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화장품 규제의 초점이 단순한 사전 통제 확대보다 안전성과 규제 효율을 함께 높이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안전성 평가와 제조 기준은 강화하되 국가 간 평가를 서로 활용하고, 위험 기반 관리와 인공지능(AI)·데이터를 통해 중복 심사와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식이다.
7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화장품 규제기관장 협의체(GCORAS 2026)’ 포럼에서는 한국과 아랍에미리트(UAE), 유럽연합(EU), 호주·뉴질랜드의 규제 변화와 AI 기반 안전성 평가 사례가 소개됐다. GCORAS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올해 처음 출범시킨 세계 최초의 화장품 규제기관장 협력 플랫폼이다.
안전성 강화, 규제는 ‘지원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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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 안영진 바이오생약국장은 K-뷰티의 성장 배경에 제도와 산업 기반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5년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114억 달러로 늘었고, 특히 중소기업 수출은 83억 달러로 전체의 73%를 차지했다. 독립된 화장품법과 제조업·책임판매업 분리, 기능성화장품 제도 등이 기업의 시장 진입과 제품 개발을 뒷받침해왔다는 분석이다. 이제 정책의 무게는 성장 기반을 유지하면서 안전성과 품질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안 국장은 “한국은 2028년 화장품 안전성 평가 의무 시행을 앞두고 있다”며 “평가기관 지정과 전문인력 양성, 원료 데이터베이스 및 평가기술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cGMP 역시 2029년 의무 준수를 목표로 제도 정비가 진행되고 있다.
정책 방향엔 안전성 평가기관 지정, 평가자 양성, 원료 데이터베이스와 평가기술 개발이 포함된다. 위조화장품 대응에는 AI 기반 자동탐지·모니터링을 도입하고, 스마트팩토리 확대와 함께 2029년 cGMP 의무 준수 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도 제시됐다. 인도네시아의 화장품 할랄 인증 의무화에 대응해 교육·컨설팅과 할랄 데이터베이스 구축도 추진한다.
UAE의 접근도 규제를 완화하기보다 규제의 작동 방식을 바꾸는 데 가깝다. 파티마 알카비(H.E. Dr. Fatima Alkaabi) UAE 의료제품규제기관장은 품질·안전과 GMP, 시판 후 감독을 유지하면서도 명확한 허가 경로와 규제 신뢰, 초기 기술협의, 혁신·현지화 지원을 병행하는 체계를 제시했다. 아랍에미리트 의약품청(EDE)은 의약적 효능을 표방하는 ‘medicated cosmetics’를 직접 규제하고, 일반 화장품은 지방·지자체 규제체계가 관리하는 위험 기반 분류를 적용하고 있다.
규제조화, 같은 법보다 ‘상호신뢰’
한-UAE 협력과 관련해선 규제조화가 실제 심사 절차 단축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제시됐다. 올해 5월 1일 한-UAE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이 발효됐고, UAE는 한국 식약처를 EDE의 참조 규제기관으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EDE는 한국 식약처의 평가를 활용할 수 있는 규제 신뢰(reliance) 경로를 운영한다. 알카비 사무총장은 “중복 작업도, 추가 서류 작업도 없다(No double work, no paperwork)”며 규제기관 간 평가 신뢰를 통해 심사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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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조화가 반드시 동일한 법체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캐서린 오(Catherine Oh) 호주 화장품협회(Accord) 규제전략 담당 이사는 호주와 뉴질랜드가 사실상 단일 경제시장으로 움직이지만 화장품 규제체계는 크게 다르다고 설명했다. 호주는 AICIS, TGA, ACCC와 주·준주 규제가 겹치는 분산형 구조인 반면 뉴질랜드는 환경보호청(EPA)이 ‘Cosmetic Products Group Standard 2020’을 중심으로 관리하고 있다.
차이는 같은 성분의 허용 범위에서도 나타난다. 호주는 2025년 2월부터 피부용 화장품에 트라넥삼산 3% 이하 사용을 허용했지만 뉴질랜드는 이를 처방의약품으로 분류해 화장품 사용 예외를 두지 않고 있다. 오 이사는 “규제 시스템이 서로 달라도 정합성을 맞추는 것은 가능하다”며 “제도를 완전히 통합하지 않고도 상호인정과 공통 기준을 통해 시장 간 차이를 조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U는 ‘안정기’…환경·집행 부담은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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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드 레너(Gerald Renner) 유럽 화장품협회 기술규제 및 국제협력 담당 이사는 EU 화장품 규제가 지난 50년간 위험 기반 안전평가와 업계 책임, 사전허가 대신 신고, 시판 후 관리라는 기본 원칙을 유지해왔다고 언급했다.
