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상비의약품’은 누가, 어디에서, 어떤 품목을 팔 것인가 하는 시장경제적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해답이 없다. 아무리 안전성이 확대된 의약품이라 해도 약은 약이다. 부작용이 없을리 없고 용량과 복용법에 따라 그 피해 정도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세상에 안전한 약은 없다. 약국에서 팔면 안전하고 편의점에서 팔면 안전하지 못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결국 안전상비약이란 용어로 국민들 구입 편의를 도모하겠다는 정책당국의 판단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국민건강과 편익을 위한 목적이라면 가정마다 구급의약품함을 보급하는 국가적 국민운동이나 캠페인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일각의 주장이 새삼스러운 이유이다.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 5차 회의는 어수선한 가운데 마무리됐다. 1년 동안 논의 해 온 품목조정안이 최종적으로 결정 될 것으로 예상됐던 이날 회의는 결국 소득 없이 끝났다. 약사회를 대표해 위원회에 참석했던 정책위원장의 자해소동은 절박했던 당시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결국은 전략도 전술도 없이 위원회에 참석했던 약사회의 무대책을 대변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심의위는 이달 중 다시 6차 회의 자리를 마련해 안전상비약 품목조정안에 대한 최종 결정을 이뤄낸다는 후속설명이 이어졌다. 보건복지부 차관출신이자 대학교수 신분의 위원장은 곤혹스런 상황에 직면했다. 예상치 못했던 자해소동으로 예정됐던 심의와 표결을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심의위원회가 의결기구는 아니지만 합의는 필요했던 상황이다.
위원회를 주관하는 복지부는 제산제와 지사제를 편의점 판매약으로 추가하고 대신 사용에 부작용이 위험이 있거나 중복된 약제를 제외하는 안을 사회적 합의기구인 위원회 표결에 붙여 통과시킬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여 진다. 지난 9월 서울에서 열렸던 FIP총회에 참석했던 외국 참가자들이 안전상비약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현장에서는 안전한(Safety) 구급약(Emergency Drug)이라고 답변했고 이에 대해 외국인은 세상에 이런 약이 어디 있느냐며 매우 황당해 했던 기억을 상기시킨다. 이점 시사하는 바 매우 크다. 이번처럼 자해소동과 같은 방식으로 온몸을 던져 품목조정을 막아낸다고 해서 약사사회와 직능을 지켜낸 열사가 될 수는 없다.
복지부는 경제적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서는 안된다. 심의위원회를 단순 요식행위를 삼으려 했다면 이 역시 속이 보이는 행동일 뿐이다. 내부논의가 필요하다고 몇 차례 회의를 갖고 정해진 기간 내에 정해진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참여 민주주의의 전부일수는 없다. 모든 의약품은 안전하다고 할 수 없고 그만큼 모든 부작용과 위험성에 대해 매우 높은 수준의 관리와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은 약사정책의 가장 근간이 되어야 할 대목이다. 안전상비약 품목조정 과정에서 또 한번 확인된 의약품 안전성과 관련된 유일한 팩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