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혈 치료제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에리스로포이에틴(EPO)에 경미한 수준의 구조적 변형을 가할 경우 다양한 질환들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임을 시사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조직배양액 또는 동물실험 모델을 사용해 진행한 연구에서 척수 상해, 심부전, 뇌졸중, 당뇨병성 망막병증, 다발성 경화증 등에 효과를 나타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
미국 워렌 파마슈티컬스社(Warren)의 앤토니 세라미 회장은 '사이언스'誌 9일자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EPO를 구성하는 한 아미노산을 변형시킨 결과 적혈구 생성촉진 기전의 발현은 억제하면서도 체내 조직의 손상억제력은 그대로 유지시킬 수 있음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미국 로체스터大 학장을 역임했고 국립과학아카데미 회원이기도 한 세라미 회장은 뉴욕大 부속병원, 이탈리아, 덴마크, 터키 등의 연구진과 공동으로 이번 시험을 진행했었다.
이와 관련, EPO는 신장 내부에서 생성된 후 골수에서 적혈구의 생성을 촉진시키는 작용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중증의 신장병 환자들은 신장에서 EPO가 충분히 생성되지 못하기 때문에 합성된 제형을 복용하지 않을 경우 빈혈로 전이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PO는 또 외상이나 산소부족, 세균감염으로 인한 면역계 약화 등 외부의 손상 위협으로부터 세포조직을 보호하는 역할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라미 회장은 "면역계가 외부로부터 침입을 받은 것으로 인식하면 곧바로 손상 부위 주변의 모든 조직을 파괴시키기 시작하는데, EPO는 그 같은 세포파괴를 중단시켜 손상을 억제하는 물질"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만약 뇌졸중이 발생했을 때 EPO를 투여하면 이론상 뇌 조직 내부의 산소부족으로 인해 발생될 손상을 막을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러나 이 경우 문제는 EPO를 투여하면 적혈구의 생성량이 증가하면서 혈액의 점도가 상승하고, 따라서 혈전이 유발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연구팀이 찾고자 했던 것도 바로 EPO의 적혈구 생성 촉진작용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세라미 박사는 "이에 카르바밀레이트(carbamylating)라는 과정을 거쳐 EPO를 카르바밀化 에리스로포이에틴(CEPO; carbamylated erythropoietin)으로 변형시킨 결과 기대했던 활성을 얻어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원래 상태의 EPO와 거의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간단하고 경미한 수준의 변화를 거치도록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CEPO는 골수 내부에서 수용체에 결합되지 않았고, 따라서 적혈구의 생성을 촉진하지 않았다는 것.
세라미 박사는 "가까운 시일 내에 CEPO의 임상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