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혈관 시계 거꾸로 돌린다… K-제약, 심혈관 '역노화' 신약 패권 정조준
대증 요법에서 '노화 세포' 직접 타격으로 패러다임 전환… 세포 재생 기술 '주목'
대웅 '엔블로'·레드엔비아 '슈가논', 당뇨 신약 재창출로 혈관 및 판막 노화 억제 나서
한미·HK이노엔·일동, 차세대 대사 신약 앞세워 심혈관계 다면적 보호 효과 정조준
김홍식 기자 kimhs423@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6-04 06:00   수정 2026.06.04 06:01
 그래픽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심혈관 질환은 오랜 기간 인류의 건강 수명을 위협해 온 대표적인 치명적 질환이다. 그동안 제약·의학계는 혈압 강하제나 스타틴 계열 약물을 통해 콜레스테롤 수치 등 질병을 악화시키는 '위험 인자'를 관리하는 대증 요법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제약 산업의 패러다임은 질환의 근본 원인인 '혈관 노화' 자체를 타격하고 되돌리는 방향으로 급격히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국내 주요 제약사들은 단순히 질병의 진행을 늦추는 것을 넘어, 세포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역노화' 및 세포 재생 파이프라인을 전면에 내세우며 글로벌 심혈관 치료제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나이가 들며 혈관이 좁아지고 경직되는 동맥경화와 심부전은 단순한 노화 현상이 아니다. 제 기능을 상실했음에도 사멸하지 않고 혈관 내벽에 축적된 '노화 세포'가 핵심 원인이다. 이 좀비 세포들은 '노화 연관 분비 표현형(SASP)'이라는 염증 유발 물질을 지속적으로 뿜어내 정상적인 혈관 내피세포까지 병들게 만든다.

이에 대응해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늙은 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시키는 '세놀리틱스' 기전이나, 세포의 유전자 발현을 조절해 젊은 시절의 기능으로 회복시키는 '부분 리프로그래밍' 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좁아진 혈관을 근본적으로 재생시키고 축적된 동맥경화반을 퇴축시킨다는 점에서 기존 대증 치료와는 궤를 달리하는 혁신적 접근이다.

심혈관 역노화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는 곳은 대웅제약이다. 대웅제약은 국산 신약 36호 SGLT-2 억제제 '엔블로(성분명: 이나보글리플로진)'의 숨겨진 혈관 보호 효능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연구를 통해 엔블로가 미세 플라스틱 등 외부 요인으로 가속화되는 혈관 내피세포의 노화와 산화 스트레스를 강력하게 억제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대웅제약은 이를 기반으로 심혈관 노화 질환 예방 및 치료용 특허를 추진하며, 엔블로를 단순한 혈당 강하제를 넘어선 혈관 항노화 신약으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또한, 대웅제약은 미국 바이오 벤처 '턴 바이오테크놀로지스(Turn Biotechnologies)'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하고 공동 연구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턴 바이오의 핵심 자산인 mRNA 기반 세포 부분 리프로그래밍 기술을 활용, 근본적인 치료제가 부재한 심근경색 및 심부전 치료제 파이프라인 등 차세대 역노화 연구를 공격적으로 확장 중이다.

비만과 당뇨를 잡는 기적의 약물로 불리는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수용체 작용제가 심혈관 보호와 전신 항노화에 탁월한 다면적 발현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관련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제약사들의 연구 방향도 폭넓게 확장되고 있다.

한미약품은 독자 플랫폼 '랩스커버리'를 적용한 비만 신약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임상 3상을 진행하는 동시에, 이 약물이 혈관 내피세포의 만성 염증을 줄이고 동맥경화를 억제하는 심혈관 보호 효과를 입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근손실을 방지하고 심장 근육 세포의 기능을 개선하는 차세대 바이오 신약 후보물질 'HM15275(UCN2 유사체)'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며 심혈관 및 대사 질환 통합 제어를 노리고 있다.

HK이노엔은 도입 신약인 차세대 GLP-1 유사체 '에크노글루타이드'를 통해 만성 대사 질환으로 유발되는 혈관 기능 저하 방지 임상 데이터를 축적 중이다. 또한, 일동제약은 경구용 저분자 화합물 기반의 차세대 대사 질환 신약 후보물질인 'ID110521156'의 임상을 전개하며, 비만·당뇨는 물론 심혈관 질환까지 아우르는 파이프라인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존 당뇨 약물의 '신약 재창출' 전략으로 노인성 심장 질환의 틈새를 노리는 기업도 있다. 동아에스티의 조인트벤처인 레드엔비아(REDNVIA)는 국산 당뇨 신약 '슈가논'의 주성분인 에보글립틴(개발명 DA-1229)을 활용해 대동맥판막협착증(CAVD)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글로벌 임상 3상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대동맥판막협착증은 노화로 인해 심장 판막이 돌처럼 석회화되는 치명적인 질환으로, 현재까지 인공 판막으로 교체하는 수술 외에는 치료 대안이 전무하다. 레드엔비아는 에보글립틴이 심장 밸브 세포의 노화와 석회화를 직접적으로 억제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으며, 수술대에 오르는 고위험 노년층을 약물로 치료하는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 신약 상용화에 다가서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주도하는 심혈관 역노화 신약 개발 속도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인류의 숙원인 '혈관의 건강한 수명 연장'이 점차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다만 상용화의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늙은 세포만 정확히 골라 사멸시키고 정상 심근 및 혈관 내피세포는 철저히 보호하는 고도의 체내 전달 시스템(DDS) 구축이 필수적이다. 또한, 역노화나 세포 리프로그래밍 기술이 생체 내에서 의도치 않은 세포 과증식(종양화)을 유발하지 않음을 대규모 장기 임상을 통해 명확히 입증해야 규제 기관의 벽을 넘을 수 있다.

초고령화 시대를 맞이한 현재, 심혈관 건강은 국가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과 노년층 삶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지표다. 늙어버린 혈관의 시간을 되돌릴 K-바이오의 혁신 신약이 글로벌 의료 시장의 진정한 게임 체인저로 등극할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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