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민<부천시약사회 총무위원장>1950년대의 소아마비는 세계 인류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여러 질병 중 하나였다.
소아마비에 대한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1950년 전미국소아마비재단이 결성되어 10센트 은화의 모금운동으로 연구비를 모아 소아마비연구를 추진했던 사실을 보면 그 당시의 소아마비에 대한 우려와 해결책이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사회적 필요와 배경 속에서 드디어 조나스 솔크박사가 1952년, 소아마비백신을 만들어 냈으니 주변은 온통 인류가 소아마비라는 질병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당연한 기쁨과 함께 솔크박사가 이 백신에 대한 특허를 통해 얼마나 부를 누릴 수 있을지에 대한 시샘어린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주변의 질문에 조나스 솔크박사는 의외의 답변을 한다.
"햇빛을 특허낼 수 없는 것처럼 이것도 마찬가지요"
이러한 솔크박사의 숭고한 뜻으로 인해 부유한 국가는 물론 세계의 가난한 나라들도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이 소아마비백신의 혜택을 받게 되었으며 그 당시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우리나라도 소아마비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일찍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백신을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다국적 제약사가 아닌 솔크박사가 개발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며 많은 기대와 함께 일부에서는 우려도 교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과 불만이 절대적 빈곤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점을 직시한다면 시장경제 중심의 정부가 과연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으며, 보건복지 분야에서는 그 우려가 더욱 커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미 경제, 부동산,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대적 불평등과 이로 인한 불만을 느끼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건강권마저 민간보험 도입, 요양기관 당연 지정제 폐지 등으로 그 형평성이 깨어지기 시작한다면 그 상실감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겠는가?
아픈 것도 서러운데 부의 차이에 따라 건강서비스도 차별 받는 다면 피부로 느끼는 상실감은 이루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가 될 것이며 그로인한 사회적 건강도 무참히 악화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몇 년 전, 황우석박사의 줄기세포 사건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우리는 그 즈음 황우석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에 무엇 때문에 그리 함께 온 국민이 열광했던 것일까?
우리나라가 낳은 박사가 세계적 연구결과를 통해 인류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을까?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연구를 통해 많은 난치 질환자들이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에서였을까?
물론 이런 생각들로 우리 국민들은 열광하고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면으로는 줄기세포 연구를 바탕으로 한 의료산업화로 부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기뻐했던 부분도 적지 않았다는 생각에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혹자들이 좌파라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우리나라의 미래 산업으로 신의료기술을 바탕으로 한 의료산업화에 있다고 공공연히 떠들었던 것을 보면 아니라고만 부정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이제 대한민국과 우리 스스로는 조나스 솔크박사의 단호하고 시원스런 대답에 한 번쯤은 귀를 기울여 봐야 한다.
물론 시장과 경쟁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으며 이 체제가 인류가 경험한 여러 가지 체제 중 가장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도 실패하기 쉽지만 시장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준다고 믿는 것도 또한 실패하기 아주 쉽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불치병으로 인해 치료법이 없어서 죽어간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고칠 수 있는 질병임에도 사회적, 경제적 차별로 죽어간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고통을 넘어 미움과 증오마저 이 사회에 남기게 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