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문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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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수정 2009-09-22 11:46
▲ 현기원 <기원약국 약사>

개국약사로써 여행을 간다고 하는 것이 사치일까. 의약분업 전 만해도 일 년에 한번은 아내와 여행을 가곤 했었는데 벌써 십 년째 그런 시간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바쁘다는 핑계보다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난주 중앙대 약대 전지 이사회를 다녀왔다. 친구와 후배, 나 셋이서 네비게이션을  믿고 가다가 여러 산과 들을 지나 목적지에 겨우 갈 수 있었다. 먼 길을 돌아 간 셈이지만 영동고속도로가 막히는 바람에 결과론 적으로 잘 선택이 된 셈이다. 출발 전부터 난관이었다. 십여 년 동안 신발장에 있던 운동화를 신고 약국을 떠나려는 순간 밑창이 삭아서 너덜거리는 것이다.

옆에 있던 아내가 걱정 반 웃음 반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무슨 물건이든 하나를 사면 헤어져 너덜거릴 때까지 입고 신는 나의 버릇에 대해서 약간은 조소를 보내는 웃음이다. 아내는 이왕이면 새것을, 나는 무엇이든 편한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책망을 많이 받고 살고 있다. 제발 궁상떨고 살지 마세요 라고. 새로 운동화를 장만하고 나서야 우리는 출발 할 수 있었다. 친구와 후배가 이야기를 듣고 배꼽 빠지게 웃는 것이다.

가을 산야는 너무도 멋이 있었다. 들판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고 산에는 단풍이 연분홍 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시골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라지고 다시 시야에 들어온다. 석양하늘은 발갛게 물들어 하늘과 땅과 산야를 아주 정답고 포근하게 감싸준다. 그 속에 내가 있고 친구가 있고, 후배가 있는 것이다.

오는 길에 요기 할 겸 사온 찜 빵이 나의 이런 게으르고 느긋한 마음을 더욱 상념에 잠기게 한다. 언제나 느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바로 지금 이곳에서 보듬는 감정을 과연 일 년에 몇 번이나 안고 살아가는 것일까. 참으로 오랜만에 스승님도 뵈었고 선배와 후배들도 만났다.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선거가 큰 이슈인 듯하다.

통나무 숯불 바비큐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교수님과 학창시절 바둑 이야기도 나누고 등산을 자주 하니 함께 산에 가자고 하신다. 후배가 선배에게 단일화를 양보하는 미덕과 함께 동반자의 관계로 최선을 다 하자는 덕담은 나의 심금을 울리게 하였다. 항시 분열과 대립의 관계로 후유증에 몸살을 알았던 동문회이고 보면 이번은 참으로 잘 된 일인 것 같다. 선거는 일상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언제나 승자와 패자는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것이 마지막이고 전부인양 모든 것을 걸려고 하다 보니 부작용이 생기고 상처가 남는 것이다. 선거라는 선택은 회원의 고유권한이다. 그 권한이 진실 되게 쓰이고 행사된다면 우리의 앞날은 발전되어 나갈 것이 틀림없다. 무관심보다 큰 적은 없다고 한다.

선량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것 도 회원의 권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모쪼록 다가오는 선거에서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회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후배가 선배님께 말하길 누구만 사랑하지 말고 나에게도 그 사랑 좀 주세요 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나는 후배를 다 사랑하고 있는데 후배들은 그렇게 안보는 모양이야 하신다.

편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편애가 후배가 보았을 때 일방적으로 비춰지는 것은 섭섭함이 가득한 마음의 표시일 것이다. 그런 마음이 오래가면 정감이 무너지고 관계가 소원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가을의 문턱에서 순수한 자연을 함께 공유하며 서로에게 칭찬하고 서로를 받들 수 있다면 작게는 우리 동문회에서 넓게는 모든 회원이 선거라는 큰 일상을 축제의 장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모쪼록 그런 사랑이 늘 울려 퍼지길 간절히 기원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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