조차 없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6년의 약대 교육과정을 거치는 약사는 어떤 약사여야 하는 지에 대한 토의조차 없다. 6년제 약사도 현재와 같이 약학과와 제약학과로 나뉘어져야 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총론(總論)은 있되 각론(各論)이 없다. 컴퓨터만 갖다놓고 이를 돌릴 소프트웨어가 없는 격이다.
앞으로 10년, 20년 또는 30년 후에는 약사란 전문인이 무엇을 하며 이에 따라 어떤 약사가 요구되고 있는 지에 대한 방향성이 요구된다.
현재의 약대 교과과정은 30년전, 40년전의 교과과정과 별로 다를 것 없는 상황에서 다시 2년만 추가한다면 이것은 방향없는 항해(航海)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좋은 예가 약대에 제약학과를 설치한 일이다. 말만 제약학과이지 약학과 졸업생과 같이 약사시험보고 약사되며 약국을 개업하거나 병원에 근무한다.
의약분업의 실시와 더불어 우리는 약사가 무엇을 하고 어떤 교육이 요구되는 지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나열식의 커리큘럼을 배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약사가 관계되는 분야이면 모든 것을 다하겠다든지, 또는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미 시효(時效)가 지난 생각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30여년 전에 약대교육협회(AACP)가 약학교육위원회를 구성하고 약사란 무엇을 하는 직업인인가, 또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해야하는가를 정리하여 약학교육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2년여에 걸쳐, 80여명의 자문을 받아서 낸 이보고서가 `밀리스리포트'로 오늘날 미국 약학교육의 방향을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형편에서는 뭐니뭐니해도 약사회가 회원도 많고 재정도 여유가 있으니 명목상의 위원회만 구성하지 말고 학계, 약사단체, 개국약사, 병원약사는 물론 인접학문 즉 의계나 한의계인사들 까지도 자문을 얻어 약학의 방향을 설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