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갑규 동광제약 부장작년 2008년은 ‘너는 내 운명’이라는 연속극이 TV드라마 시장을 작렬한 한해였다고 한다.
초고속 인터넷에 따르면 최소한 연말에는 4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KBS 9시 뉴스의 시청률을 덩달아 올려놓았다는 소식이다. 사실 ‘너는 내 운명’은 어느 정도 비상식적인 줄거리를 저변에 깔고 다니며 오직 시청률 드높이기에 열중한 부분이 없지 않은 드라마였다.
사랑에 무슨 근거가 있고 어떤 경계가 있어야 한다고 하면 분명 비난받아야 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그런 면이 없지 않았다’고 한발 내빼는 수밖에 없다.
‘너는 내 운명’이 시청자들의 열광적인 지지속에 종방을 앞둔 작년 12월말, 그 3년 전인 2005년 12월말에는 황정민과 전도연 주연의 영화 ‘너는 내 운명’이 개봉했다.
순박한 시골 총각과 알고 보니 에이즈 감염자였던 아마도 ‘특수직 종사자’였을 전도연의 새콤하고 달콤하다 마침내 막장까지 가는, 하지만 끝까지 함께 가는 그런 내용의 영화였다.
황정민에게 전도연은 그녀가 에이즈 감염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부터 거의 일관되게 ‘너는 내 운명’이었다. 전도연은 좀 다르다. 순박한 시골 청년의 입장을 배려하며 정신적으로 한사코 황정민을 거부한다.하지만 황정민의 참으로 순수하고 너무도 지독한 사랑에 두 손을 든다.
이쯤해서 이야기는 MBC 손정은 아나운서로 갑자기 U턴한다. 역시 작년 말이다. 그녀는 자신이 앵커로 출연하는 MBC 뉴스데스크에서 노조파업 문제로 인해 자신이 당분간 이 프로에 출연할 수 없음을 선언하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다.
그녀의 행동이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그건 논객들이 정리할 일이다. 중요한 건 그것이 현재 위치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며 또한 운명이라고 그녀는 판단했다는 점이다.
사실 어떤 것이 자신이 할 수 있고 할 수밖에 없는 무엇이라고 판단될 때 그것을 행하는 것, 그게 운명인지 모른다.
대학 동창들 얘기다. 동창들은 많다. 하지만 필자 나이 쯤 되면 고정멤버들만 만나는 일이 흔하다. 사직하고 장사를 하는 친구, 책임감을 갖고 교직에 임하는 친구, 보험회사를 다니며 월말이면 돈 끌어 쓰기 바쁜 친구, 처자식을 위해 정년퇴임을 맞을 때
까지 끝까지 직장을 사수하기로 작정한 친구.
이런 고정멤버 중 사장이 한 명 있다. 작지 않은 공장을 운영하는 그야말로 사장이다.
작년 한해 그 친구는 무진장 고생했다. 세상 무너지기 직전이 상상될 만큼 어려웠다던 그는 작년 그는 그 회사의 생존을 위해 골머리가 바숴질 만큼 애썼다. 동창이란 무엇인가? 어디어디서 만나고 근처 주막에 들려 술 한 잔 나누는 거, 그게 동창이고 친구 아닐까.
그런데 우리들의 고정멤버들에게는 하나의 금기가 있다. 술값은 절대 못 낸다는 것이다. 세상이 무너져도 술값은 그 사장한다는 친구, 그 친구만 낼 수 있다.
‘월급쟁이들이... 처자식 먹여 살리기도 힘들 텐데’.이런 사설에서 비롯된 그의 술값 내기는 벌써 몇 년이나 됐는지 기억이 안 난다.
올해 멤버들이 새로 모여도 술값은 그 친구가 낼 것이다.
소주 값이 몇 푼이나 되겠냐만 멤버들 중 오직 사장이라는 이유로 그 친구가 운명처럼 챙기고 있는 술값 내기, 그 고집은 아무도 훼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