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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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과 투병해 왔던 에드워드 무어 케네디 미국 상원의원(민주당 매사추세츠州)이 지난달 25일 향년 77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새삼스런 얘기지만, 故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존 F. 케네디 前 대통령의 막내 동생이다. 그는 셋째형 로버트 F. 케네디 前 법무장관마저 비명에 간 뒤 진골(眞骨) 케네디 가문의 영광을 재현할 적자로 큰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1969년 채퍼퀴딕 섬에서 일어난 의문의 교통사고 스캔들에 발목잡혀 결국 꿈을 접어야 했던 롤러코스터 탄 사나이'였다.
그러나 케네디 의원은 백악관행 예약티켓을 지미 카터 후보에게 넘겨준 뒤 상원(上院) 보건 교육 노동 연금위원회 위원장까지 맡으면서 누구보다 왕성한 의정활동으로 '뉴 헬스케어 프론티어'라는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코자 혼신의 힘을 쏟아부은 대표적 보건복지通이었다.
실제로 그는 제네릭 사용 촉진플랜에서부터 바이오시밀러 법안 도입, 임상시험 피험자 보호, 신약개발을 위한 연구 효율성 제고, 임상시험 정보의 투명한 공개 등 웬만한 보건의료 현안들에 전방위로 관여하면서 법적 뒷받침에 한 치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은 든든한 스폰서였다. 한창 투병 중이던 지난 7월초에도 BT 드럭들에 대해 최대 13년 6개월까지 독점권 보장을 제안하는 요지의 법안을 제출했을 정도다. 또 진보진영의 대부답게 오바마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개혁 정책이 첨예한 찬 반 논란에 직면해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현실에서 강력한 막후 후원자로 힘을 실어준 것으로 알려져 왔다.
중병을 앓는 의료보험이 대수술을 앞둔 지금, 그의 빈자리가 더욱 커 보일 법하다. 아울러 여러 모로 미국의 케이스를 치험례삼는 참조 시스템(reference system)이 수시로 작동되어 왔고, 보건의료 분야 또한 예외가 아닌 것이 우리의 현실이어선지 케네디 의원의 타계는 그저 아무 상관없는 남의 나라 부음으로만 들리지 않는 느낌이다.
그를 끝내 '형만한 아우 대통령'의 꿈을 접어야 했던 비운의 정치인, 또는 걸출한 형들을 둔 덕분에 항상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행운의 정치인 정도로만 기억해선 안될 이유들이다.
故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