1993년 안전성 평가와 PIF(제품정보파일)가 도입되고 2003년 동물실험 금지 일정과 CMR(발암성·돌연변이 유발성·생식독성 물질) 규제가 강화됐으며, 2009년에는 Regulation 체계로 전환됐지만 기본 구조는 유지됐다는 설명이다. 레너 이사는 “안정성은 정체를 의미하지 않는다”며 기본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나노물질과 새로운 기술을 기존 체계 안에서 수용해왔다고 말했다.
그린딜 시기엔 화장품 규제를 위험 기반에서 유해성 기반으로 옮기려는 논의가 있었으나, 전면 개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EU 집행위는 현재 기존 규정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평가하고 있으며, 최종 보고서는 2027년 초 나올 예정이다. 레너 이사는 “앞으로 5~10년간 화장품 규정의 대규모 개편은 없을 것으로 본다”며 당분간 규제 안정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대신 규제 압력은 다른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EU 집행위가 추진 중인 규제 간소화 패키지 ‘Simplification Omnibus’는 CMR 관리, 나노물질 신고, 온라인 판매 표시 등 절차상 복잡성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포장·포장폐기물규정(PPWR)은 재활용 가능성, 재생 플라스틱 함량, 포장 최소화와 재사용·리필 의무는 확대된다. 환경 클레임은 근거 없는 ‘친환경’, ‘기후중립’ 같은 포괄적 표현을 제한하는 쪽으로 강화된다.
전자상거래 시장감시도 다음 규제 과제로 지목됐다. EU는 온라인 판매 비중 확대와 제3국발 부적합·위조 제품 유입에 대응해 플랫폼 책임과 세관 공조, 반복 위반자 대응 수단을 강화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레너 이사는 “화장품 규정 본체는 안정기에 접어들더라도 환경 규제와 집행 측면의 부담은 커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AI 안전성평가, ‘모른다’고 답할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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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규제와 보건 시스템에 본격적으로 활용되면서 기술의 성능뿐 아니라 이를 어떤 기준과 체계 안에서 운용할 것인지도 중요해지고 있다. 무바라카 M. 이브라힘(H.E. Mubaraka M. Ibrahim) UAE 보건예방부 최고정보책임자(CIO) 겸 최고AI책임자(CAIO)는 5월 18일 UAE 내각의 승인을 받은 ‘Smart Health and AI’ 정책을 소개했다. UAE는 거버넌스·리더십, 디지털헬스·AI 도입, AI 인프라, 사이버보안, 윤리·환자보호 등 8개 축을 중심으로 국가 보건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과의 협력 분야로는 AI 기반 예방·조기진단과 규제과학, 인재 양성 등이 제시됐다. AI를 개별 기술로 도입하기보다 규제와 데이터, 인력까지 포괄하는 국가 보건체계 안에서 운용하겠다는 구상이다.
마흐무드 쇼베어(Mahmoud Shobair) 존슨앤존슨 데이터과학 수석전문가는 계산모델과 새로운 접근법(NAMs)이 규제 의사결정에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신뢰도와 불확실성의 정량화, 해석가능성, 근거 추적성, 사람의 검토, 사용 목적의 명확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유전독성을 사례로 들며 ICH M7에서는 서로 독립적인 두 개의 in silico 음성 예측이 일치하면 변이원성 불순물·분해산물에 대해 실험을 대신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다만 모델이 단순히 양성·음성만 제시해서는 안 된다는 부분을 지적했다. 쇼베어는 “낮은 품질의 예측을 내놓기보다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충분한 근거가 없을 때는 판단을 유보하고 전문가 검토로 넘기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확도를 높일수록 적용 범위가 좁아지는 특성도 규제 활용에서 중요한 변수다. 쇼베어가 제시한 모델은 신뢰도 임계값을 높였을 때 진음성률(true negative rate)이 0.76에서 0.88로 높아지는 대신 적용 범위는 100%에서 48%로 줄었다. 그는 모든 대상을 억지로 예측하는 것보다 적은 범위라도 매우 높은 신뢰도로 지원하는 것이 낫다고 설명했다. 초기 스크리닝에서는 넓은 범위를, 규제 제출 단계에서는 좁더라도 높은 신뢰도를 택하는 식으로 같은 모델의 사용 기준을 달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생성형 AI의 역할은 흩어진 독성 자료를 구조화하는 쪽으로 확장되고 있다. 피부감작성처럼 기전이 잘 정리된 분야에서는 AOP(유해결과경로)와 기존 시험가이드라인을 결합해 모델링할 수 있고, LLM(대규모 언어모델)은 논문과 규제 문서에 흩어진 정보를 지식그래프로 연결해 새로운 가설과 평가 근거를 만드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다만 반복투여독성이나 발암성처럼 복잡한 영역은 아직 검증된 대체법이 부족하다. 쇼베어는 “불확실성 관리와 해석가능성, 전문가 검증 같은 원칙을 지켜야 새로운 기술을 대규모로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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