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누구든, 어떤 이와 보폭을 같이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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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수정 2008-06-19 13:11
▲ 이순훈(소설가, 서울시약사회 문화복지위원장)

신비평의 태두라 불리는 영국의 문학비평가 리차즈(I.A.Richards)는 문학작품을 읽을 때는 꼼꼼하게 읽어야 그 순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 ‘꼼꼼이 읽기’(정독)를 위해 그가 제시한 방법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

말의 뜻을 잘 파악해서 읽을 것, 감상적인 태도는 배제할 것, 작품 내에서 교훈을 찾으려고 애쓰지 말것, 공감할 수 없는 불신은 자발적으로 중단(Willing suspension of disbelief)할 것.

뜻을 잘 파악하며 읽으라 함을 부연하면, ‘말이 품은 함의(含意)며 말하는 이의 어조까지 잘 헤아리라’가 된다.

감상적 태도를 배제하라 함은 ‘보다 객관적 시선으로 전체를 파악해라’가 되고, 눈 밝혀 교훈을 찾지 말라 함은 ‘문학이 가진 다양한 성질을 제대로 살피라’는 의미, 불신을 중단하고 읽으라 함은 ‘작품이 내세우는 것이 독자의 생각과 반대된다고 하더라도 반대라는 생각을 유보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는 의미일 터이다.

그 이론은 대화의 장에서도 유효할까. 익히 체득한 바에 의하면 불신을 누르며 생각의 대척점에 있는 주장을 수용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6월 10일 밤 시청앞 광장은, 의견이 첨예하게 맞선 상황의 극명한 예시를 보여줬다.

광우병이 우려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는 촛불들과 국익을 위해 촛불집회를 반대한다는 태극기의 물결이 진보와 보수라는 낡은 이름 하에 양분되고, 후대를 위해서라도 분연히 촛불을 들어야 할 시점이라고, 아니 촛불을 꺼야 할 시점이라고 몸싸움까지 불사하던 배타적 불신.

그 불신의 그림자가 지금 우리 약사사회에도 드리워져 있다. 대한약사회 수장을 다시 세워야 하는 7.10 보궐선거! 호‧불호를 불문하고 그 블랙홀지대를 함께 통과하여야 하는 이 시기이기에 리차즈의 ‘정독론’은 더 시사적이다.

돌아보라. 21세기적 변환의 혼란스런 구호들은 오늘도 도심을 가로지르는 촛불로 넘쳐나고, 상업적 편의주의만을 집착하는 이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은 약의 주관자로서의 정체성마저 흐려놓는 형국이다.

문밖은 이렇게 위험하다. 방치할 수 없는 현재는 혜안과 성찰을 주문한다. 편견 같은 불신과 관행 같은 동문의 연, 혹은 그가 누구인지 어떤 이와 보폭을 같이하고 있는지 기웃대는 낡은 정실주의를 이제는 과감히 뛰어 넘을 때다.

공동체의 브랜드가치는 그 구성원을 숙주(宿主) 삼는다. 유권자로서의 권리이자 의무인 투표! 올곧은 그 주권 행사를 위해 보다 냉철한 눈으로 후보들이 내건 공약부터 면밀히 짚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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