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 결과에 의료계의 반발이 격화되는 가운데, 시민·환자·노동단체들이 의사단체의 ‘이중적 태도’를 정면으로 문제 삼고 나섰다. 연대회의는 추계 과정에서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결과가 나오자 이를 전면 부정하는 행태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민중심 의료개혁 연대회의는 5일 공동성명을 통해, 지난해 12월 30일 발표된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 결과에 대해 “공급자 측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가정과 변수를 끝까지 관철해 놓고, 막상 결과가 불리하게 나오자 ‘근거 없다’, ‘정치적이다’라며 전체를 흔드는 전형적인 이중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앞서 추계위는 의사 수급과 관련해 2035년 1,535~4,923명, 2040년 5,704~11,136명의 의사 부족 가능성을 범위로 제시했다. 그러나 발표 직후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일부 의사단체는 “자료와 근거가 부족하다”, “졸속·정치적 결정”이라며 결과를 전면 부정했다.
이에 대해 연대회의는 “이 장면은 결코 낯설지 않다”며 “추계위원회는 출발부터 공급자위원 8명, 수요자위원 4명, 전문가위원 2명으로 구성된 공급자 과반 구조였음에도, 그 결과마저 부정한다면 이는 ‘어떤 수치가 나와도 증원은 안 된다’는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절차를 소비한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연대회의는 특히 추계 과정에서 핵심 쟁점이 된 ‘2024년 고정 조성법’을 문제 삼았다. 2024년은 전공의 이탈과 의료공백으로 의료 이용이 억제되고, 환자·국민·현장 보건의료노동자의 고통이 집중된 비정상적인 시기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시점을 ‘현재 기준’으로 고정해 미래 수요를 산출한 것은 “환자가 병원을 찾지 못한 현실을 적정 의료 이용으로 간주한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공급 추계에 최근 5년(2020~2024년) 임상활동 확률을 적용한 점도 도마에 올랐다. 코로나19와 의정갈등이 포함된 기간의 활동성을 미래의 상수로 반영할 경우, 고령 의사의 활동성이 과대평가돼 의사 공급이 부풀려지고 부족 규모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연대회의는 “그 부담은 결국 간호사·의료기사·돌봄노동자 등 다른 보건의료 인력에게 전가된다”고 지적했다.
의사단체 일각에서 제기하는 AI 도입과 생산성 향상 논리에 대해서도 연대회의는 선을 그었다. 연대회의는 “의료 AI는 증원 회피 수단이 아니라 환자 안전과 충분한 설명, 다학제 협진을 강화하기 위한 도구”라며 “실증과 사회적 합의 없이 AI를 근거로 증원을 깎는 것은 정책적 비약”이라고 비판했다.
연대회의는 정부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 대해 △2024년 고정 조성법을 의대 정원 결정의 기준축에서 배제할 것 △최근 5년 임상활동 확률 적용의 영향에 대한 공개 검증 △AI 생산성 시나리오를 증원 논의와 분리할 것 △의사 증원과 함께 지역·필수·공공의료 배치와 지원 패키지를 동반할 것을 촉구했다.
연대회의는 “의사인력 문제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 안전과 지역·필수·공공의료를 지키기 위한 사회적 선택의 문제”라며 “과학의 언어를 빌려 직역 이익을 관철하려는 시도는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